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는 직장 다니고 밤에 졸음과 싸워 공부하던 친구들..
前휘문고 교사,부산 외국어대학교 교수 김응모 "영락성경구락부 2회 친구들"(17회)
문리사대(현 명지대학교) 야간사학과에 원서를 냈다. 18:1의 경쟁률이나 고대의 5:1보다는 쉬울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은근히 긴장이 되었다. 이 학교에 입학 못하면 정말 배움의 길이 영영 막히는 것이다.  문리사대 발표 일에 약국주인이 외출하여 확인을 ...
연세대 교수,국회의원,보사부장관 문태준(1928-2020) "존.."(11회)
병원 생활도 1~2년이 지나니 퍽 익숙해졌고, 의사로서의 실력도 충실해졌다. 그러나 바쁜 것도 여전했고, 밤 11시까지 계속 근무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많은 해프닝도 있었고, 잊지 못할 일들도 많았다. 하루는 악성뇌종양 환자를 수술했는데, 수술 후 호흡이...
문학평론가(경주대 총장,동리목월문학관장 역임)장윤익 "동주.."(35)
동주(東洲) 선생 퇴임송 권윤식  <수필가> 동주 장윤익 선생이 올 2004학년도 2학기를 끝으로 오랜 세월 몸담아온 교육계를 떠난다고 한다.  그는 대구사범학교를 나와 초등학교 현직 교사로 근무하면서 대학에 진학하여 국문학을 전공한 학...
미래복지경영 이사장,함께 하는 사람방 이사장 최성균 "미아.."(13회)
어느 날, 새벽기도를 마치고 집에 오니 아버지가 내 책보에 있는 교과서를 불태우고 있었다. 아버지는 교회를 다니느라 공부도 하지 않는 녀셕에게 이깟 책이 무슨 소용이냐며 화를 내셨다. 내가 울면서 아버지를 말리자, 그제야 아버지는 성적이 떨어지면 다시는 교회에...
서울대농대 교수,전북대특임교수 김재욱(1926-2010) "김.."(36회)
제주도에서 학회가 열리다 1975년 4월 6일에 한국 농화학회가 제주도에서 열리게 되었다. 비행기 등의 교통관계로 제주도에서 학회가 열리는 것은 아마 이때가 처음이 아닌가 생각된다.  학회 회장이신 이춘녕 선생을 비롯하여 간부 일행이 비행기를 타기...
아나운서(해태타이거즈 단장,코래드사장 역임)박종세 "고향.."(64회)
고향 같은 청운동(靑雲洞)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해에 나는 서빙고 신동아아파트에서 지금 살고 있는 청운동(靑雲洞)집으로 이사를 했다.  6.25전 경복고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종로구(鐘路區)에서만 살았기 때문에 불광동, 압...
목사(전 CBS 사장,현 한국기독교민주화운동재단이사장) 권호경"에필"
에필로그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로 거리에 들리게 아니하며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다.(이사야 42:2~3) 내가 하나님의 종으로 사는 동안 이 성경구절처럼 목...
전 서울대 교수, 화가, 예술원회원 장우성(1912-2005) "후기"
자존(自存)  나는 이 책의 원고를 쓰기 위해 붓을 들기까지 많이 주저하고 망설였다. 첫째, 자기 이야기를 제 손으로 쓴다는 것이 쑥스러웠고 둘째, 많은 사람들과 연관된 일들을 얼마나 정확하고 진실 되게 쓸 수 있겠느냐 하는 두려움과 셋째, 문필가가 아닌...
前 서울대 총장, 대한민국학술원 회장 권이혁 "기행(紀行)"(186회)
서울대 총장 재임 시였던 1983년 8월에 처음으로 피지를 방문했다. 8월 7일부터 2주일간 피지를 비롯하여 파푸아뉴기니, 호주, 뉴질랜드 등 4개국을 여행하였는데 호주 외의 3국은 처음 가는 나라였다.  이 여행은 당시 우리나라 주재의 UNDP대표였던 ‘부니봄...
前 한국원자력기술 부사장, 미국 Central Connecticut주립대 객원교수 김진휴 "가족"(190회)
우리 내외(內外) 모두 외부로만 돌고 자식들을 보살필 시간이 없었다. 그런데 모두들 온전하게 성장해서 가장(家長)으로, 주부(主婦)로 그리고 Business Lady로 자기 위치에서 열심히 살고 있다. 축복이요, 감사할 따름이다. 큰 사위 노광국(盧光國)은 안과의사(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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