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빙고 대공분실로 (35회)
  제7장 유신체제에 반기를 들다1

당시는 중앙정보부의 위세가 여느 정부기관보다 높을 때였다. 번번이 중앙정보부에 손을 들어야 했던 보안사는 이 사건을 계기로 자신들의 조직세를 강화하려고 했고, 그리하여 무리한 수사가 진행되었다.

나는 눈을 가린 채 다시 어디론가 옮겨졌는데, 짐작으로는 그 무시무시하다는 서빙고 대공분실(현주소 :용산구 서빙고로 51길 12)인 것 같았다. 서빙고 대공분실은 <서빙고호텔>이라고 불렸다. 

나는 사실대로 다 말할 생각이었다. 그 대신 수도권에 문제가 생기면 안 되니 김동완 목사는 꼭 내보내야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우연치고는 기가 막히게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거기 김동완 목사가 타는 게 아닌가. 보안사 요원들이 우리 둘이 공범인 줄 모르고 태웠거나, 아니면 큰 실수를 한 것이었다. 

서빙고호텔의 엘리베이터는 아주 좁았는데, 나와 김동완 목사, 그리고 두 명의 수사관이 타자 그 좁은 엘리베이터 안이 꽉 들어찼다. 순간 김동완 목사를 빼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좀 생겼다. 그래서 죽을 힘을 다해 “야, 넌 모르는 일이야. 내가 나상기를 시켜서 한 일이야.”라고 소리쳤다. 

수사관이 나를 발로 세게 걷어찼지만, 이미 말은 전달되었다. 수사관들은 공범을 좁은 엘리베이터에 같이 태운 자신들의 실수를 알아차려서 인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기들끼리 눈짓을 주고받았다. 

수사관들이 나를 데리고 간 곳은 조사실이었다. 거기에는 최 모 수사관과 허 모 수사관이 있었다. 그들은 일제 때부터 경찰임을 알 수 있을 만큼 노련한 취조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한 사람은 친절하게, 다른 한 사람은 우악스럽게 나를 대했다. 나는 더는 숨길 필요가 없었다. 

사건이 벌어진 후 이미 두 달이 지났고, 그동안 많은 학생들이 이 일로 고문을 받은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모든 사실을 술술 불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수사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국가전복죄로 몰고 가는 것 같았다. 나도 이제 사실이 아닌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버텨야 했다. 

우선 15만원은 누가 준 것이냐고 묻길래 내 돈이라고 했다. 그러자 수사관들은 “그럼 그 큰  돈을 사무실에서 빼낸 것인가?”라고 다시 물었다. 내가 대답을 않자 자꾸 누가 주었느냐고 다그쳤다. 

다음날이 되자 이번에는 “박형규 목사가 준 것이 아니냐?”라고 소리쳤다. 아니라고 발뺌을 했지만, 박형규 목사가 주었다는 기록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그렇다”라고 대답해버렸다. 이 일로 나는 박형규 목사께 한없이 죄송한 마음이다. 나 때문에 박 목사가 처음으로 감옥에 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는 김동완에게 전단지를 만들라고 시켰느냐고 물었다. 나는 이미 엘리베이터 안에서 김동완 목사에게 직접 말한 것이 있기 때문에 김 목사와의  관련성을 끝까지 부인했다. 그러자 수사관은 “김동완도 들어왔고, 나상기도 들어왔는데, 왜 끝까지 거짓말을 해?”라면서 윽박질렀다. 
 
그러더니 갑자기 나의 손을 낚아채 양쪽 손에 각각 전화기 줄을 연결하기 시작했다. 무슨 의도인지 전혀 짐작이 되지 않았다. 한 수사관이 한쪽에 놓인 전화기로 가더니 수화기를 조금씩 돌리기 시작했다. 순간 손가락 끝에서부터 찌릿한 전기가 확 뚫고 지나갔다. 그는 조금씩 강도를 높였다. 수화기 돌아가는 반동이 커질수록 온 몸의 피가 다 말라버리는 것 같았다.
 
▲ 김동완 목사 [출처 ; 기독교 대한감리회 농촌선교훈련원]

그러는 사이에도 수사관은 고함을 치며 나를 다그쳤다. 그러다가 수화기가 크게 돌아가는 가 싶더니 몸이 쫙 갈라진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으나 그 뒤로는 아무런 감각도 없었다. 사방이 깜깜했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날카로운 사금파리가 오른쪽 뺨을 확 긋는 듯 하더니 잠시 후 오른쪽 뺨이 얼얼해졌다. 곧이어 온몸에 쓰라린 통증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나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먼 허공의 한 지점을 계속 쏘아보려고 했다. 입에서는 신음소리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수사관 중 한 사람이 화난 표정으로 주먹을 휘두르는 것 같았지만 내 몸 어디서도 새로운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산 것인가, 죽은 것인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얻어맞고 있는 것인가. 얻어맞고 있는 것이라면 왜 얻어맞는 지점에서 통증이 느껴지지 않고 온몸에 수많은 칼날이 날아와 박히는 것처럼 구석구석이 다 아플까. 

온갖 생각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어디까지가 생각이고, 어디까지가 입 밖으로 나온 말인지 헛갈릴 지경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내 생각일 뿐, 내 입 밖으로 나오는 소리는 없었던 모양이다. “왜 말을 안 해? 그렇게 버티면 뭐가 해결돼?” 수사관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것이 보였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이며 눈을 감고 말았다. 

내가 그렇게 계속 버티고 있자 이번에는 한 수사관이 다그치듯 “나상기를 보여줄 테니 아무 말도 하지마. 찍소리도 하지 말고 확인만 하는 거다!”라며 나를 일으켜세웠다. 순간 중심을 잃고 쓰러질 뻔 했지만 나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려고 애썼다. 

김동완 목사는 남삼우 씨 쪽은 전혀 몰랐다. 나는 나상기 씨를 만나지는 않았지만, 김동완 목사가 나상기 씨를 만난 것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김동완 목사를 빼내기 위해서 그런 소리를 한 것이다. 그래야만 수도권이 좀 더 안전해지고, 사건 관련자가 줄어들 수 있었다. 게다가 나는 김동완 목사 고모부가 장군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혐의만 없다면 그 고모부가 손을 써줄 것이었다. 그러려면 내가 나상기 씨에게 전단지를 줬다는 것이 확인되어야 했다. 수사관들은 “나상기는 김동완에게 전단지를 받았다고 한다. 그러니 나상기를 만나게 해주겠다. 하지만 너는 나상기를 볼 수 있어도 나상기는 너를 볼 수 없다. 절대 말하지 마라.”라고 하면서 나에게 두꺼운 헝겊을 물렸다. 

사실 보안사 입장에서는 나와 나상기를 만나게 해주면 안 되었다. 나는 나상기가 보여도 나상기는 나를 볼 수 없다는 얘기도 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그들은 어떤 방으로 나를 끌고 갔는데, 고문을 받아서인지 방향 감각도 아스라해졌다. 

내가 걸어온 걸까, 아니면 순간이동을 한 것일까. 어느 순간 나는 커다란 유리벽을 맞대고 서있었다. 유리벽 안으로 쓰러져 있는 나상기 씨의 모습이 보였다. 그도 나처럼 고문을 당했는지 처참한 몰골이었다. 

나는 그를 보자마자 입에 물린 헝겊을 밀어내고 “야 이 새끼야, 내가 수향다방에서 전단지를 만들라고 했잖아!” 하고 소리쳤다. 그러자 그가 퍼뜩 고개를 들더니 이곳저곳을 두리번 거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어디선가 내 목소리가 들리니 소리의 향방을 찾기 위해 본능적으로 고개를 둘러댄 것이리라! 

그 모습을 보니 내 목소리를 들은 것은 틀림없고, 다만 내 말이 제대로 전달되었는지 궁금해졌다. 내 의도를 알아차렸어야 할텐데, 그렇지 못했다면 어떻게 하나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언강생심이었다. 

 
  삼엄한 경비 속에 미완성으로 끝난 거사 (34회)
  보안사의 음모 (36회)
|1||2||3||4||5||6||7||8||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