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이 파죽지세로 평양과 원산, 흥남을 점령하고 압록강과 두만강으로 진격하던 유엔군이 중공군의 개입으로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중공군의 개입은 예측되었던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겨우 일 년 전에 장개석 군대와의 싸움에서 승리한 중공군이 한국전에 개입했느냐는 회의적인 시각도 있었다.
유엔군 총사령관이 맥아더 장군은 인천상륙작전에서 인민군을 지리멸렬로 만든 승전보에 기세가 등등했다. 북진통일을 외치던 이승만 대통령과 뜻이 맞았다고나 할까. 유엔군을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진격시켰다. 그러나 맥아더 장군의 승전에 대한 우쭐한 기분은 비통한 좌절감으로 바뀌어갔다.
1950년 12월 5일 트루먼과 국무부의 관료 등은 맥아더의 승리를 위한 전쟁은 제3차 세계대전으로 가는 길이 라고 판단했다. 맥아더 장군이 계획하는 작전은 아무런 얻는 것이 없이 미국의 안보를 위협한다는 판단 아래 승리를 위한 작전을 금지하는 명령을 합동 참모총장의 이름으로 전달한 것이다.
첫째로 중공군의 군수물자와 병사들을 실은 트럭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는 압록강의 다리를 폭격하는 것이 금지되었으며, 압록강을 끼고 있고 수풍댐을 비롯한 발전시설의 폭격도 금지되었다.
둘째로 유엔군을 공격한 적기(敵機)에 대한 월경(越境) 추격이 금지되었다. 만주와 시베리아에는 그곳으로부터 어떠한 공격이 이루어졌더라도 그곳으로 달아나면 안전하게 보호되었다.
셋째로 만주와 시베리아가 아니라 국경에서 수마일 떨어진 나진(羅津)의 폭격도 금지되었다. 나진에는 블라디보스토크로부터 대량의 군수품이 보급되는 군수물자 보급창고가 있었는데, 그 마저도 폭격이 금지된 것이다.
맥아더는 고민하고 울분을 터뜨리고 마침내 비통한 심정이 되었다. 워싱턴이 단계적으로 무장해제를 시킨다고 생각했다. 병사를 전쟁터로 내보내며 이기지 말고 지라는 요구를 하는 희한한 사람들이 칼자루를 쥐고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반대로 이러한 정보를 알고 있는 중공군 총사령관 팽덕회(彭德懷) 장군은 휘하 병사들의 보급망을 걱정하지 않고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널 수 있었다. 워싱턴 당국이 맥아더의 모험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이 있었던 것이다.
전후 미국의 원조액이 30억불이라면 전쟁 중 미국이 폭격으로 파괴한 남북산업시설의 손해액은 50억불이라 했다. 그만큼 남북의 산업시설은 철저히 파괴되었다.
영국은 압록강대교와 수풍댐을 공격하면 중공군의 개입이 불가피하며, 따라서 영국군은 유엔군에서 철수하겠다고 누차 경고했다. 주은래(周恩來) 또한 한국군이 38선을 넘어서도 내전의 성격을 벗어나지 않으면 참전하지 않지만 유엔군이 38선을 넘어서면 참전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유엔군이 38선을 넘어서자 이번에는 국경선에 유엔군이 접근하면 참전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맥아더 장군은 전쟁에는 승리만 있을 뿐이며 중공군이 개입하면 만주를 폭격하고 필요하다면 원자폭탄을 투하해서라도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과 소련이 3차 세계대전은 어떻게든 피해야 한다고 법석을 떨고 있지만 3차 대전은 이미 시작되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러한 맥아더 장군의 태평양전쟁의 영웅다운 주장 또는 철학은 조국 통일을 꿈꾼 북쪽의 김일성 수상의 철학이나 북진통일을 외친 이승만 대통령의 철학과 일맥 통하는 데가 있었다.
미국이 원자탄 투하도 불사하겠다고 강경하게 나가면 중공군이 감히 개입하겠는가? 중공이 원자탄 투하라는 위험을 무릅쓰고 한국전 개입이라는 모험을 할수 있겠는가?
어쩌면 한반도의 분단은 종말을 고하고 한반도의 통일정부가 수립될 수 있는 기회라고 이승만 대통령은 생각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러한 일련의 상황 속에 최종 결정권을 가진 미국 대통령 트루먼은 영웅적 비전이나 철학과는 거리가 먼 대통령이었다.
말하자면 행정수반으로서의 대통령이었다. 행정수반으로서의 미국의 정책을 충실히 수행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그는 전쟁 영웅 맥아더 장군을 해임하고 행정수반이자 미국의 최고통수권자인 대통령의 지시에 따르지 않는 장군은 전쟁영웅이라 할지라도 행정적으로 해임될 수밖에 없다는 본보기를 만든 것이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맥아더 장군은 한국전의 무대에서 사라졌다고나 할까. 그렇게 퇴장한 것이다 .
트루먼과 맥아더 장군은 역사의 흐름 속에서 각기 자기가 맡은 역을 나름대로 멋있게 해낸 셈이지만 미국정부가 한반도에 관한 한 어떤 단호한 결정도 내리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확인한 중공은 한국전에 전격적으로 개입한 것이다. 중공군은 병력의 숫자적 우세함을 내세워 꽹과리를 치고 피리를 불고 인해전술로 밀물처럼 밀려왔다.
유엔군이 어제는 물밀처럼 북으로 올라갔다면 오늘은 썰물처럼 빠져나와야 했다. 북으로 쫓겨간 인민군이 처참했다면 후퇴하는 유엔군도 처참했다.
트루먼의 행정적 결정은 탁상에서 만들어진 결정이요, 맥아더의 “전쟁에는 승리만이 있을 뿐이다.”라는 한마디는 전쟁터에서 몸으로 터득한 철학이라는 것을 후퇴작전과 철수작전을 지휘하는 지휘관들은 새삼 뼈저리게 느꼈다.
석두는 말하자면 사돈댁에 식객으로 있다는 것이 여간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형수님과 사돈어른은 절대로 밖에 나가지 말고 집에 있으라고 했다. 거리에 나가면 곳곳에서 검문을 하고, 젊은이들은 징병이라기보다 군대의 노역자로 징발된다는 것이다. 노역자로 끌려가서 미아리고개 넘어 서울의 북방 외곽지대에 참호를 파는 일을 한다는 것이었다.
한국전이 시작된 지 5개월 남짓 되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하니 김일성은 왜 전쟁을 일으켰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고 석두는 생각했다.
김일성은 조국 통일을 염두에 두고 전쟁을 시작했지만 미국이 한반도를 포기할 것처럼 겉으로 보인 것은 거짓이었으며, 미국이 전쟁의 상대로는 버겁기보다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김일성은 깨달았을 것이다. 권투로 치자면 헤비급과 플라이급이 링에 오른 것이다.
결과적으로 산업생산 면에서 남쪽에 비해 절대 우위를 차지하고 있던 북쪽의 진남포제철소, 원산조선소, 흥남비료공장, 수풍댐 등이 미국 B29의 폭격으로 철두철미하게 파괴되어 공장의 벽돌조각 하나 쓸 수 없어 남쪽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주저앉고 말았다.
‘북반부 건설을 토대로’ 조국통일을 이룩하자는 구호는 헛된 구호가 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