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도(魔都)로 가는 열차 (1회)
  제1장 상해(上海) 시절

왜애앵! 수동식 사이렌이 숨넘어가듯 다급하게 공습경보를 울렸다. 미군 무스탕 전투기의 기습이었다. 급히 속도를 줄이는 기차가 멈출 때까지 심장은 조여들듯 초조함에 한껏 위축되었다. 기차가 멈추자마자 발판에서 뛰어내렸다. 기차에서 뛰어내린 민간인들은 저마다 살길을 찾아 전속력으로 흩어지며 내달렸다.

미군 Ρ-51 무스탕 전투기가 급강하하면서 기차로 돌진했다. 은색으로 번쩍이는 전투기는 요란한 프로펠러 소리를 내면서 다짜고짜 기총소사를 감행하고는 급상승했다. 총탄 세례를 받는 무쇠 덩어리 기차 몸체에선 불꽃이 튀었다.

급강하와 급선회를 되풀이하는 전투기들은 폭탄은 투하하지 않고 화통을 조준해 기관총만 냅다 갈겨댔다. 순식간에 화통은 벌집처럼 곰보가 되어버렸다. 부서진 화통과 총알의 파편에 맞아 피투성이 된 사람들이 여기저기 나뒹굴었다. 매캐한 흙먼지가 뿌옇게 퍼졌다. 혼비백산한 사람들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사력을 다해 도망쳤다.

시뻘건 피를 내뿜는 사람들의 비명과 어린아이 울음으로 사방은 아비규환이었다. 응사하는 일본군의 총성과 비행기의 폭음, 기총소리가 뒤섞여 지옥도를 그려내고 있었다. 흙먼지와 부상자들의 선혈에서 풍기는 피비린내가 뒤섞여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몽고식 건물이 있는 곳을 향해 줄달음쳤다. 나도 숨이 턱에 차도록 달려갔지만 이미 사람들이 꽉 들어차 있었다. 건물 안쪽에 대피해 있는 사람들이 결사적으로 버티며 문을 안 열었다. 그제야 곁을 보니 어머니가 없었다.

“엄마! 엄마!” 미친 사람처럼 사방을 둘러보며 어머니를 불렀다. 뛰어오던 어머님은 늪지대에 발이 빠져 넘어져 있었다. 혼자서는 아무리 기를 써도 빠져나오지 못할 물귀신 같은 습지였다. 전투기의 기총소사가 늪에 빗발치자 진흙이 사방으로 튀었다.

“엄마!” 삶과 죽음의 경계도 잊은 채 본능적으로 어머니를 향해 달렸다. 총소리가 귀청을 뚫을 듯 울렸다. 발 앞으로 굵다란 기관총탄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쏟아져 꽂혔다.

‘엄마를 살려야 한다!’

소리쳐 불렀지만 달음박질은 꿈결에서처럼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내 걸음보다 총알이 더 빨리 어머니에게 다가가는 듯해 속이 새카맣게 타들어 갔다. 절망으로 입술은 바싹 마르고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저2차 대전 말기, 우리 가족은 상해(上海)를 떠나 잠시 북경(北京)에 살았다. 나는 일곱 살이었고,두 살 터울인 여동생 영숙이는 다섯 살이었다. 아버님은 사업과 다른 이유로 상해에 계셨고 나는 어머님, 여동생과 잠시 북경에 있었다. 그 무렵 막바지로 치닫는 전쟁은 점점 더 치열해져 갔다.

어머님은 북경이 위험하다는 판단을 하셨다.
“상해로 내려가야겠다:’

내가 태어난 고향은 북경에서 3천리 밖의 “마도(魔都)”라 불리는 상해였다. 빨래가 만국기처 럼 나부끼는 좁은 골목길을 따라 내달리다 보면 거대한 서양식 건물이 바닷가를 끼고 늘어서 있었다. 서양인과 동양인이 뒤섞여 분주히 걸어 다니는 상해의 상징 십리양장(十里洋場)의 외탄(外灘)이었다.

어린아이 둘을 데리고 젊은 엄마는 전투가 벌어지는 이국땅 3천리 길을 헤쳐 가야만 했다. 북경에서 천진까지는 경봉선(京奉線)을 타고, 다시 천진에서 강소성 남경까지 가는 진포선(津浦線)으로 갈아탄 후 남경에서 호녕선을 타고 상해에 닿는 노선이었다.
 
▲ 상해에서 어머니와

상해로 돌아가는 길은 곳곳에서 전화(戰火)가 타올라 여간 위험하지 않았다. 드넓은 중국에서의 전쟁은 보급수송의 핵심인 철로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7년간 중일전쟁을 치르며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일본군은 중국에서 최후의 대규모 군사작전을 펼치고 있었다. 이른바 “이치고 작전(1호 작전)”, 즉 평한선 타통작전이었다. 중국의 간선철도인 북경(당시 북평)에서 호북성 한구에 이르는 평한선(平漢線)을 중심으로 만주와 중국, 동남아를 이으려는 전략이었다. 때문에 중국을 종단하는 평한선, 진포선(천진-포구)은 물론 횡단선인 농해선(황해 연운항-감숙성 란주) 등 간선 철로는 포화에 휩싸여 전투가 그칠 날이 없었다.

남쪽으로 가는 진포선 기차에는 민간인이 반쯤 탔고, 누르께르 한 군복을 입은 일본군들이 반쯤 탄 채 왁자지껄 떠들거나 풀이 죽은 채 전선으로 떠나가고 있었다. 민간인을 섞어 놓으면 미군이 공격을 못하리라는 얄팍한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민간인들을 유사시에 총알받이로 이용하려는 속셈이었다. 하지만 교활한 일본군의 술책을 간파한 미 공군은 보급을 차단하거나 늦추려고 차량에 기습공격을 감행했다.

기차는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평원을 가로질러 달렸다. 기차가 달리면 미 공군은 어김없이 기습을 가해 왔다. 당황한 일본군은 수동식 사이렌을 울려 공습경보를 알렸다. 기차가 멈춰 서고 놀란 민간인 승객들은 차량 밖으로 뛰쳐나갔다.

일곱 살 이라도 남자인 나는 어머니와 여동생의 손을 이끌고 피할 곳을 찾았다. 허허벌판에는 몸을 가릴 데라고는 오직 큰 이파리만 핀 피마자뿐이었다. 어머님과 여동생을 피마자 그늘 아래로 밀어 넣고 나도 몸을 웅크렸다. 전투기가 기총소사를 하면 붉은 흙이 사방에 튀었고, 흙먼지가 황사처럼 일었다. 굉음을 토하며 하늘에서 덮치는 전투기의 거대한 날개는 죽음을 부르는 그늘이었다. 삶과 죽음이 찰나에 갈리는 현장이었다.

기겁을 한 여동생은 숨이 막히는지 연신 기침을 해댔다. 나는 전투기가 유유히 사라지는 하늘을 보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피마자 이파리 속에 몸을 숨기고 있던 어머님은 울고 있는 여동생을 달래안고는 다시 기차에 올랐다. 상해로 가는 도중에 기차는 대여섯 차례나 피격을 당했다. 그럴 때마다 화통은 총알 세례를 받아 벌집이 되어 운행을 멈춰야 했다. 미군들이 폭탄으로 기차를 폭파시키지 않은 것은 민간인이 탑승한 일반 열차였기 때문이었다. 일본군의 전략은 성공한 셈이었다.

전투기가 떠나면 기관사들이 화통에 난 구멍을 급히 땜질을 하고 물을 다시 채운 후 밤이 내리기를 기다려 어둠을 뚫고 미친 듯이 내달렸다. 차가 서는 곳마다 그 동네 에서 사는 중국인들이 올라와서는 채 익지도 않은 주먹만 한 수박을 팔았다. 먹을 것이라곤 중국 호떡밖에 없었다.

마침내 나는 총탄보다 더 빠르게 어머님 곁에 도착했다. 있는 힘을 다해 어머님을 번쩍 들어 올렸다. 발목을 잡고 늘어지는 늪지대의 끈끈한 인력을 일곱 살의 내가 기어이 이겼다. 죽음 앞에서 발휘되는 초인적인 힘이었다. 강렬했던 햇빛과 총탄, 절망 사이에서 두려움을 이겨냈다. 미군기가 사라진 하늘은 언제 그랬느냐는 둣 파랗고 깊었다.

천신만고 끝에 상해에 도착했다. 남자로서 죽음이 도사린 길을 뚫고 무사히 어머니와 여동생을 지켜냈다. 아버님과 상봉했을 때 나는 눈물을 참을 만큼 한 뼘 성장해 있었다. 아, 대견했던 나의 일곱 살이 여!

공습경보가 울리면 죽음이 날개를 펼치고 달려드는 느낌이었다. 죽음의 사자처럼 은색 날개를 펼치고 요란한 굉음을 울리며 기총소사를 하는 전투기의 공포를 이겨냈다.

상해로 오는 이국의 3천리 길에 펼쳐졌던 지옥행, 그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하늘의 뜻이 아니었을까. 어머님은 하나님께서 도와주셨다는 말씀 끝에 두고두고 죽을 고비를 되뇌셨다.

“죽을 고비에서 아들이 날 살려냈지. 참 대견한 일이었어.”

죽음과 삶이 교차하던 탄우(彈雨)를 뚫고 어머니를 살려내던 순간, 나는 아이에서 소년이 되었다. 중국 횡단 3천 리길은 나를 사나이로 키웠다.

내가 겪은 전쟁은 처음이었지만, 마지막은 아니었다. 우리는 전란을 헤치며 살아남은 불우했던 세대였다.

 
  축하의 글_2
  태평양 전쟁 말기의 상해 (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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