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났다하여 우리 가족은 피난보따리를 짋어지고 오지인 청마리 둘째 누나네 집으로 가다보니 패잔병들이 남쪽으로 향하여 걷고 있었다. 우리는 공산당이 이미 들어온 것으로 알고 돌아왔다.
곧 공산치하가 되어 밤에 각종 궐기대회에 동원되기도 하고 부역에 나가기도 하였다. 공산당은 잘 살고 못사는 사람 없이 모두가 평등하게 산다고 하여, 농촌사람들은 좋은 세상이 온 줄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인민군은 도망가고 수복이 되었다. 잔유 빨치산들이 서대산에 은신하였다. 옥천과 영동경찰서만 점령 못하고 민가에 침입하여 무차별로 약탈하였다. 민간인들에게 약탈물을 운반하게 하고, 노인들은 돌려보내고 젊은이들은 잡아두었다.
청산면에도 빨치산이 있어, 소규모 경찰이 갔다가 대부분 전사하고 일부만 구사일생으로 살아오기도 하였다.
6.25와 1.4후퇴 때는 북한과 서울에서 피난 온 사람들이 많았다. 이들은 가져온 식량이 떨어져 구걸하며 살았다. 가난한 농민들은 자기들도 연명하기 어려워 피난민을 돌볼 수가 없었다. 피난온 많은 사람들이 영양실조에 병이 들어 비참하게 죽어갔다. 여우가 여기저기에 무덤을 파서 시체를 파먹기 때문에 무덤의 주변에는 찢어진 옷가지와 먹다 남은 시체가 즐비하였다.
첫째와 둘째 형은 인민군에 징병되지 않으려고 외가에 피신하였다가 수복이 되어 돌아와서는 곧 국군에 입대하였다. 그래서 농사일을 작은형과 내 몫이 되었다.
그 당시 시골에서는 웃지 못할 일들이 자주 일어났다. 그런대로 환경이 좋아 남쪽으로 피난했다 돌아온 가족들은 무슨 큰 애국자가 된 것처럼 오만하기 그지없었다. 피난을 못가고 공산치하에 머물렀던 사람들은 매국노 취급을 하는 꼴이 어린 나에게 몹시 역겨웠다.
그런가 하면 공산치하 때는 남의 집 머슴살이 하던 순박한 사람들을 무슨 위원장이라 하며 감투를 씌워놓으니, 그는 무슨 큰 벼슬에나 오른 듯이 뽐내고 다니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어린 나이지만 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6학년 때 반장은 흰 운동모자에 세 줄의 검은 띠를 두르고, 부반장은 두 줄, 각부 부장은 한 줄을 두르게 했다. 이는 민방위훈련을 하는 어른들을 흉내 낸 것이다. 부서별로 반원을 배치하여 조직적으로 반 운영을 하였다. 부반장은 흥재, 각부 부서네 관택, 연종, 문식, 희셕, 영화, 연섭 등으로 기억한다. 모두 공부도 잘하고 모범생이었다.
우리 반의 희석이는 서울에서 피난온 수재이다. 나를 형이라고 부르면서 잘 따랐다. 그 후 배재고등학교를 평균 90점으로 졸업하여, 일간신문에 서울의 5대 천재라고 기사가 났었다.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공군 의무관으로 복무 중 대전에서 연탄가스 중독으로 사망하였다.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더욱이 약혼을 하고 결혼을 며칠 앞둔 상태였다.
우리는 친구를, 나라는 인재 하나를 잃은 것이다. 장래에는 친구들의 울음이 그칠 줄을 몰랐다. 희석이가 의대에 다닐 때 내가 희석이네 집에 놀러 가면 희석이 아버님은 만나는 사람들에게 “얘는 희석이보다 공부를 더 잘하는데, 집안 사정이 어려워 고학을 하면서 고려대에 다닌다.”고 나를 칭찬하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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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전쟁 당시 서울 전시(戰時) 학교에서 공부하는 아이들. 한 어린이가 교과서를 읽고 있다. 1953년 6월 5일 종군기자 워런 리가 촬영했다. [출처 ; 박대헌(완주 책박물관 관장)]와신상담 할 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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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후 우리는 병정놀이를 많이 하였다. 나는 항상 그들의 대장이고, 소대장, 상사, 헌병, 졸병으로 구성하고, 분대 편성은 대장인 내가 하였다. 군대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풍월이 있어 제법 위계질서를 확립하였다. 우리는 병정놀이도 하고 밤이면 영권이네 뒷방에 모여 공부도 함께 하였다. 마을에서의 이러한 나의 병정놀이 경력으로 학교에서도 반 조직을 제법 체계화하였다.
운동장 조회가 열리는 날이면 나는 4학년 이상 모두에게 비를 가져오게 하여 학교 전체를 깨끗이 쓸었다. 조회를 하기위해 전교생을 오와 열을 맞추게 하고 “열중쉬어!” 하고 교장 선생님이 단상에 오르면 “전체 차렷! 교장선생님께 경례!”하고 뒤로 돌아 “열중쉬어!”한 뒤, 훈시를 듣는다.
나는 그런 내가 잘 난 것 같아. 재고 다닌 것 같다. 지금도 여자동창들은 집사람에게 “응모요, 초등학교 때 몹시 무서웠어요. 지각하여 뒷문으로 살짝 들어가면 용케도 알고 청소당번을 시켰어요.” 지금 생각하면 당시의 나는 천방지축의 골목대장 노릇을 한 것 같다.
우리 마을에는 한글을 모르는 아주머니들이 많이 있어, 사랑에서 한글을 가르쳤다. 남을 가르치는 일이 나의 운명이었나 보다. 모두 열심히 하여 한글을 해독할 수 있어, 먼 친정에 편지를 쓰기도 하였다.
5학년 때다. 6학년 선배들은 우리 학교에서 누가 가장 주먹이 센가를 가리고 싶어 했다. 그래서 6학년 반장과 5학년 반장인 나와 주먹시합을 부추기었다. 결전의 날, 나는 학교 벽쪽에 섰다가 위치를 바꿔 일방적으로 주먹과 발차기를 하였다.
운동장을 누비며 싸움은 계속되었다. 6학년과 5학년의 응원도 대단하였다. 시간이 갈수록 내가 우세하였다 .나는 마치 시라소니처럼 날쌔게 치고 빠졌다. 6학년 반장이 일방적으로 몰리자 6학년 선배들은 4학년인 그의 동생에게 몽둥이를 들려주었다. 6학년의 체면을 세우기 위함인 것 같았다.
정신없이 싸우고 있는데, 난데없이 등 뒤에서 몽둥이로 때려치는 놈이 있었다. 나는 형제를 상대하여 싸웠다. 그 다음부터 나는 우리학교 최고의 주먹이 되었다.
내가 싸움을 잘 하는 이유가 있다. 어려서부터 누구에게 맞고 오면 형들은 나를 데리고 나를 때린 애와 다시 싸움을 시켜 이겨야 집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꼴을 베러 가면 이웃집 선배와 내가 한 팀이 되어 작은형과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따따시 상대야루요.”를 연발하며 프로레슬링 같은 놀이를 하다가 해가 저물어 가면 서둘러 꼴을 베어왔다.
때로는 모래사장에 기둥을 세우고 새끼줄을 매어놓고 대나무 장대를 가지고 봉고조도 하였다. 철봉과 평행봉도 하고, 모래주머니를 때리는 권투운동도 하였다. 지금도 담벼락보다 높은 장대가 있으면, 웬만한 담을 뛰어넘을 수 있는 실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