나는 눈보라를 뚫고 몸을 잔뜩 움츠린 채 앞사람만 보고..
미래복지경영 이사장, 함께 하는 사람방 이사장 최성균 "1.4후퇴 피난생활" (4회)
1.4후퇴 피난생활       서울로 돌아온 우리집은 다들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전쟁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지만 서민들의 몫은 생활전선에서 분투하는 것이었다. 형들도 각자 자신들의 일상생활 속으로 들어갔다.  나와 여섯째 형...
前휘문고 교사,부산외국어대학교 교수 김응모 "지게.." (7회)
지게꾼 나무장수 집에서 6km 떨어진 길거리나 문골의 먼 산으로 나무를 하러 다녔다. 문골은 나룻배로 금강을 건너 강을 따라 동쪽으로 올라간다. 이곳에서도 높은 산에 올라야 좋은 땔감을 할 수 있다. 솔가지가 마른 삭정이는 가볍고 화력이 좋고, 참나무나 싸리...
연세대 교수,국회의원,보사부장관 문태준(1928-2020) "학생.."(3회)
해방 후의 혼란기 속에서 공부다운 공부는 제대로 해보지도 못한 채 예과를 졸업하고 의과대학으로 진학하게 되었다.  예과시절의 친구들 중에는 훗날 우리나라 각계에서 활약한 저명한 인사들이 많이 있다. 관계에서는 김기형 전 과학기술처장관, 의학계에서...
서울대농대 교수,전북대특임교수 김재욱(1926-2010) "미.."(30회)
제빵 기술을 배우다 1959년 겨울이 되었다. 그 미네소타대학 생화학과는 그 당시로서는 구미인이 주식으로 하는 빵 관계를 공부하고 연구하는 중심지로 되어 있어 전 세계에 통용하는 밀가루 품질을 평가하는 표준방법이 이곳에서 나왔고, 미국의 곡물관계협회가 그곳에...
문학평론가(경주대 총장,동리목월문학관장 역임)장윤익 "파.."(23)
파리에서의 인연 임채완 <전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바야흐로 가을이다.  연구실 창문 너머로 붉게 물든 캠퍼스는 나에게 지난 추억을 반추하게 한다. 대학 강단에 선 것이 어제 같은데, 벌써 23년의 세월이 흘렀다.  1981년에 전...
목사(전 CBS 사장,현 한국기독교민주화운동재단이사장) 권호경(77회)
나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나의 마지막 인생스케줄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여생을 보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었다.  그러던 차에 돈이 좀 생겼다. 1973년 내란예비음모사건과 1974년 긴급조치위반사건 등에 대한 재심이 진행되었는데, 다행히 무죄...
전 서울대 교수, 화가, 예술원회원 장우성(1912-2005) "후기"
자존(自存)  나는 이 책의 원고를 쓰기 위해 붓을 들기까지 많이 주저하고 망설였다. 첫째, 자기 이야기를 제 손으로 쓴다는 것이 쑥스러웠고 둘째, 많은 사람들과 연관된 일들을 얼마나 정확하고 진실 되게 쓸 수 있겠느냐 하는 두려움과 셋째, 문필가가 아닌...
前 서울대 총장, 대한민국학술원 회장 권이혁 "기행(紀行)"(186회)
서울대 총장 재임 시였던 1983년 8월에 처음으로 피지를 방문했다. 8월 7일부터 2주일간 피지를 비롯하여 파푸아뉴기니, 호주, 뉴질랜드 등 4개국을 여행하였는데 호주 외의 3국은 처음 가는 나라였다.  이 여행은 당시 우리나라 주재의 UNDP대표였던 ‘부니봄...
前 한국원자력기술 부사장, 미국 Central Connecticut주립대 객원교수 김진휴 "가족"(190회)
우리 내외(內外) 모두 외부로만 돌고 자식들을 보살필 시간이 없었다. 그런데 모두들 온전하게 성장해서 가장(家長)으로, 주부(主婦)로 그리고 Business Lady로 자기 위치에서 열심히 살고 있다. 축복이요, 감사할 따름이다. 큰 사위 노광국(盧光國)은 안과의사(眼...
아나운서(해태타이거즈 단장,코래드사장 역임)박종세 "정몽.."(59회)
정몽필(鄭夢弼) 사장 비명에 가다 1982년 3월에 프로야구가 개막되면서 해태타이거즈 단장이던 나는 거의 매일 경기가 열리는 지방으로 장거리 여행을 다니는 강행군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러던 4월 말의 어느 날 저녁,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맏아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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