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슬레구락부 (16회)

웨슬리 구락부에 학생들이 점점 늘어나자, 나는 대학을 다니는 친구들을 교사로 섭외했다.

자원봉사로 온 야학교사들도 정성을 쏟으며 열심히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때 야학교사로 동참해준 사람들은 조인남, 신문식, 박용준, 이양자, 함수자, 이만자, 홍순길, 권광중 등이다. 당시 우리들은 야학에서의 활동을 위해 그야말로 똘똘 뭉쳤다.

웨슬리 구락부를 통해 나는 제자들과 함께 공부도 하고, 자연 속으로 소풍도 가면서 즐겁게 한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런데 밤낮없이 학업과 야학, 그리고 각종 모임에 열심히 하다 보니 내 몸에도 무리가 왔다. 피로가 누적되었고, 점점 몸상태가 이상했다. 결국 나는 폐결핵 판정을 받았다. 우선 당장 쉴만한 곳이 필요했다. 내가 쉴만한 곳이 어딜까, 하고 생각해보니 고등학교 시절 친구 박영배와 함께 간 무전여행이 떠올랐다.

우리는 무전여행 중 당도한 인천에서 동네 건달을 만났는데, 도움을 받을 만한 곳이 없었다. 쫓기다시피 가까운 교회로 들어갔는데, 거기는 인천 내리감리교회였다. 그 당시 윤창덕 목사님이 시무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시 길을 걸어 당도한 곳이 강화도 길상면에 있는 감리교회였다. 동막해수욕장이 보이는 교회였는데, 교회 이름은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 교회 장로를 만나 하루 숙박을 청했는데, 나를 본 장로의 눈이 빛났다. 내가 교회를 다니는 청년이라고 밝히자, 그 장로는 나를 붙들고 교회가 처한 사정을 이야기해주었다,

그곳은 외딴 곳에 위치한 작은 교회여서 그런지 담임목회자가 없었다. 그 교회는 주일에만 설교목사가 와서 예배를 인도해주고 있었다. 장로는 긴 이야기 중에 내게 설교를 좀 해달라고 청했다. 적은 인원이 모이는 교회지만 설교를 듣기 위해 교인들이 모이는 상황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나는 그곳에서 며칠 동안 있으면서 삼일(수요)예배와 속회예배, 야간예배에서 설교를 해주었다.

그런 인연으로 나는 내가 쉴만한 곳을 그곳으로 정했다. 학교는 한 학기를 휴학하기로 하고, 그곳에서 한 달 정도 요양생활을 했다. 바다가 보이는 그 교회에서 나는 매일 기도를 드리고 묵상하면서 내 지난날을 반성하는 시간을 가졌다. 다행이 나의 폐병은 어느새 치유되었다. 보건소에서 처방받은 약만 먹었을 뿐 특별히 병원에 가지도 않았는데, 나도 모르게 병은 완치되어 있었다.

병을 치료하고 다시 웨슬리 구락부로 돌아왔지만 얼마 되지 않아 곧 영장이 나왔다. 내가 군대에 입대하게 되면서 웨슬리 구락부는 조금씩 동력을 잃어갔다.

군대에 갔을 때도 제자들에게 편지를 보내 열심히 공부하기를 독려했지만, 아무래도 주도적으로 일을 꾸민 내가 없으니, 계속 운영되기가 어려웠던 모양이었다. 웨슬리 구락부는 3년정도 하다가 없어지고 말았다.

▲ 1962년 5월 웨슬레구락부 학생들과 함께

하지만 그곳에서 배움을 청한 제자들은 남았다. 여기서 중학과정을 배운 제자들은 이를 발판 삼아 고등학교에 진학하거나 대학까지 진학했다. 그리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좋은 직장을 얻는 경우도 꽤 있었다. 사회에 나가 제 역할을 다 하는 제자들을 보는 것은 또 하나의 낙이었다.

이제 흰머리 가득한 제자들이 나와 같이 늙어가고 있지만 지금도 나를 찾아오곤 한다. 당시 아학에서 배웠던 제자들인 이종구, 신승남, 박종렬, 지봉렬, 홍정표, 김재선, 이인영 등을 나는 야학 1기라고 부른다.

나의 야학생활은 그 후로도 계속되었다. 제대 후 나는 수유리 백움감리교회에서 또 다른 야학을 시작했다.

야학을 하면서 오히려 나는 얻은 것이 많았다. 아이들과 만나면서 나는 인간을 사랑하는 것에 대한 기본을 배웠다. 또 협동하는 방법과 공동체가 가져야 할 태도가 무엇인지 경험했다.

한평생 살아오면서 사람을 만나고 모임을 만드는 일에 앞장섰던 데는 이때의 야학경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좋은 사람들과 만나고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야말로 나에게는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내 신앙의 근거지인 미아동 감리교회를 생각하면 박경용 목사님과 김남이 사모님을 잊을 수가 없다. 목사님의 지원과 격려가 있었기에 나는 야학을 통한 나의 포부도 펼칠 수 있었다.

목사님은 내게 참으로 따스한 분이었다. 물론 나 뿐만은 아니었다. 목사님 곁에는 늘 젊은이들이 따랐다. 목사님은 교회 청년들과 상담하면서 그들의 어려운 사정은 눈여겨보고 있었다. 집안사정이 어려워 학업을 계속 할 수 없는 청년들에게 목사님은 먼저 손을 내밀었다. 등록금을 마련해 대신 납부해주셨던 것이다.

당시 교회를 다녔던 청년 가운데 목사님의 도움을 안 받은 청년은 한명도 없을 정도였다. 그나마 집안사정이 나았던 내게도 목사님은 손을 내밀어주셨다. 비가 오던 어느 날, 목사님이 나를 부르셨다. 무슨 일인가 싶어 얼른 달려갔는데, “최 군 어렵지?” 하면서 목사님은 내게 등록금에 보태라며 5만원을 쥐어주셨다.

그 돈을 받는 순간 마음속에서부터 찐한 감정이 몰려들었다. 그것은 내게 보여준 목사님의 관심과 사랑이었다. 그동안 목사님을 존경하고 있었지만, 그 말씀을 듣는 순간의 경험은 어떤 격려나 워로 보다도 힘이 셌다. 나를 늘 살피시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목사님이 학교에 간 청년들의 등록금만 걱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학교에 가지 못한 아이들에게도 양재학원에 보내 기술을 배워 취직을 하거나 양복점을 할 수 있도록 도왔다.

김남이 사모님의 따스한 배려도 잊을 수가 없다. 사모님은 나를 만나면 늘 “성균이 너 밥 먹었니?”하면서 언제나 나를 챙겨주셨다.

미아동 감리교회는 목사님과 사모님의 따스한 인품으로 교인들을 잘 이끌어나가면서 교회도 날로 부흥시키셨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어느 날 목사님이 미아동 감리교회를 사임하는 일이 벌어졌다. 내가 군대에 있을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