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리사대(현 명지대학교) 야간사학과에 원서를 냈다. 18:1의 경쟁률이나 고대의 5:1보다는 쉬울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은근히 긴장이 되었다. 이 학교에 입학 못하면 정말 배움의 길이 영영 막히는 것이다.
문리사대 발표 일에 약국주인이 외출하여 확인을 못했다. 다음날 가보니 비가 와서 합격자의 방이 모두 떨어졌다. 교무과에 들러 문의하니 봉투 한 개를 준다. 합격자의 구비서류에 대한 내용이었다. 등록금을 보니 고려대와 별 차이가 없었다.
고3 담임이 내가 근무하는 약국에 오셨다. 문리사대에 가지 말고 고려대로 가라고 권유하신다. “우리 야간에서 일류대에 합격한 것이 너 하나뿐인데........”
남산고등학교는 재정난으로 폐교되어 영등포 장훈중학교를 빌어 졸업식을 하였다. 선생님들도 이 졸업식을 끝으로 다른 직장을 찾아 뿔뿔이 떠나야만 했다. 졸업식에서 선생님들은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시며 “이놈이 고대생이야. 열심히 공부해서 교수 되거라.”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화학 담당인 담임선생님은 영등포공장으로 가신다며, 밤에 기계실로 와서 스위치만 보아도 학비를 마련할 수 있으니 입학금만 되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신다. 담임선생님은 모금운동을 하였다. 그러면서 “이것이 홍콩제 낙타오바인데 이것을 팔아서라도 너를 고려대에 보내겠다.”고 하신다. 고마운 말씀이시다. 나도 고려대에 가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다.
고등학교 때 내가 벌어서 고향에 보냈던 돈을 가지고 작은형은 송아지를 사서 기르고 있었다. 담임선생의 도움과 소를 판 돈으로 나는 고려대로 진학하게 되었다. 아호! 환호성이 절로 나온다.
영락성경구락부 2회 친구들
나는 영락성경구락부 고등부 3학년 때 남산고등학교로 전학하여 두 학교의 동창들이 있다. 모두 어려운 가운데 고학을 하던 친구들이라 우정이 남달리 두터웠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대학에 진학했거나 직장을 찾아 뿔뿔이 헤어져 서로 왕래가 없었다.
다만 영락 친구 중에 나를 포함하여 원성군, 고팔영, 이영선, 정명덕, 신유손, 전명화는 Faith Club(믿음 모꼬지)를 조직하여 친교를 맺고 있었으며 성군이와 영선이를 제외한 모두가 삼양동 난민주택에 살고 있어서 자주 만날 수 있었다. 우리는 졸업 직후 옥천 내 고향 집에 김세희 목사님을 모시고 여행도 하였다.
우리는 대학에 진학하고 입대하며 직장을 찾아 뿔뿔이 헤어져 함께 모이기가 이려워 졌으며 점차 소식이 두절되었다. 내가 휘문고등학교에 재학하고 있을 때 원 선생이 전화번호부를 보고 ‘김응모’라는 명부에 전화를 걸었더니 다섯 번째에 나와 통화가 되어 서로 환호성을 지르며 반기었다. 우리는 신촌에서 팔영이와 함께 소줏잔을 기울이며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1991년 영락졸업생들이 사은회 자리를 마련하였다. 30년의 세월이 흘러 친구들을 만났기에 서로 몰라보았다. 원성군 선생이 2회 졸업생을 모이게 하고 주소록을 작성하고 서로서로 연락하여 졸업 후 38년 만에 처음으로 <영2회>동창회를 가졌다. 모두들 반가워 얼싸안고 펄펄뛰며 환호성을 질렀다.
낮에는 직장에서 일하고 밤에 졸음과 싸우며 공부하던 친구들이라 우정이; 돈독하였다. 친구들의 직장도 다양하고 생활형편도 천차만별이어서 성격과 생활철학이 다르건만 우정 하나로 똘똘 뭉치었다.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 할머니이면서 마치 고등학생인양 언행에 흉허물이 없다.
참으로 좋은 친구들이다. 나는 부산에 있기에 참석을 못하지만 소식을 들어보면 함께 여행도 하고 경조사에서 자주 만난다고 한다.
친구들은 놀이기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1인당 백만 원씩 적금하기로 하였다. 개중에는 막노동을 하는 친구도 있고 자식에 의탁하여 몇 푼의 용돈을 타 쓰는 친구가 있는가하면 처녀 할머니가 있고 또 직업현장에서 일하며 자식을 교육시키는 친구도 있어 가정형편이 어려운 친구도 있다.
모인 당일의 회식비를 내기도 어려운 친구들이 어찌 거금을 마련할 수 있겠는가? 나는 말은 못하나 놀이기금의 마련이 못마땅하였다. 기금을 내지 못하는 친구들의 딱한 형편도 살폈어야 했다. 결국 낸 만큼의 돈을 모두 돌려주고 말았다.
영2회 동창들은 여자 친구들도 많은데 술에 취하여 나누는 대화에 쌍소리를 들을 때에는 남 보기에 민망할 때가 있다. 옆자리에 있는 다른 손님들의 눈치가 보이기도 한다. 가까울수록 예의를 지켜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신앙이 두터운 친구들이 많아 사랑으로 덮어주지만 나는 내색은 못하지만 눈살을 찌푸릴 때가 많다.
동창회에 잘나가지 못하는 나는 늘 친구들에게 죄를 지은 느낌이다. 그래서 용인 헌터에 마련한 시골집으로 친구들을 초청하고 아내와 함께 집안 안팎을 깨끗이 청소하느라고 고생하였다. 그곳은 우리 가족이 쓸 최소한의 가구만 있어 많은 친구들을 초청할 수 없으나 잔디밭에 자리를 깔면 되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친구들이 오는 날 비가 내려 진퇴양난이었다. 식탁 옆에 책상을 내어 겨우 앉을 수가 있었다. 그렇건만 친구들은 노래하며 춤추고 즐겁게 놀아 다행이었다. 회의하는 것을 보면 중구난방이고 엉성하지만 사랑과 우정으로 이끌어가니 다행이며 이런 친구들이 있다는 것이 내 삶에 향기를 더해준다. 모두 건강하고 즐겁기를 빈다.
꼴불견의 교복
내가 대학에 입학할 당시는 모든 대학생들이 교복을 입고 교모(校帽)를 쓰고 다녔다. 입학은 하였으나 지정된 교복을 맞춰 입을 돈도 없었다. 교복과 교모를 갖추지 않으면 학생증을 받을 수 없었다. 학생증이 없으면 도서관 출입을 할 수 없고 학교의 모든 시설물의 이용이 금지된다.
학생처장이신 현승종 교수님을 찾아뵙고 사정을 말씀드렸다. 학생 사정은 딱하나 학교 규정이 그러니 도울 수가 없다고 위로하신다. 나는 180cm 거구인 선배님(약방주인 친구)의 고려대 교복을 물려받았다. 팔과 기장만 줄여 입으니 내가 보아도 꼴불견이다.
핫바지는 이런 것을 일컬으리라. 그 교복을 입고 학생처 담당 직원을 찾아가 학생증을 교부받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