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학길에서의 석전(石戰)과 횃불...

우리들이 등교할 때면 나무하러 가는 학교 근처에 있는 바드리 마을 청소년들과 마주치게 된다.

그때는 담배를 썰어 말려 종이에 말아 피웠다. 조금 고급이라면 봉지에 든 연초인데 노인들은 이 담배를 사서 긴 담뱃대에 넣어 피우거나 종이에 말아 피웠다. 그런데 종이가 귀해서 담배를 말아 피울 종이가 필요했다.

가난한 농촌의 우리들은 16절지 백지를 사서 접고 또 접어 잘라서 끈으로 매어 공책으로 썼다. 종이도 누르스름한 색깔에 고급이 아니기 때문에 종이에 딱지가 붙어 있어, 우리는 몽당연필에 침을 발라 겨우 필기를 할 수 있었다.

버드리 나무꾼들은 우리에게 종이 한 장씩을 요구하고, 주지 못하면 매일 종이의 납부실적이 누적되고 나중에 폭력을 행사했다. 나는 5학년이면서 6학년까지 남곡리 초등학생을 총지휘하여 그들과 싸워야만 했다. 우리의 책보에는 항상 돌이 들어 있고, 주머니에도 비상용 돌이 들어 있었다. 그들과 만나면 돌로 공격하면서 등하교를 해야만 했다.

이 싸움이 확대되어 이제 버드리와 남곡리의 마을의 싸움이 되었다. 우리는 산등성이에 돌을 많이 준비해놓고 능선을 따라 인원을 배치한 후 그들과 석전(石戰)놀이를 벌였다. 내 지휘에 있는 학생들은 내 지시에 따라 공격과 후퇴를 일사분란하게 하였다.

어느 쪽도 상리는 없었다. 한번은 상대방의 돌에 얼굴을 맞아 나는 코피가 터졌다. 돌들이 난무하는 곳을 뚫고 그 놈만 돌격했다. 버드리 마을 한가운데까지 추격하여 마을 골목에서 돌이 난무하니 어른들은 장독대가 깨질까봐 소리소리 쳤다. 나는 기어이 그 놈을 잡아 복수하고 돌아왔다.

이 사건으로 남곡리 유지와 버드리 유지가 만나 다시는 이런 일이 없기로 합의하여, 우리는 담배종이의 속박과 나무꾼의 괴롭힘을 면할 수 있었다.

중학교에 진학하면 국가고시를 보고 그 점수에 따라 중학교를 선정하여 진학하였다. 이 국가고시의 점수는 곧 초등학교의 명예가 수반되어 방과 후에도 공부를 하였다.

우리 마을에서는 6학년이 나 혼자이므로 어두운 밤에 귀가하려면 몹시 무서웠다. 6.25 때에 죽은 시체를 여기저기에서 많이 보았기 때문에 더욱 무서웠다. 그래서 노래를 부르며 뛰어오면 귀신이 뒤따라오며 소리를 내는 환청이 들려 온몸이 땀으로 젖었다. 때로는 목사리 친구들이 먼 길을 우회하여 오다가 갈림길에서 그들이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면서 가면 나는 우리 마을을 향하여 쏜살같이 뛰어 내려갔다.

실전 같은 횃불싸움

우리 고장에는 정월대보름이면 쥐불놀이를 하고, 마을과 마을끼리 횃불싸움놀이를 하였다. 우리 마을은 모두 9가구뿐이고 친구라야 한명 뿐이니, 다른 마을과 횃불싸움을 할 수가 없었다.

▲ 옛날 아이들의 석전(石戰) 모습

나는 굵은 대나무를 뾰족이 잘라 잘 다듬고 참기름을 발라 불에 약간 구워 대창을 만들고는 대나무 끝마디에 칡줄기를 여러 가닥 단단이 매었다. 이 대창은 생나무도 팍팍 들어가는 무서운 흉기이다. 나는 만일에 대비하여 작은 곤봉을 허리춤에 차고, 이 흉기를 들고 다른 마음과 마을이 싸우는 한복판에 들어가 닥치는 대로 아무에게나 이 칡도리깨를 위둘렀다.

칡줄기를 맞으면 몹시 아프나 상처는 나지 않았다. 조자룡이 유선을 품에 안고 적진을 물가르듯 가르듯이 뛰어다니면 모두 도망쳤다. “김응모 떴다!”하고 누군가가 소리치면 줄행랑을 쳤다. 그런 일은 없었지만 만일 칡줄기를 잡히면 다리를 향해 대창으로 찌르려고 하였다. 참으로 상상하기도 싫은 독종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무모하기 짝이 없으며, 참으로 소름끼치는 행동이었다.

인근 마을에는 횃불싸움이 없었다. 소문에 적하리와 세신리에서 횃불싸움이 있다고 한다. 나는 전투준비를 집에서 7km나 떨어진 곳으로 원정을 갔다. 접전이 벌어진 곳에 뛰어들어 그 특유의 칡도리깨를 휘둘렀다.

그런데 아뿔싸! 나에게 맞은 상대가 나를 잡으려고 달려들었다. 한번만 맞으면 누구든지 도망쳤는데, 상대는 달랐다. 논둑에 뛰어오르며 휘려 쳤건만 끄떡도 하지 않고 따라왔다. 드디어 생포되었다. 그 분이 달빛에 요리조리 살펴보건만 인근마을의 아이가 아니다.

내 무기를 보고는

“이놈 사람 잡을 놈이네. 너 어디 사니?”

“남곡리에 사는데요.”

“뭐? 남곡리? 남곡리에서 너혼자 여기까지 왔어?”

“예.”

“무엇하러 예까지 왔니?”

“저희 동네는 횃불싸움이 없거든요.”

“네 이름이 무엇이냐?”

“김응모인데요.”

“너, 형이 있니?”

“에, 큰형 응윤, 작은형 응익, 또 응섭.”

“뭐라고? 네가 응윤이 막내동생이라고........ 내가 응윤이와 동기동창이다. 똑똑한 막내가 있다더니 네가 바로 그놈이로구나!”

겁이 없는 나는 8년 선배인 어른을 때린 것이다. 맏형의 친구라고 나는 이제 살았구나 싶었다.

“너, 이것 가지고 다니다가는 사람 죽이겠다.”

“형, 그것 없으면 무서워서 집에 못가는 데요.”

선배님의 일장 훈시를 듣고 석방되어 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돌아왔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렇게 했는지 이해가 안 된다. 참으로 당돌한 행동이고, 상상하기도 싫은 행동이었다. 하늘이 도와 사람을 상하지 않게 한 것이 천만다행이다. 소년원에 갈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