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한국사회사업계의 제1세대로 손꼽히는 사람은 한국사회사업가협회를 창립하고 서울대에 사회사업과를 설립한 하상락 교수, 한국 최초로 일본 동지사대학에서 사회사업학을 공부하고 돌아와 중앙신학교에 사회사업과를 개설한 김덕준 교수(한국사회복지학회 창설, 초대회장), 최초로 사회사업교과서인 <사회사업개론>을 펴낸 김학묵 막사, 한국사회봉사학회를 창설한 백근칠 교수 등을 말할 수 있다.
나는 한국사회복지학의 역사를 대표하는 이들 교수에게서 모두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이들은 각각 학계에는 김덕준, 하상락, 공무원 계열에는 김학묵, 현장에는 백근칠 선생이 활약했다. 이들이 있었기에 한국 사회복지학이 자리를 공고히 할 수 있었다.
하상락, 김학묵, 백근칠은 미 국무부에서 초청하여 미네소타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한국에 돌아와 사회복지학을 공부하려는 후배들에게 가르침을 주었다. 김덕준 교수는 목사였기에 일본 동지사대학에서 사회복지를 공부하고 돌아왔다.
사회복지학계의 대선배인 이 네 사람은 모두 최초로 외국에 가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했던 분들이다. 김학묵 박사는 ‘한국의 간디’로 불렸는데, 영어를 무척 잘하셨다. 또 파이프 담배를 물고 있던 모습이 인상적이던 백근칠 선생은 제자들이 찾아가면 100~200달러가 든 봉투를 내놓으면서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격려하곤 했다.
이처럼 대학에서 신학과 사회복지학 수업을 들었던 나는 신학을 학문적 기초로 하고 사회복지학을 해야 바르지 않겠는가 하고 생각한다. 미국도 신학을 먼저 배우고 사회복지학을 배우는 교육방법을 따르고 있다,
내가 다닌 중앙신학교는 사회복지분야에서 손꼽히는 대학이었다. 이곳에는 김덕준 교수를 비롯해 강만춘, 김만두, 배근철, 하상락, 김학목, 안상기, 부성래 등 사회사업계에 족적을 뚜렷이 남긴 분들이 많았다.
나는 중앙신학교에서 만난 김덕준 교수(나중에 학장이 되었다.)와 장만춘, 김만두 교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특히 김덕준 교수는 사회복지의 철학과 기치를 내게 심어준 분이었다. 또 내가 대학 졸업 후 교회사회사업가로 사회복지현장에 첫발을 딛도록 해준 분이기도 하다. 누구에게나 인자한 모습을 보였던 김덕준 교수는 늘 “사회복지사는 타인의 아픔을 함께 할 수 있는 뜨거운 가슴은 지녀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한평생 사회복지의 길을 걸었던 나는 그 분의 말씀을 늘 기억하며 ‘사회복지사는 공감하는 전문가’임을 믿고 있다.
강만춘 교수는 지금도 매년 정초에 제자들에게 사자성어를 써서 격려해주고 있다. 올해 96세인 강 교수는 워싱턴에서 혼자 살고 계시는데, 동기들과 중국여행도 함께 할 정도로 여전히 정정하시다.
|
|
| ▲ 1967년 12월 중부직업소년학교 수업을 마치고 난 뒤 연 크리스마스 파티 |
|
대학시절 만난 선배로 강남대 김만두, 서울대 남세진, 이화여대 문인숙, 부산대 신성중 교수도 잊을 수 없다. 그들은 우리 후배에게 본보기를 보여준 선배들이었다.
김덕준 교수는 기독교인으로서 교회의 현장사역을 자주 강조하곤 했다. 목사이기도 한 그는 신앙인으로서도 후학들에게 모범을 보였다. 그는 기독학생들이 연합하여 현장에서 봉사할 수 있는 모임을 만들었는데, ‘한국기독학생사회사업연합회’가 그것이다. 이 연합회는 김덕준 교수가 직접 지도하며 우리에게 사회복지 실현을 위한 실천과 행동을 교육했다.
나는 김덕준 교수의 권유로 이 연합회에 중앙신학교 대표로 나갔다. 한국기독학생사회사업연합회는 중앙신학교를 비롯해 서울여대, 이화여대, 감신대, 중앙대, 한신대 등 전국 17개 대학의 기독학생들이 모여 봉사활동을 진행했다.
연합회의 회원들이 모여 한 일은 크게 여름방학에는 ‘워크캠프(workcamp)’를 통해 농촌지역으로 봉사활동을 나가는 것이었고, 겨울방학에는 청계천에 있던 재건대에서 넝마주이들과 생활하며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일을 하는 것이었다.
그때 만난 인연 중에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만나는 사람이 권호경 목사이다. 또 그때 함께 한 이들 중 김인환(LA한인 청소년 이사장), 변도윤(전 여성부장관) 등과도 가끔 식사를 함께 하고 있다.
권호경 목사는 한신대에 다닐 당시 한국기독학생사회사업연합회 회장이었는데, 그 후 민주화 운동의 지도자로 한국사회에 큰 영향을 주었다. 기독교방송사인 CBS 사장이기도 했던 그는 지금은 국내의 가난한 아동들을 위해 구호단체를 만들어 헌신하고 있다. 그의 카리스마적인 지도력과 신앙은 우리를 감동케 하곤 했다.
지금도 그와 나는 가끔 식시를 하면서 대학생 시절부터 시작된 좋은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겉모습만 보는 사람들은 그를 강인해 보인다고 평하지만 사실 내면은 매우 따뜻한 사람이다. 가난한 이웃을 위해 지금도 헌신하고 있는 그는 이 시대의 지도자라 할 수 있다.
이런저런 모임과 학업으로 정신없이 지내다보니 대학생활은 그야말로 쏜살같이 지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앞으로 징집소집명령서가 도착했다. 군대에 입대하게 되자 친척 중 한분이 내게 당시로서는 꽤 많은 금액인 3만원을 주셨다. 나는 고민하지 않고 그 돈을 고스란히 고아원에 보내달라는 말과 함께 친한 친구에게 모두 주었다. 그리고 그길로 곧바로 논산훈련소로 향했다.
논산훈련소에서 기억에 남을만한 고생을 한끝에 내가 배치된 곳은 제2훈련소 교도대였다. 거기서도 군기가 엄하기로 소문난 칼빈사격장 근무였다. 나는 칼빈사격장에서 조교였는데, 주로 훈련병들에게 총을 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주임무였다.
나는 그곳에서 일명 ‘수도꼭지’라고 통했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온 사람들을 지방출신의 고참들이 수도꼭지라고 불렀다. 그들은 밤마다 수도꼭지들을 불러 기합을 주기 일쑤였다. 하루의 마지막은 늘 “수도꼭지 집합!”이라는 구령이었다. 하루라도 기합이나 구타가 없으면 불안해서 잠이 오지 않을 정도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