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함께한 시간을 회고하면서
이강광 Kang Lee Chicago
가까운 친구가 자서전을 쓴다는 말을 듣고 반 백 년의 오랜 친구로서 진심으로 축하를 보낸다. 우리들이 보낸 긴 세월을 반추하면서 아름다운 추억이 영원히 남아있기를 또한 간절히 바라고 있다. 나는 지금 눈을 감고 나의 친구와 함께한 옛일들을 정리하며 기억에 남은 일들을 차례로 적어 내리고 있다.
시월이 되면 생각나는 친구가 있다. 그의 생일이 시월 십일，쌍십절이기 때문이다. 가을이 오면 먼저 생각나는 친구, 나의 총죽지교(葱竹之交) 김영렬이다.
우린 예닐곱 살의 어린 시절부터 한마을 이웃에 나란히 살아왔다. 남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동네, 갈월동에서 성장하며 70 평생을 함께했다. 그를 부르는 명칭은 여럿이다. 김영렬 장로, 김 회장, 김 사장 등으로 다양한 이유는 그만큼 그의 사회적 활동이 넓었음을 뜻한다. 지역사회단체에 봉사하고 기여한 바가 지대하다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지역 교민단체를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한 단체의 장, 한인교회를 창립하여 수십 년간 교회 발전과 기독교 선교를 위해 바친 그의 종교적 열정, 한국 참전 미국 용사 기념사업 그리고 사업적인 창의력과 무진한 노력으로 뿌리를 내린 성공한 사업가로서의 모습이 바로 그를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를 김 장로라고 호칭하는 것이 좋다. 남모르게 조용히 진실한 기독교인으로서의 할 일을 40여 년간을 꾸준하게 정성을 다해서 봉사해온 그를 친구가 아닌, 한 종교인으로서 존경하기 때문이다.
그의 부모님도 기독교인이다. 부모님들은 1930년대부터 8‧15해방 전까지 상해에서 오래 거주하셨다. 상해는 당시에 국제도시로 많은 유럽인들이 살았고 서구문화의 영향을 받아 근대화된 사회 분위기였다. 이러한 서구적 문화 환경 속에서 그들의 생활양식도 모두 서양식이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친구의 집을 드나들면서 부모님들의 서구화된 모습을 보며 우리 집과 비교해보기도 했다. 그의 어머니는 일찍이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음악을 즐기셨다. 어머니의 바이올린 연주를 유성기가 생기면서 유성기판(SP)으로 녹음한 것을 나는 직접 보고 들어보기도 했다. 그의 집에는 김구 선생님의 친필인 무역구국(貿易救國)라는 휘호가 가보로 보관돼 있었다. 나는 이러한 것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생각한 적이 있다.
김 장로가 고등학생이 되면서 미국 유학을 꿈꾸며 미래를 설계하기 시작한 동기도 이러한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영향이 컸다고 생각된다. 당시 우리나라의 경제적, 사회적 불안과 국민 생활이 어려운 때, 많은 젊은이들이 나라의 앞일을 걱정하고 가난을 탈피할 수 있는 길을 조용히 갈망하고 있었다. 나는 김 장로가 나에게 뜻있게 보여준 김구 선생님의 휘호를 평생 기억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본래 사업이나 무역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대학생 때 일이었기 때문에 나는 크나큰 인상을 받았다. 나는 많은 고민을 했다. 출판사, 학교, 학원 강사 등을 전전하며 나의 진로를 택해야 할 중요한 시기였다. 우리들에게 절실한 것은 가난을 탈피하고 국민이 건전하게 잘 살 수 있는 나라가 되는 것이었다.
김 장로는 이러한 어려운 국민적 현실에서 경제적으로 자주적 이고 산업이 발전할 수 있는 길에 대하여 여러 번 강조하며 특히 국제적인 교역 증진으로 나라의 발전을 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늘 보며 꿈을 키우던 김구 선생님의 힘찬 휘호가 지금도 나의 기억 속에 새롭기만 하다.
나는 김 장로가 미국으로 유학한 후에도 그의 아버님, 김창화 선생님을 자주 만나 뵙게 되었다. 그는 시내에 나오실 일이 있으면 나에게 전화를 주셨다. 나의 사무실이 소공동에 있었으므로 편리하게 함께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식사도 함께 하며 많은 옛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아들 생각이 나면 나에게 전화를 주셨다. 그에게서 오랜 외국 생활에서 경험하며 국제화된 모습과 세련된 면모를 저절로 느끼곤 하였다. 이처럼 그때 내가 느꼈던 분위기는 지금의 김 장로를 볼 때마다 아버님으로부터 받았던 인상 그대로 동일한 느낌을 받게 된다.
한 세대가 가고 다시 세대가 오는가 하면 벌써 우리들의 시대가 석양에 걸려 있으니 덧없는 세월은 말없이 물처럼 흐르고 흔적이 없이 사라진다. 그러나 김 장로가 펴 내려가는 이 간단한 스토리 속에는 한 집안의 전설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고 용기, 지혜, 우정 그리고 무한한 사랑과 열정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이 사랑하는 친구의 얼과 정신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발자취로서 나는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 다시 한 번 나의 친구와 그의 가족들에게 축하를 보낸다.
이 뜻있고 아련한 작은 한 삶의 스토리를 여러 친구들과 함께 나누어 읽으면서 우리 모두들의 가슴속에 영원한 추억으로 기억 속에 머물러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Best friend in the world, 평생을 함께 한 친우 이강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