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26년 7월 8일 경북 선산군 구미면 송정동 117번지에서 부친 선산 김씨의 탁(卓)자, 용(容)자, 모친 옥산 장 씨의 래(來)자, 희(喜)자 두 분의 3남 4녀 중 3남으로 태어났다.
일면 ‘푸메’라고도 불리우는 약 25호되는 작은 마을로서 구미시내에서 약 5km 떨어진 가난한 농촌마을이었다. 마을 입구 머지않을 곳에 경부선 철도가 지나가고, 멀리 낙동강의 푸른 물줄기가 보이는 비교적 조용한 마을이었다. 지금은 아파트가 꽉 들어차 있고, 사방으로 도로가 나 있는 문화주거지역이 되어 있다.
나의 어릴 적 기억으로는 그 당시 우리나라 대부분의 농촌이 그러하였듯이 흙벽돌로 벽을 쌓아 지은 집의 방바닥은 대개 낙동강변에 많은 보들풀로 엮은 깔개대자리가 깔렸고, 벽은 헌 신문지 같은 것이라도 바른 집이 거의 없어 벽을 손으로 문지르면 고운 흙이 그대로 손에 묻어나곤 하였다.
그러나 조금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우리 집의 방바닥에는 그래도 장판이 깔렸었고, 벽과 천정은 헌 신문지로 발라 있어 지금도 어릴 때 방바닥에 누우면 천정의 신문지에 커다란 글씨로 일본약인 ‘ケイフ’라는 광고문이 보였던 것이 눈에 선하다. 아마 우리 집은 내가 나기 몇해전에 아버지께서 한때 구미면장의 벼슬을 하신 덕분인 것 같았다.
누구집이나 외풍이 있어 겨울이 되면 방바닥은 탈 정도로 뜨거우나 윗 공기는 언제나 차가워서 등을 웅크리고 지냈다. 그리고 그 시절의 겨울은 왜 그리도 추웠던지 집안에서도 방문고리를 잡으면 손이 쩍쩍 들러붙을 정도로 매서운 강추위가 몰아닥쳤다.
여하튼 그때의 우리 마을은 근래 TV에서 가끔 보여주는 남미의 안데스 산맥의 어느 산록에 있는 우나 인디언 마을보다도 조금 나을까 하는 정도이고 중국의 흑룡강성 또는 길림성의 어느 시골 농촌마을 수준이었다.
온 마을 사람은 일 년 양식이 모자라 가을에 추수한 것을 아껴 먹다가 대개 다음해의 보리고개가 되면 양식이 떨어지게 되기 마련이므로 일 년 내내 가마니를 짜서 팔아 부족한 양식과 그리고 약간의 가계 용돈을 충당하고 있었다.
일 년 중 고기라고는 설과 추석 같은 명절, 부모의 생신날 기타 혼사 등의 특별행사가 있을 때만 구경할 수 있었는데 고깃국을 먹을 수 있는 날이 가까워 오면 일주일 이전부터 그 날이 크게 기다려지나 그 고깃국도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별것 아닌 것이었다.
커다란 가마솥에 물을 가득 부어 거기에 한두 근의 고기를 집어넣고 끓이면 마치 요사이 말하는 큰 풀장에서 쇠고기 몇 덩어리가 싱크로나이즈 하는 격이었다. 그뿐인가. 끓이고 나면 고기 덩어리를 꺼내어 썰어 그 중 대부분은 어른들의 국에만 많이 넣고 어린 우리국에는 한두 점이 있을까말까 하다. 그러나 그 멀건 고깃국이 얼마나 맛있었는지 말로써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를 모를 정도이다.
그리고 그때는 한 집에서 고깃국을 끓이면 그 고깃국 냄새가 천지에 진동하여 동네에 펴져나가게 되므로 가까운 이웃집은 다 알게 된다. 따라서 아예 인심을 잃기 전에 그 고깃국 한 그릇씩을 가까운 동네의 몇 집에 돌리는 것이 상례였다.
이와 같은 고깃국이라 내용은 뻔한 것이겠으나 그때의 맛을 잊을 길이 없어 아직 생존해 계시는 12살 위인 큰형님에게 몇 해 전 그때의 쇠고기국을 끓이시게 간청하였더니 보통보다 파를 엄청나게 만이 넣어 끓이시는 것이었다.
그 국 맛이 옛날의 그때와 같지는 못하나 그래도 옛날의 맛이 조금은 되살아난다. 그러니 옛날의 그 기막힌 고깃국은 여간해서 고기를 구경하기 어려운 처지가 맛나게 한 것이고, 그 고깃국 냄새는 파냄새가 가세한 것이라 생각된다.
일 년 중 해가 짧은 겨울철이나 보릿고개에 가서는 대부분 점심을 거르는 수가 많았고, 먹는다하여도 나물을 많이 넣고 끓인 묽은 죽으로 때우는 수가 많았다. 쌀밥은 보통 어른들의 밥에만 조금 많이 섞여 있을 정도이고 일반식구의 밥은 대개 꽁보리밥이며 그것도 양이 모자랐다.
그러나 아이들은 외부에서 손님이 오게 되면 가끔 횡재를 하는 수가 있어 기대가 컸다. 보통 손님 밥은 쌀밥이며 원래 점잖은 손님은 그 밥을 남기는 법인데, 대개 그것은 아이들의 차지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우 보통 식사 때가 되면 어린아이들은 먼 곳에서 옆 눈질로 손님의 식사하시는 모습을 지켜보기 마련인데, 그 남기는 양이 점점 적어질수록 가슴을 조이다가 어떤 염치없는 손님은 마지막에 가서 남은 밥에 물을 붓고 마는 수가 있는데, 이때는 큰 기대가 한꺼번에 무너진 나머지 다른 곳으로 뛰어가 울기도 하였다.
보통 나는 식사를 아버지와 한 상에서 겸상을 하여 먹었는데, 때마다 거의 거르지 않고 상에 올라오는 달걀 한개 삶은 것은 여간해서 함부로 손가락을 댈 수가 없었다. 아버지가 어지간히 잡수신 후에 가서 달걀도 먹어보라는 허락이 있을 때나 아니면 큰 마음먹고 한두 숟갈 떠먹는 것이 고작이었다. 정말로 참기 어려운 삼시의 밥상이었다.
이렇게 되니 아예 상에 놓은 달걀은 거의 기대하지 못하고 그 대신 큰 형수님이 밥을 지으실 때 밥상에 놓기 위한 달걀을 깬 껍질에, 물에 담갔던 쌀을 가득 담아 부엌 아궁이의 장작 타다 남은 불 위에 올려 놓으면 깍지 안쪽에 남아 있던 달걀이 스며든 밥이 되는데, 이것을 미리 얻어먹게 되면 그렇게도 맛이 좋을 수가 없었다.
여하튼 그 당시의 식생활이 이러한 형편이니 다른 생활상도 대개 짐작이 갈 것이고, 일 년 내내 고무신은 한 켤레, 허리 띠도 한 개로 규정되어 있었다.
우리집도 다른 짐과 크게 다를 바 없이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여서 가을 추수를 하고 나면 대부분의 벼는 내다팔아 돈으로 바꿔어서 빚진 돈의 이자를 갚게 되므로 다음해 봄이 되고나면 양식이 떨어지고 마니 역시 가마니를 짜서 온 식구의 호구를 지탱해나갔다.
빚을 진 것은 아버지께서 한창 득세하시던 덕분에 동양척식회사에서 상당한 돈을 빌려서 사용하고 있었는데, 그 후 일본의 정책에 따라 원금 갚기가 쉽지 않고 매년 이자를 갚기에 급급했던 것이다. 어린 기억에도 한때 법원에서 나왔다하여 온 집안의 농이나 솥 등의 살림살이에 압류딱지를 붙여 놓은 것이 지금도 눈앞에 보이는 것 같다.
나는 조부님을 뵙지 못했다. 일찍이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어른들의 말씀에 의하면 할아버지께서는 대단히 호탕하시고 방랑벽을 가지신 한량이셨던 모앙으로 대부분의 세월을 객지에서 보내시고 송정동에 이사 오기 전에 살았던 선산군 고아면 문성동의 할머니 댁에도 들르시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10살 되시던 해에 함경도의 보천에선가 조부께서 객사하시어 그 영구(靈柩)를 고향으로 모셔오는데 근 한 달이나 걸려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따라서 조부님은 대단히 어려운 처지에서 아버지와 고모인 남매를 키우셨는데 그 고을에 많고 번성한 선산 김 씨 문중 어른들의 신세를 많이 지셨다고 한다.
아버지가 옥산 장 씨인 어머님을 맞이한 후에는 외가의 덕을 보아 생활형편이 다소 나아졌다고 한다. 그러나 어머님은 몸이 약하셔서 큰 누님을 초산으로 낳으신 후부터 항상 누워 지내시는 편이고, 편두통을 자주 앓으셨다고 한다.
따라서 내가 태어난 후에도 나에게 별로 관심을 두실 수 없는 방임하는 수가 많았는데, 어느날 이웃집의 노인이 우연히 우리집에 와서 보니 내가 윗목에서 젖을 얻어먹지 못하고 방치되어 거의 죽게 되어 있어 급히 젖을 먹여 겨우 살렸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