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승님께 간략하게 그동안의 살아온 경위를 말씀드렸다.
“선생님을 찾으며 두려운 게 있었습니다. 행여 돌아가셨다면 어쩌나 하고.......”
나는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스승님도 눈물을 닦으신다. 이렇게 건강하신 스승님을 만나 뵈니 기쁘기 한량없다. 사모님은 친정어머님이 입원하셔서 병원에 가 계셔서 뵙지 못했다.
우리 부부는 1년에 몇 번씩 스승님을 찾아뵈었다. 때로는 김사모팀(김응모를 사랑하는 모임-졸업생들)과 함께 1박 2일로 경주에 계신 스승님 내외를 찾아뵙기도 하고, 때로는 응사모팀(재학생들)과 함께 경주를 방문하여서 선생님을 모시고 경주에 유명한 남산 산행도 하였다. 스승님 내외분은 제자들이 “왕스승님! 왕사모님!”을 연발하며 애교를 떨면 더 없이 흐뭇해하신다.
사모님과 나의 아내, 제자들이 회를 즐겨하기 때문에 저녁메뉴로 회를 시켜 오신다. 스승님과 나는 회를 즐기지 않으므로 삼겹살이나 갈비, 회초밥을 따로 마련했다. 제자들이 회를 야채에 싸서 스승님 부부에게 드리면 화색이 만면하여 드신다. 식사가 끝나면 으레 노래방에 간다. 스승님은 ‘선창’을, 가수 뺨칠 정도로 잘 부르신다.
우리 모두는 경주 보문단지에 있는 한화콘도에서 스승님 내외분을 배웅하였다. 나는 스승님을 꼭 끌어안고 놓지를 않았다. 내 눈에는 이슬이 맺혔다. 콘도의 객실에 와서 보니 제자인 현옥이와 민성이가 눈물을 닦고 있다. 나는 깜짝 놀라
“너희들 왜 우니? 뭐 언짢은 일이 있니?”
“교수님이 울렸잖아요.”
“내가 너희들을 왜 울려? 내가 어떻게 했는데?”
스승님 내외분을 배웅하는 내 모습을 보고 제자들도 눈물을 닦고 있었다.
스승님은 자동차보험회사에 근무하셨다. 영어를 잘 하시기 때문에 외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발령이 나서 부산에서도 오랫동안 근무하셨단다. 지척에 계신 것도 모르고 엉뚱한 곳에서 찾았으니.......
스승님은 보험에 대하여서는 박사수준이다. 그래서 정년퇴임 후에도 한화보험 경주지점장으로 계속 근무하신다. 77세이시나 건강하시고, 토요일마다 원로 테니스회에서 테니스를 하신다. 경주 라이온스클럽 회원이시며, 지방유지이시다. 심성이 곱고 베풀기를 즐겨하시기에 벗과 따르는 후배들이 많다. 애주가이시기에 친구들과 잘 어울리며 밤늦게 귀가하시는 것이 사모님의 불만이다.
한번은 나의 절친한 친구 김해룡 선생과 함께 경주에 들렀다. 이 친구는 테니스광이며 구력(球歷)도 오래되어 프로급이다. 이 친구는 자기 스승처럼 스승님을 잘 모신다. 그뿐만 아니라 나의 제자들도 자기 애제자처럼 사랑한다. 제자들이 서울로 세배를 올 때면 눈코뜰 새 없이 바쁘면서도 꼭 참석하여 내 제자들을 거두어준다.
제자들과 경주에 갈 때마다 스승님 내외는 음식값을 내신다. 계산대에 “내 돈 아니면 누가 내도 받지 말라.”고 부탁을 해놓았는데도 스승님은 아예 계산대에 돈을 맡겨놓으신다.
김해룡 선생은 경주에서 제자들과 만나 테니스 축제를 열자고 스승님에게 제안했다. 우리는 서울에서, 제자들은 부산과 경상도에서 KAL에 근무하는 제자들은 울산비행장을 거쳐 경주로 온다.
지난 가을에 모두 경주에 모였다. 육군대위인 영호와 김 선생이 한 팀이 되고, 스승님은 경주테니스 회원인 한분이 조가 되어 테니스축제를 열었다. 스승님팀이 팀웍이 잘 맞아 제자팀이 졌다. 사실 김 선생과 우리 제자들은 테니스를 통해 스승님의 건강상태를 살피고 싶었다. 스승님의 테니스 실력은 상당한 수준이다. 스승님이 테니스를 잘 치는 것보다 건강하신 것이 나는 더 없이 기뻤다.
우리 부부와 내 제자들은 경주의 스승님을 찾아뵙는 것이 연중행사이다. 울해(2005년)에는 제자인 다리아 수녀님을 경산 무학고등학교에서 잠깐 만나고 경주 스승님 댁에 들렀다. 16시경에 만수, 정미, 도균이가 도착하고, 뒤에 미영, 현옥, 민성이가 도착했다.
스승님은 회를 사오시고 나를 위해 김밥과 치킨도 마련하였다. 내 식성을 잘 아는 이양혜 박사는 콘도식당에서 얼큰한 국을 사왔다. 이 자리는 3대가 모인 사제 간의 자리로 언제나 즐거운 자리이다.
경미 민수의 아들 도균이는 아직 두 돌이 되지 못하였건만 잘 먹고 잘 놀고 짜증을 부리지 않아 귀여움을 독차지한다. 이튿날 아침에 도균이는 내 볼에 뽀뽀를 하고 헤어졌건만, 차 속에서 할머니 할아버지가 안 보이니 아빠를 꼬집고 얼굴을 때리고 했다고 한다. 귀여운 첫눈이 삼삼하게 보고 싶다.
스승님은 두 아들을 늦게 두셨다. 큰 아들 재완이가
“아버지, 주례 선생은 어느 분을 모실까요?”
“주례? 걱정마라. 훌륭한 주례선생을 모실거다.”
우리 부부는 이양혜 박사와 차를 타고 언양 봉계 불고기축제에 들러 한국에서 가장 맛있다는 쇠고기갈비로 점심을 먹었다. 이양혜 박사는 봉계의 갈비를 대접하고 싶어 인터넷으로 확인하였다고 한다. 제자들이 경주에 함께 가기로 하였으나 직장과 개인사정으로 이양헤 박사만 같이 가게 되었다.
사모님은 점퍼 차림에 운동화를 신은 나를 보고 놀라신다. 능히 저런 차림으로 주례를 설 사람이라고 생각이 들면서도 긴장이 되었다고 하신다. 차 안에 양복이 결려 있는 것을 보고 안심하셨단다.
스승님은 검소하시다. 지방유지이시고 보험회사 지점장이시면서 프라이드 승용차를 타고 다니신다.
“아직도 프라이드를 타세요?”
“응, 아직 쓸만 해. 몇 년은 더 탈수 있어.”
“요즘 차종에 어떤 차가 좋아요?”
“삼성차가 좋지.”
옳다구나! 알았다. 부산외대 졸업생 중에 삼성차를 판매하는 하정일 군이 있어 학교로 불렀다. SM차종을 고르고 등록비에서부터 모든 경비를 다 지불하고 차의 색깔만은 스승님과 상의하게 하였다. 그리고 스승님 댁 앞에 차를 갖다드리도록 했다. 그렇지 않으면 차를 받을 분이 아니기 때문에 정일 군과 작전을 짠 것이다. 스승님의 새 차를 보는 사람마다
“좋은 차로 바꾸셨네요.”
“응. 제자가 사줬어.”
“요즘 세상에 그런 제자가 어딨어요?”
“재완이 주례 선 제자야.”
“예예! 그 제자였군요.”
나는 지난 가을에 처음으로 그 차에 시승하였다. 차 앞에 사진이 있어 스승님의 손자손녀의 사진인 줄 알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스승님의 부부와 우리 부부가 함께 찍은 사진을 세워놓은 사진틀에 넣어 조수석 앞에 세워놓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