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곳에 그물을 치라는 예수님 말씀처럼 많은 고기가..
전주교구 원로신부(전주 금암성당 주임신부 역임) 서석구 "1998년 전주 우전성당 부임" (30화)
본당 현황 우전성당은 내부 건물 평수로는 전주에서 제일 큰 성당으로 전임 김순태(요셉) 신부님이 의욕적으로 건축한 성당이었다. 그러나 당시 사회 전반적으로 경제가 좋지 않았다. 불행하게도 IMF(국제구제금융) 시기를 맞으면서 빚이 많이 있어서 인계인수를 받...
前 서울대의대교수, 고려대 구로병원장, 서울아산병원장 민병철 "신영병원" (40화)
신영병원이 빚에 시달리고 있는 동안, 나는 수도 육군병원에 가서 레지던트 파견을 부탁했다. 당시 수도육군병원은 대개 젊은 외상환자들을 취급하고 있었는데, 서너 달씩 신영병원에서 부인환자와 소아환자를 경험시키고 보내겠다는 조건을 내세운 덕에 승낙을 받을 수...
前 동국대 교수, 동국대 부총장 최상범 "유럽여행" (65화)
노트르담 방문 기념으로 그림소품 2점을 10프랑씩 주고 샀다. 점심은 월남인 식당 만산수운(滿山水雲)에서 간단히 하고 오후 파리역에서 떼제베(TGV)를 타고 파리를 떠나 평원을 달려 스위스로 향하였다. 떼제베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시속 270km달리는데, 파리에서 남부...
前 예술의전당 사장, 세종문화회관 사장, 단국대석좌교수 이종덕 "문화예술계의 불도저 같은 사람" (15)
조경희 (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 예술원 회원) ‘이종덕’ 하면 떠오르는 것이 그의 일에 대한 강한 추진력이다. 그는 자신이 시작한 일은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사람이다. 아무리 반대파가 많다 하더라도 그것이 옳은 일이라면 끝까지 관철해야 직성이 풀리는...
詩人 (도원건설, E&C건설대표역임) 윤해균 "가파른 성장, 그 화려함" (32화)
2003년도 말, 뱅뱅사거리 이면도로에 있는 새 건물 동문빌딩 6층으로 본사 이전을 마친 도원은 2004년도를 새로운 마음으로 맞는다. 2003년도는 탄력을 받은 사세 신장의 여세를 몰아 사업 슬로건을 ‘활성화’에 두었지만 2004년도는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 ‘안정...
한국소형영화협회 회장, UNICA 한국본부장 장찬주 "연재를 마치고"
지난밤 꿈을 꾸었다. 고향 마을 금곡천에서 어린 시절 벗들과 벌거숭이 꼴을 한 채 한껏 신이나 멱을 감는 꿈이었다. 초여름 아스라한 미풍에 청보리가 춤추고 멀리 매미 소리가 들리던 평화로운 꿈이었다. 그 여운이 하루 종일 마음에 따스하게 남아 있다. ‘...
한미연합사 부참모장, 예비역 육군중장 차기문 "영원한 삶을 위한 리더십 요체"
무욕즉강(無慾即强), 욕심을 버리면 그것이 바로 강하게 되는 것이다. 욕심을 버려라. 바둑을 둘 때 대단히 유리한 국면에서 욕심을 부리기 때문에 역전되는 경우가 많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
前 호주 CLAY&CERAMICS 회사 연구소장, 중앙대 교수 임남웅 "교수로 임용되어 16년 여 강단에 서고" (70화)
1992년 3월 첫 주에 나는 첫 수업을 시작했다. 아직도 교수가 아닌 교수자격으로 교단에 섰지만, 마치 내가 전임교수인 걸로 착각될 만큼 열과 성의를 다해 강의했다. 오랜만에, 그것도 20여 년 만에 강의를 하니 모르는 것도 많고 사실 자료도 없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디트로이트 머시 대힉교 국제금융학 교수 김석희 "연재를 마치며"
떠나온 고향으로 가고파 금의환향하겠다고 나 자신에게 굳은 약속을 하고 고향 반곡리를 떠난 지도 덧없이 흐르는 강물처럼 어느덧 60년이 흘러갔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 고향은 바로 그리움이다. 나를 비롯해서 너무 많은 사람들이 떠나갔기 때문이다. 할아버지...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최종태 "연재를 마치고"
최종태 1932년 대전에서 4남1녀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나 대전사범학교 2학년 때부터 이동훈 선생에게 그림지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 들어가 김종영 선생과 장욱진 선생을 만났다. 1958년 조소과를 졸업하고 그 해 고향에서 세례를 받았다. 195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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