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시간에 신는 짚신
공작시간이면 집에서 짚의 검불을 추리고 물레 적셔 떡메로 짚은 두들겨 부드럽게 하여, 그 짚단을 매고 학교에 간다. 공작시간이 되면 책상을 모두 뒤로 밀치고 새끼를 꼬아 두 엄지발가락에 걸고 자기의 짚신을 삼기 시작한다.
전교생이 짚신을 신고 다니니, 자기의 짚신은 자기가 삼아야 한다. 비 오는 날에는 짚신에 물이 스며들어 흙이 엉겨 붙고, 눈 위를 걸으면 눈이 엉겨 붙어 갑자기 키가 커진다. 짚신을 신고 주먹만한 공을 차면 공이 보내려는 방향으로 가지 않고 삐뚜로 가기 때문에 대부분 맨발로 공을 찬다.
날이 풀리면 전교생이 맨발로 등교하고, 맨발로 교실에서 공부하니, 교실인지 맨땅인지 구분이 안 간다. 비 오는 날이면 교실은 더욱 엉망이다. 모두 맨발의 청춘이다.
2학년 때의 오갑혜 담임선생님은 까만 치마에 흰 저고리를 입고 다니셨는데, 천사같이 보였다. 등교할 때 바드리 앞 재를 넘으면 금암리에서 오시는 선생님이 멀리 보였다. 나는 급히 달려가 선생님의 도시락(양은으로 만든 것)을 받아들고 가는 것이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이웃마을에 사는 정강영 선생님과 조동환 선생님이 당직이면서 도시락을 학교에서 선생님 댁에 전해주고, 이튿날 아침에는 선생님 댁에서 가져온 도시락 두개와 나의 도시락을 가지고 등교해야 했다.
화학비료가 없던 때라 여름철에는 때때로 4학년 이상은 집에서 낫을 집에서 숫돌에 잘 갈아 지참한다. 그리고 풀을 베어 퇴비를 마련하고 학교 실습농지의 농작물에 줄 거름을 마련하였다. 모두 촌놈들이라 낫질을 잘했다. 반장인 나는 베어 온 풀의 일정량을 검사하고 합격, 불합격을 판정했으니 우리 급우들이 얼마나 싫어했을까?
일정시대의 우리의 형들은 소나무의 관솔을 마련하여 학교에 제출하였다. 기름이 없는 일본군이 동력의 원료로 사용하기 위하여 관솔을 강제로 채취하게 된 것이다.
조령리는 경부고속도로 금강휴게소 동쪽 산 너머에 있는 산골마을이다. 산을 넘어 금강을 끼고 금암리를 거쳐 학교까지 약 8km가 된다. 이곳 학생들은 12살에서 14살에 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니 적령기에 들어온 친구들과 5-7세 차이가 난다.
이들은 학교에 지각하지 않으려고 책보를 허리에 매거나 어께에 둘러매고 늘 뛰어서 등하교를 한다. 그 결과 학교 운동회때 마라톤경주에서 보면 1-5등까지가 모두 조령리 학생들이다.
7세에 들어온 친구들 중 ‘애기’라는 별명을 가진 친구 이석순이 있었다. 학교 근처가 집이니까 점심시간이 되면 집으로 뛰어가 점심을 먹고 왔다. 우리는 엄마젖을 먹고 왔다고 놀려대곤 했다. 이 친구는 나중에 속리산광광호텔 설계에 당선된 건축가로 충북 교육청을 거처 서울서교육청에 근무한 훌륭한 건축가이다. 지금도 사회활동을 많이 하는 근면한 노인이다.
3학년 때의 일이다. 부반장이며 부잣집 외아들인 임흥제가 운동화를 신고 다녔다. 운동화를 신고 공을 차면 날듯이 가뿐하며 공도 멀리 차진다. 모든 학생들이 부러워하는 대상이었다. 흥재는 나의 말을 잘 듣고 잘 따라서 운동화를 빌려 신고 공을 찰 기회가 많아졌다. 이 친구는 후에 요업과를 졸업하고 회사를 운영하여 대기업가가 되었다. 동이초등학교의 큰 행사가 있으,면 지원금을 혼자 맡아 보내던 마음이 고운 의리의 사나이다.
6.25사변 발발
초등학교 4학년 때 6.25사변이 터졌다. 해방이 되자 빨갱이들이 시골에 잠입하여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공산주의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소박한 농민들을 세뇌하였다. 공산당이 되면 지주도 소작인도 없이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천국이 된다는 것이다.
모두 잘 산다는 말에 공산당 입당원서에 도장을 찍기도 하였다. 이른바 보도연맹이다. 보도연맹에 가입한 사람들은 지서(파출소)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았다. 순경과 면서기의 집안과 이해관계가 있거나, 원한관계가 있거나, 미운 털이 박힌 사람은 죄 없이 끌려가 모진 고문에 못 이겨 공산당이라고 허위자백을 해야만 했다.
아버지도 순경의 집안과 앙숙이 되어 괘씸죄에 걸려 지서에 끌려가 모진 고문에 못 이겨 허위자백을 하였다. 이렇게 억지로 조작된 공산당원이 많았다. 고문 끝에 돌아온 아버지의 온 몸은 붉고, 퍼렇고, 해이지고....... 6.25가 터지자 보도연맹에 가입한 사람들은 경찰에 의하여 모두 학살되었다.
6.25사변이 터지자 아버지께서는 어디에선가 처형되어 시신도 못 모셨다. 어머니와 형들은 아버지의 시신을 찾겠다고 처형된 이곳저곳을 밤에 몰래 찾아가서 부패된 시신을 입고 있는 옷으로 확인하여 찾으려 하였으나, 결국 찾지 못했다. 시체는 두 사람 씩 등지게 하여 전선으로 묶고 구렁텅이에다 사살하고 대충 묻어 거의 다 부패되었다고 했다.
보도연맹 학살로 수많은 과부촌(寡婦村)이 졸지에 생겨난 것이 한국의 비참한 현실이었다. 6.25는 정쟁에서 죽은 군인들보다 죄 없이 희생된 사람과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고 보복으로 학살된 일반 백성이 훨씬 더 많다고 생각된다. 죄 없는 사람이 의도적으로 공산당으로 만들어져 처형되거나, 반동분자로 오인되어 처형된 선량한 백성이 우리 고장에도 많았다.
나는 아버지를 미워했다. 그 수많은 재산을 도박으로 다 날려 우리를 알거지가 되게 하였으며, 그 후에도 경찰 집안과 불화로 비명횡사하였다. 아버지의 후유증은 3대까지 이어져 나는 어려운 가룬데 형제자매와 조카들을 돕느라고 등골이 빠졌다. 산소에는 아버지의 시신을 대신해 아버지 이름이 새겨진 돌이 어머니와 함께 합장되었다.
나는 산소에 들러 헌주(獻酒)할 때 “요것은 어머님의 잔”하고 한잔만 부어놓고, 절을 했다. 아버지에게 술 한 잔도 부어주기가 싫었다. 이런 태도를 보고 형수님들은 “아버지가 없으면 어떻게 태어납니까? 이제 박사도 되고 교수도 되었으니, 아버지에 대한 섭섭함을 푸세요.“라고 권유하였다.
그때부터 아버지의 잔도 부어놓았다. 우리 가족은 산소를 찾을 때 나의 태도가 변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