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당시는 학생들이 학기말만 되면 시험을 치지 않고 집으로 달아나는 풍조가 있었다. 학교에서는 시험을 안 치면 무조건 낙제시킨다고 공갈이 대단하였다.
한번은 1학년 농화학과의 일반 화학 시험시간에 들어가 보니 44명 중 불과 4명의 학생이 앉아 있었다. 교실밖에 있던 학생들이 가끔 교 실안을 뻐끔 들여다보고는 달아났다. 이 철판을 깐 용감한 4명의 학생 성적은 무조건 A학점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후에 말들 들으니 이들을 배신자라 하여 동료들이 손을 좀 봤다고 한다.
겨울방학에 서울에서의 생활을 청산하고 수원으로 이사를 하였다. 원래 평동에 있던 선경직물이 사택을 학교의 후원회 돈으로 사서 학교 사택으로 장만한 집에 들어갔다.
1957년 10월 11일 둘째 아들 윤호가 태어났다. 산모는 간호관계로 수원 구천동에 있는 처가에 가서 출산하였는데, 나 혼자 평동 집에 거처하는 사이에 밤에 도둑이 들어 그 알량한 물건 몇 가지를 가져갔다. 도둑이 든 것을 눈치 챈 즉시 크게 “도둑이야!” 소리 질렀으나, 옆집에서는 누구하나 와보지 않는다. 이것이 그 당시의 평동인심이었고, 서운한 감이 없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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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해인 1958년 1학기도 1학년 농경제학과, 잠사학과, 임학과, 농공학과 학생에게 일반화학을 가르치고, 농약화학을 농화학과 및 농생물학과, 농학과 4학년에 가르쳤으며, 2학기에는 농학과, 축산학과, 농생물학과, 농화학과 1학년에 일반화학을, 그리고 농약화학을 농화학과 4학년에 가르쳤다.
1959년 1학기에는 일반화학을 임학과, 농화학과, 농경제학과 및 잠사학과 1학년에 가르쳤다.
1959년에 ICA 플랜으로 미국 미네소타대학교에 교환교수로 가게 되었다. 그러나 아무나 가는 것이 아니고 영어시험을 쳐서 통과되어야만 갈수 있다는 것이다. 이밖에 과거의 대학성적도 문제가 크게 되었던 모양이다.
옛날학생들은 호연지기만 찾는데다가 선생님들의 학과성적점수가 너무 짜서 학원이 대개 C, D이고 B성적은 드물었다. 그런데 대학교수의 학부성적이 고르게도 C, D이니 이것은 미국대학의 성적을 기준하면 모조리 낙제생만 모아 놓은 셈이다. 아마 생각 끝에 전쟁 덕을 보게한 모양이었다.
실제로 없어진 것도 많았다. 여러 가지 생각 끝에 지혜를 짜서 옛날 학부성적은 한국전쟁 통에 다 타버렸다 하여 어떻게 어물어물 일이 되게 한 모양이다. 그러나 영어는 그럴 수가 없었다. 모두 걱정이 태산 같았다. 일제시대에 영어를 건성으로 배운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이다. 누구나 일단 현재의 서울대학교 어학연구소의 전신인 FLI(Foreign Language Institude of Korea)에 가서 외국인이 집중적으로 가르치는 영어를 배우게 되었다.
나는 1958년 7월 2일부터 10월 10일 까지 3개월과 다음해 5월 4일부터 7월 16일 약 2개월을 다녀 기분상 영어가 상당히 느는 것 같기도 하였다. 시험을 쳐서 그럭저럭 합격도 하였다. 사실 그 당시는 이 어학시험에 합격 못해 미국에 가지 못하면 학교에는 장치 있지 못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실제로 영어 때문에 다른 전장으로 간 선생님도 있었다.
지금과는 달리 그 당시는 미국 가는 것은 저 별나라쯤이나 되는 다른 지구에 가는 기분도 들어 긴장도 될 뿐 아니라 준비해야 할 것도 많았다. 특히 미국 가서 교수로서 신사행세를 하려면 사교춤을 추어야 한단다. 다른 선배 선생님 몇 분이 춤을 열심히 배워 먼저 미국으로 떠났다. 그러니 나도 아니 배울 수 없는 것이 아닌가?
그 당시 정비석의 자유부인이라는 소설도 나와 언론기타에서 사회의 퇴폐풍조를 지탄하는 때인지라 그런 공개적인 댄스 교습소에는 가지 못하고 수원 매산동 1가에 있는 어느 비밀교습소에 매일 아침에 은밀히 가서 춤을 배웠다. 슬로우 슬로우 퀵하는 기본스탭부터 시작하여, 트롯트, 부르스, 탱고, 지루박 순으로 정말 돈들이고 공들여 정식 춤을 배웠다. 그러나 막상 미국에 가서는 그 실력을 발휘할 기회라고는 한 번도 없어 사장되고 말았으니 억울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귀국 후 먼 훗날에 가끔 어느 장소에서 기회가 무르익었을 때, 그때 배워 감추어 두었던 실력을 선보이면 요사이 춤이라는 게 리듬에 맞추어 상대와 함께 흔들어대기만 하는 것에 비하면 나의 겉으로 보이는 풍태와는 달리 세련된 춤이어서 그런지 인색하던 박수가 아낌없이 쏟아져 나와 그때의 공들인 밑천을 훗날에 와서야 약간이나마 찾아내는 것 같아 기분이 그다지 나쁘니 않았다.
그리고 농업학교 시절의 회고에서 썼듯이 일제시대의 하숙집에서 잘 먹지 못한 결과고 생긴 치질도 미국가기 전에 완치시켜야 했다. 그러나 여기저기 손을 썼으나 잘 낫지 않아 마지막에 서울의 모 병원에 가서 어느 정도 완전히 치료하였다.
또한 미국에 가면 약방에서 약을 마음대로 사지 못하고 반드시 많은 돈을 주고 의사의 처방을 받아야만 살수 있다하므로 위약부터 시작하여 응급처치약 기타를 한보따리 준비하였다. 이러한 것이 다 같이 돈이 드는 것인데, 모아 놓은 돈도 없으므로, 학교 후원회에서 빌리기도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