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이 되자 농민들은 나무를 베어 숯을 만들어 돈을 장만했기 때문에 온 산이 벌거숭이가 되었다. 해방 후 법질서가 마비되었던 시절이니 누구하나 단속하는 사람이 없었다.
농촌의 재앙이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산에 나무가 없어졌으니, 비만 오면 예서 제서 산사태가 나서 농토를 뒤엎었고, 도랑이 범람하여 농토의 유실이 극심하였다.
어린 우리에게도 “남이야 밤송이로 밑을 닦거나 말거나. 남이야 뒷간에서 낚시를 하거나 말거나”란 유행어를 쓰곤 했다. 해방으로 자유의 세상이니 모든 것이 자유라는 생각이다. 자유와 방종, 책임과 의무를 구별 못하고, 도덕성이 결여된 채 모든 것이 무법천지였다.
참으로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조차 모르던 시절이었다. 땔나무에 의존하던 시절에 산에 나무가 없으니, 이젠 나무뿌리를 캐어 말려 때야만 했다. 그러니 온 산은 벌거숭이에다 나무뿌리마저 캐버렸으니, 홍수의 난리를 겪는 것이 당연했다.
급기야 주민들은 6km나 떨어진 갈거리나 문골의 산에 가야만 땔나무를 할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험준한 산을 높이 올라야만 했다. 당시에는 짚신이 유일한 신발이니, 몸소 삼은 짚신 한 켤레는 여분으로 가져가야 나무 한 짐을 해올 수 있었다. 그런 고생에도 냇가에 앉아 된장에 무장아치를 반찬으로 해서 꽁보리밥을 먹는 것이 그때의 유일한 위안이었다.
산신령님의 두려움
우리 마을 입구에 장승이 있고, 그 반대 어구에도 장승이 있다. 그리고 뒷산 향나무 아래에는 마을의 수호신인 산신령을 모신 서낭나무가 있었다. 마을 어른들은 “서낭나무 아래에 마을을 지켜주는 산신령님이 계신데, 가까이 가면 산신령님이 호랑이로 변하여 사람을 잡아먹는다. 특히 호랑이는 어린애들을 잘 잡아먹는다. 그러니 가까이 가지 마라.”고 하였다.
호기심이 많은 우리 꼬마들은 그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살금살금 기어가 멀리서 살펴보면 정말 호랑이인지 무엇인가가 있는 것 같았다. 겁에 질려 가슴이 두근거렸다. 누군가가 달아나기 시작하면, 우리 꼬마들은 덩달아 엎어지고 뒹굴며 마을까지 단숨에 달렸다.
온몸은 볏겨지고 깨어져 만신창이다. 우리는 호랑이이게 잡혀먹지 않은 것을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다시는 가까이 가지 말자고 다짐했다.
신령스러운 곳을 어린애들이 더럽힐까봐 어른들이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정월 대보름이 되면 가정이 깨끗하고 행동거지가 단정한 집은 제주(祭主)로 삼아 정결하게 동신제를 지냈다. 서낭제를 필두로 마을 위쪽 장승을 거쳐 마지막에 아래쪽 장승에 제사를 올렸다. 우리는 제사를 끝내면 나누어주는 떡을 얻어먹기 위해 추위도 모르고 모닥불을 피우고 기다렸다.
제주는 정결한 짚을 깔고, 참기름에 솜을 말아 불을 밝히고 제물을 차려놓고 재배를 하였다. 마을의 복을 빌고, 가구마다 축원을 올리며 창호지에 불을 붙여 소지를 올렸다. 입속말로 소원을 빌기 때문에 무슨 말인 줄은 모르겠으나, 누구네 집이라는 말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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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0년대 농촌아이들의 모습 [출처 ; 사오십대 쉼터 다음카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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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제사가 끝났다. 우리는 장승에 접근하여 나누어주는 뜨끈뜨끈한 백설기를 입이 메어지라고 쑤셔 넣었다. 조금씩만 더 주었으면 좋으련만, 아쉬움을 달래며 휘영청 밝은 달 아래 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돌아온다. “랄라랄라랄라.......”
우리 동네는 고요한 밤이나 비가 오는 날이면 기차의 기적소리가 먼데서 들려온다. 꼬마들은 기차를 보려고 옥천역까지 걸어갔다. ‘칙칙폭폭’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거대한 철마가 달려온다. “삑~” 하는 기차소리에 놀라 도망치는 아이도 있었다. 역에는 각종 쇠붙이가 많이 있어 주워 모아왔다. 엿으로 바꾸어먹기 이해서였다.
열 살짜리초등학교 1학년
내 나이 여덟 살에 해방이 되자, 남양군도에 징용갔던 아버지, 숙부, 셋째 매형이 귀국하였다. 우리는 성씨(成氏)네 위토답(位土沓)을 얻어 농사를 지었다. 농사일을 모르는 아버지는 전달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나와 셋째 형이 아버지와 함께 농사를 지어야만 했다.
그러나 소작으로 우리 가족을 먹여 살리기에는 부족하였다. 이런 형편이니 우리 9남매는 나 이외에는 모두 초등학교 졸업이 고작이거나 아예 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다.
동이초등학교는 6km 정도 떨어졌는데, 적령기에 입학하면 어려서 다닐 수가 없었다. 개울을 건너 높은 재를 넘어야 하는데, 겨울에 눈이 오면 재를 넘기가 힘들어 6학년 형들이 삽을 들고 제설작업을 한 후 짚을 깔고 겨우 넘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열 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하였다. 장마가 지어 냇물이 불면 학교에 가지 못했다 육상선수이신 조길준 선생은 날 듯이 냇물을 뛰어 건넌다. 그 모습에 우리는 “와!” 하고 감탄한다. 선생님은 건너편에서 집으로 돌아가라고 한다. 큰 냇물이었건만 다리는 하나도 없었다.
동이초등학교 13회는 입학당시 2개 학급이었다. 그것도 3학년이 되자 중퇴자가 많아 1개학급이 되었다. 나는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줄곧 반장을 했다. 그때는 선거에 의해 반장을 선출하는 것이 아니고 공부가 1등이고 건강하면 반장으로 임명하였다.
하교할 때는 무덤의 잔디밭이나 냇가의 모래사장에서 씨름도 하고, 장난도 하며 높은 언덕에서 뛰어내리는 모험도 즐겼다 봄에는 온 산에 진달래가 만발하여 활활 타오르는 것 같았다. 좋은 송이를 꺾어 꽃뭉치를 만들고, 꽃술로 내기를 하며 꼭 따먹기도 하였다. 잔대 뿌리를 꼬챙이로 캐서 물에 씻어 질겅질겅 씹기도 하였다.
뽕나무에 오디가 까맣게 익으면 농촌의 어린이에게는 맛있는 과실이 된다. 뽕밭에 들어가 오디를 따먹다가 주인에게 들키면 줄행랑을 쳤다. 오디만 따먹으면 되련만 뽕나루 가지를 부러뜨리거나 부룩[間作]으로 삼은 곡식을 짓밟아 해치기 때문이다.
콩이 누렇게 익으면 마른 나무를 반반하고 단단한 길에 모아놓고 콩을 구운 다음, 나뭇가지로 두들겨 콩알을 떨어놓고 윗옷을 벗어 재를 날리고 주워 먹는 재미로 콩서리를 하였다. 밀이 익으면 불에 구워 손바닥으로 비벼서 호호 불어먹으면 입 언저리는 까만 재가 묻어 검둥이가 되기도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