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비참하며 기합이 약이다
51년 5월 간노안 전투 때의 일이다. 전 사단에 비상이 걸렸다. 후방요원도 총동원이다.
차가 들어갈 수 있을 길에서 약 30리 산속에서 적과 전투가 벌어졌다. 차량이 들어가지 못하는 곳에서 전투가 이루어지니 보급을 할 도리가 없었다. 거기다가 폭우가 쏟아져서 장마가 대단했다.
병기중대원도 총동원이다. 내 소대원도 탄약, 병참물자, 철조만 등을 어깨에 메고 산으로 올라갔다. 도중에 징집된 많은 민간인 노무요원과 마주쳤다. 이들도 탄약을 운반하고 있는데, 의복은 여름 흰옷 하나로 하나같이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신은 대개 밑바닥이 닳아서 없어지고 신의 윗 천만을 끈으로 발과 함께 질끈 동여매고 밑은 발바닥이 땅에 그대로 닿게 되어 있었다.
한 병사가 노무대원 약 10명씩을 인솔하여 그 무거운 탄약을 어깨에 메고 일선 전투지에 운반하는데 그곳에 가야만 주먹밥 한 개씩을 먹을 수 있고 다시 원 위치에 돌아와야 또 주먹밥을 얻어 먹을 수 있으니 그 열에서 이탈하면 산속에서 굶어 죽는 편이다.
그것뿐이랴? 일선에 가서 탄악 등을 내려 놓으면 돌아갈 때는 부상병을 또 단가에 실려 후방으로 운반하는 것이다. 장교가 부상을 하면 병사가 만일을 염려하여 따라간다. 그렇지 않으면 극한에 이른 그들도 사람인 이상 남이 안보면 부상병을 계곡에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고통의 한계가 계속되는 것이 전쟁인즉 적도 같은 상황일 것이다. 이러한 어려움을 어느 쪽이 잘 견디느냐가 종합되어 전쟁의 승패가 가려지는 것이리라.
군의 장교는 흔히 마음이 좋고, 덕이 있어야 부하가 잘 존경하고 잘 따른다고 하나 이것은 전쟁이 없는 평상시에는 잘 모르나 전투가 격렬하게 벌어지고 있는 극한 상황에서도 맞는 것일까?
탄약을 10~20대의 트럭에 싣고 전방에 추진보급을 할 때는 보통 선임하사 아니면 향도가 맨 앞의 차에 타고 마지막 차는 내가 타되 각 차량은 50야드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움직이기 마련이다. 그런데 목적지에 도착하고 나면 언제나 1~2대의 차량이 안 보인다. 한참 기다리다보면 뒤쫓아 오는 수도 있고 너무 시간이 늦으면 할 수 없이 먼저 탄약을 그 부대에 인계하고 그대로 돌아오면 그때가 되어서야 달려오는 수가 있다.
나중에 온 운전수에게 물어보면 라지에타 또는 스프링이 어떻고 브레이크가 고장났기 때문이란다. 주야로 차량을 운행하니 그럴 수도 있으리라 생각하여 처음에는 그대로 넘겼다. 그랬더니 점점 낙오차가 많아지고 뒤따라오는 시간이 연장되는 것이 아닌가?
나중에야 알고 보니 이들 중의 상급사병은 수도사단이 이북에 갔다올 때 대개 여자를 데리고 나온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따라서 보급수송 도중에 일부러 차량간격을 띄어서 중간차량이 이탈하여 여자를 만나고 늦게 뒤쫓아 오는 것을 알았다. 별수 없다. 소대원을 모아놓고 일장훈시를 한 다음에 이제 수송차량이 늦게 오면 고장이고 무엇이고 이유 없이 선임하사관으로 하여금 무조건 엎드려 뻗쳐 기합을 넣게 하였다.
그 후로 늦은 차량이 상당히 적어졌다. 평상시에는 인정 같은 것이 통할지 모르나 상황이 급할 때는 누구나 흥분되어 있고 극한적인 생각을 하는 것이다. 병기부장도 아침에 사단 참모회의에 갔다 나오면 눈에 핏발이 서 있고 명령하는 억양이 다르다. 전쟁은 각자의 한 동작이 전세에 관계되는 것이니 각 참모에게 명령하는 것이 정당한 이유 없이 차질이 생길 때에는 군법회의에 돌리고 처벌하는 것도 당연하리라.
따라서 군기가 엄해야만 그 군대가 강한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전투가 벌어지면 보통 상급학교가 책임을 다하기 위하여 쉽게 흥분되게 마련이다. 특히 성질이 급하고 흥분하기 쉬운 우리나라 국민성으로 볼때 그와 같이 되는 수가 많은 것이다.
전투가 벌어진 전선에서는 대개 인간이 육체적으로는 물론이고 정신적으로도 극한 상황에 놓여 있으므로 사기를 돋구고 정신적으로 위안을 받기 위하여 일반사병에게는 희망된 루머가 곧장 돌게 마련이다. 곧 휴전회담이 성립될 것이라는 등, 또 이 부대는 수도사단이 머지 않아 수도경비를 위하여 서울로 이동된다는 등의 루머가 언제나 나돌았다.
작은 형님의 죽음
1951년 8월의 어느 날 집에서 편지가 왔다. 아버지의 편지인데, 영동에서 공비가 쳐들어와 4살 위인 작은형님이 어떻게 되셨다는 것으로 끝에 분명한 내용이었다.
형님이 어떻게 되었다는 것인데, 무슨 일일까. 돌아가셨다는 말은 없으니 도무지 돌아가셨다는 것같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하여튼 휴가를 얻어 영동역에 내려 일단 중국집에 가서 식사를 하였다. 주인에게 편지의 내용 건을 물어볼까 생각하였으나 어렴풋이 짐작되는 일이 닥쳐올까 겁도 나서 한참동안은 차마 물어보지 못하였다.
한참 망설이다 용기를 내어 불어보니 사실이었다. 눈이 캄캄하다. 한참 우두커니 앉아 있다가 할 수 없이 일어나 집으로 갔다.
집안에 들어서자 온 집안식구들이 참던 울음이 또 봇물같이 터져 나왔다. 사연인즉 8월 15일 밤, 시내에 비상 사이렌이 울렸는데, 그 당시 공비침공이 염려되는 영동에서는 경찰만으로 병력이 모자라 민간 청년을 규합하여 의용경찰대를 규합하여 유사시에는 경찰과 함께 총을 들고 공비토벌을 같이 하게 되어 있었다.
형님은 의용경찰대의, 감찰직을 맡고 있었는데, 경찰서에 집결하였을 때 공비가 쳐들어온다는 정보를 듣게 되었다고 한다. 그 당시 아버지께서 국민회 회장직을 맡고 계셨는데, 영동시내에서 다리 건너 시외에 있는 우리집에 그대로 계시는 것이 염려스러워 우리 집에 와서 아버지를 모시고 시내로 들어가시는 길에 다리목에 있는 파출소 앞을 지날 때 안에서 누구냐고 묻길래 의용경찰대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 즉시로 그곳을 점령하고 있던 공비가 총을 쏘아 형님의 급소에 총알이 맞아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시고 만 것이다. 그 현장을 직접 보신 연로하신 아버지께서는 정신을 처리지 못하시고 아무 말도 못하신 채 우왕좌왕 하셨다 한다.
그리고 못다 핀 30세의 젊은 나이로 공비의 총에 맞아 돌아가신 형님! 언제나 인자하시던 형님! 하늘나라에 계실 형님에게 두 손 모아 다시 한 번 명복을 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