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일같이 계속되는 구타에 탈영하고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이를 달랠 수가 있는 것은 편지를 쓰는 일뿐이었다. 나는 괴로운 심경을 토로하는 편지를 박경용 목사님이나 친구들에게 보내면서 심신을 달래야 했다. 그러다 나는 어쩐 일인지 군종과로 재배치 받았다. 군종과는 당시 군에서 가장 편한 자리로 통했다.
교도대에서 매일 구타를 당하다가 군종과로 오니 그야말로 심신이 다 편했다. 내가 맡은 일은 군목 장교의 심부름이나 해주고 부대밖 교회에서 일하는 것이었다. 당시 그 교회 성가대 지휘자가 김성한 군목장교였는데, 그는 마운틴 얼몬드 클럽의 내 친구인 장영순의 남편 김희방 목사와 잘 알았다.
하루는 이춘근 중대장이 나를 불렀다. 그는 육사출신으로 군인정신이 투철한 사람이었다.
“최 병사, 너 교회 다니는 사람 맞아? 군종과는 편한 곳이잖아. 거기에서 교회 일만 하던데, 교회에서 할 게 뭐가 있나? 주일되면 풍금이나 치고 예배만 보면 되잖아. 최 병사가 기독교인이라면 어려운데서 근무해야 맞는 것 아냐? 그렇게 안 봤는데, 최 병사 참 나쁜 사람이네.”
그 말을 든는 순간 가슴이 찌르르했다. 그때야 나는 박경용 목사님과 김희방 목사님의 부탁으로 내가 군종과에 편성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중대장의 말은 옳았다. 당장 힘들다고 편한 자리에 있으려고 했던 나는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그러나 내 마음대로 다른 곳으로 배치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얼마되지 않아 나는 다른 곳으로 배치되어 가야했다.
군종과에 있을 때, 인사이동으로 새로운 군목장교갸 배치되어 왔다. 이 사람은 목사였는데, 이상하게 제 할 일 조차 나에게 미루곤 했다. 자신의 구두를 닦거나 작업복을 세탁하는 일까지 모두 나에게 맡겼다. 기독교인이라면 어려운 데서 일해야 한다는 말에 공감하고 있던 나는 목사라는 사람이 그렇게 처신을 하니 영 못마땅했다.
그래서 하루는 자신의 속옷을 빨고 구두를 닦아놓으라는 말을 짐짓, 무시하고 외출을 했다. 외출을 한 나는 극장으로 가 당시 유명했던 영화 <벤허>를 보고 돌아왔다. 그러한 행동이 알려졌으니, 나는 그 군목장교에게 미운털이 단단히 박혀버렸다. 그 일로 나는 다시 군수과로 배치 받게 되었다.
군수과는 군대 내 물품 보급업무를 총괄하는 곳이다. 내가 맡은 보직은 2종 피복업무였다. 나는 그곳에서 근무하면서 틈틈이 군수과장의 집에 가야했다. 군수과장이 자신의 아이에게 공부를 가르쳐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군수과장이 나를 배려해준다고 ‘독도법으로 옮겨보라’고 제안했다. 독도법은 지도를 보면서 지형물을 찾아가는 훈련방법이다. 독도법을 훈련받게 되면 야외로 나가는 일이 많았다.
내가 자신의 아이를 과외하거나 군대밖 교회도 다닐 수 있게 군수과장이 머리를 쓴 것이었다. 이 때문에 나는 군수과에서 파견 나가는 식으로 야외를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일 때문에 자칫 영창에 갈 뻔하기도 했다. 어느 날 회식을 하고 천막보초를 서기 위해 야외로 나갔는데, 천막이 보이지 않았다. 도둑이 훔쳐간 것이었다.
보초도 제대로 서지 않고 회식까지 한 것이 들통 나면 바로 영창행이었다. 그런데 이 사건을 면밀히 조사해보니 내 윗사람이 제대로 사인을 안 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인을 안 한 것이 더 위중했으므로 그 바람에 내 윗사람이 영창을 가고 나는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때 군대에서 배운 독도법은 살아오면서 내게 여러 가지 도움을 주었다 .나는 그동안 제법 많은 산을 올랐고, 여러 사람과 같이 산행을 즐겼는데, 그때 위치를 파악하는 능력이 다른 사람보다 더 좋았다. 산길을 헤메다 길의 향방이 모호할 때면 모두들 나를 쳐다보았는데, 그럴 때면 군대에서 배운 독도법이 효과를 보았다.
군대에서 보낸 시간은 힘들었지만, 지나고 보니 아쉽기도 했다. 동료들과 철모에 밥을 해먹고 라면을 끓여 먹었던 일도 기억에 남는다.
군 생활이 내 생활의 태도를 변화시킨 것도 많다. 군대에서의 경험은 내게 규칙적이고 부지런한 생활습관을 갖게 했다. 또한 시간을 잘 지킨다거나 공동체생활을 할 때 유용한 방법 같은 것은 모두 내가 군생활을 통해 터득한 것이었다.
친구들의 도움으로 된 학생회장
무사히 군복무를 마치고 제대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깜짝 놀랄 일이 있었다. 중앙대학교에서 근무하던 둘째 형이 나를 중앙대학교로 옮겨둔 것이다. 중앙신학교는 목사가 되는 학교라는 이유에서다. 어이가 없었지만 형의 말을 거역할 수만은 없었다. 중앙대학교로 가니 마침 휴강이었다. 며칠 지켜봐도 수업은 열리지 않았고, 계속 휴강인 상태였다.
중앙신학교는 휴강 같은 것은 없던 학교였다. 나는 일단 형님 말을 들었으니, 다시 중앙신학교로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러는 동안 중앙신학교는 이미 학기가 시작되었고, 나는 한 학기 가량은 야학을 하면서 나머지 시간에는 등록금을 벌기 위해 과외 아르바이트를 했다. 하지만 과외를 해서 번 돈으로는 다음 학기의 등록금을 채울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등록금을 내지 못한 상태로 학교에 갔다. 등록금이 미납인데도 수업을 듣는 데는 별 지장이 없었다.
그런데 동기들의 권유로 학생회장에 출마하게 되었는데, 등록금 미납이라는 이유로 후보등록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나의 이러한 상황은 곧 동기들이 알게 되었고, 내가 학생회장이 되기를 바랐던 동기들은 마치 제일인양 등록금을 모으기 위해 발 벗고 나서기 시작했다.
그들이 십시일반 모아준 돈으로 나는 모자란 등록금을 보충해 납부했다. 그리고 동기들의 도움과 호응으로 학생회장에 등록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