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락성경구락부 (15회)

영락성경구락부(현 영락고등학교 입학)

1956년 을지로 2가에 있는 영락교회에서 가난하고 불쌍한 학생들을 위하여 중,고등학교 과정 영락성경구락부(현 영락중고등학교)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었다. 이 배움터는 입학금이 없고 약간의 수업료만 내면 된다.

나는 개학이 한참 지난 후 4월 15일 입학하였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학교에 가서 졸음과 싸우며 공부하였다. 계병호 장로님이 교장이시고, 백상용 장로님이 교감이셨다. 인자한 엄마 같은 문병옥 집사님은 서무과장이시다. 우리 담임선생님은 영어를 담당하신 조병린 선생님이시다.

조병린 선생님은 학생과 대화 할 때는 선서하듯이 오른손을 드시고 경청하신다. 대부분 학생들은 착실한 교인으로 열심히 공부하였다. 급우나 선후배는 형제자매 같았다. 1회 선배들은 후배들을 사랑으로 이끌어주셨다.

그러나 개중에는 껄렁대는 불량배도 있었다. 조병린 선생님은 불량한 학생을 훈계하시고, 매로 다스릴 때에는 한쪽 팔을 걷어 올리게 하고 당신의 팔도 걷어 올린 후 당신부터 때리고 학생들을 때리는 것이다. 즉 옛날 자식이 잘못을 저지르면 아버지는 회초리를 만들어 들고 조상의 산소 앞에 가서 종아리를 걷고 자식으로 하여금 자기의 종아리를 때리게 하여 자식의 죄를 조상에게 용서를 구하는 자편(子鞭) 교육을 몸소 실천하였다. 우리는 훌륭한 선생님을 모신 것을 하나님께 고맙게 생각했다.

조병린 선생님은 해방촌 판자집에 사셨다. 하루는 하교 길에 전봇대에 의지하고 움직이지 못하는 선생님을 학생들이 발견하고 댁까지 모시었다. 영양실조에 굷주려 걷지를 못하는 것이었다. 학생들이 십시일반으로 쌀을 모아 드렸다.

내가 다니던 백지도 출판사가 망하여 나는 월급 대신에 백지도를 받고 나왔다, 그 당시 서울에는 장로교회에서 운영하는 중ㆍ고등학교 과정 ‘성경구락부’가 많았다. 나는 영락교회 고(高) 장로님의 소개장을 들고 백지도를 팔러 다녔다. 고 장로님과 성경구락부에 근무하시는 선생님들의 도움이 컸다. 그래서 지금도 그 분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금치 못한다.

담임이신 조병린 선생님이 영락교회 목사 사택에 사실 때 나에게 방 하나를 주어서 자취를 하였다. 사고무친(四顧無親)인 객지에서 제일 어려움은 숙식이다. 천하의 고아나 다름없는 나는 이곳저곳 전전하며 살아야 했다.

그 후 조병린 선생님은 아르헨티나에서 선교사업을 하시다가 귀국하셨다가 작고하셨다. 스승님으로서, 하나님의 종으로 헌신하시다가 하나님 곁으로 가시었다. 선생님 주님 곁에서 편안히 쉬십시오.

계병호 작사. F.D Giardini 작곡인 영락교가

영락의 동산에 새 생명 자란다 씩씩하게

은혜와 진리로 우리 몸 기를 제 영원한 복락을 나리소서

영락의 별들아 이 동산 빛내자 찬란하게

사랑과 봉사로 제 지분 다 할제 영원한 복락을 나리소서

▲ 上 영락고등학교 총동문회의 즐거운 체육대회 / 下 영락고등학교 교가 악보

한 많은 아리랑고개

나는 백지도를 메고 을지로 4가에서 승차하여 돈암동 전차 종점에서 내렸다. 오른쪽 큰 도로는 미아리고개이고, 왼쪽이 아리랑고개이다. 나는 몹시 배가 고팠으나 점심을 사먹을 만한 돈이 없었다. 길가에서 지게에 오이를 파는 아저씨에게 10환을 주고 오이를 사서 빗물이 맑게 흐르는 도랑에 씻어먹었다. 이 고개를 넘으면 정릉이다.

나는 성경구락부에 들러 백지도를 팔고 집에 왔다. 농약이 없던 때이건만 공복에 먹은 오이는 좋지 않았던 모양이다. 심한 목통에 설사하고 토하고 하여 사경을 헤메었다. 조병린 선생님께서 약을 주었건만 여전히 고통은 계속되었다.

나는 중ㆍ고등학교 지리선생님을 찾아가 백지도 학습장을 보이고 주문을 받았다. 월급 대신 받은 백지도를 가까스로 다 팔았다.

그 후 <국민주보사>에 취직을 하였다. 충무로에 있는 신문사는 1주일에 한번 신문을 발행하여 전화번호부를 보고 무작위로 발송하고는 중구와 종로구에 사는 독자들의 주소만 주고는 수금을 하여 오게 하였다. 그 당시 전화가 있다면 갑부이거나 고관대작인 유명인사들이다.

“국민주보사에서 신문대금 받으러 왔습니다.”

“누가 신문을 본다고 했냐? 너희들 맘대로 넣고 돈을 내라니. 그리고 이소설이 뭐냐?”

에로물의 소설은 당시 경원시 하던 때다.

“용서하십시오. 고학생입니다. 이번만 신문대금을 주시면 신문사에 가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래, 이번만이야.”

몇 번이고 졸라대어 겨우 받아냈다. 그러나 대부분 혼쭐만 나고 받지를 못했다. 신문사는 수금이 저조하다고 성화다. 서울시를 종일 뛰어다니다가 학교에 가면 졸음이 몰아친다. 조는 것이 선생님에게 죄스러워 허벅지를 꼬집어보나 졸음을 쫓을 수가 없다.

학교를 마치면 신문사에 와서 의자를 나란히 놓고 신문지를 깔고 옷을 더 끼어 입고 담요 한 장으로 새우잠을 잔다. 신문지는 훌륭한 요의 역할을 하며 보온이 된다.

국민주보사는 재정난으로 문을 닫았다. 그때 서울신문은 독자가 적어 신문확장원을 고용하여 구독자를 모집했다. 내가 신문사에 나가면 신문보급소에서 배달원이 나와 나를 안내한다. 내가 집집마다 다니며 구독자를 확보하면 그 대가를 받게 된다. 그런데 확장책임자가 자기 수당을 떼고 나면 내게 오는 금액은 얼마 되지 않았다.

인현시장 옆 골목에는 우거지 국에 밥 한 공기, 김치 하나로 길거리에서 밥을 판다. 땅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국에 밥을 말아 빨리 먹어야 먹은 것 같다. 김치도 모두 먹고 물로 배를 채운다. 천천히 먹다가는 먹은 둥 마는 둥 간에 기별도 안 간다.

서울에서 제일 싼 길거리의 노천식당이다. 나는 진수성찬보다 더 맛있게 먹는다. 한 그릇 더 먹고 싶으나 그럴만한 여유 돈이 없다. 돈도 없는 주제에 식욕은 왜 그리 왕성했을까? 야간수업이 끝나고 오면 이 노천식당은 모두 철수하고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