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대단지 사태 (26회)
  제5장 주민조직운동과 도시선교

춘천에 며칠 있는 사이 집에 엽서가 한 장 왔다. 광주 대단지에 사는 장동원이라는 사람이 보낸 것이었다. 대위를 예편한 장동원 씨는 내가 학사단과 함께 광주 대단지에 갔을 때 동네에서 반장을 하고 있었는데, 우리에게 방을 구해주는 등 도움을 준 사람이었다. 

그는 나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가 나에게 무슨 말을 할지 알 것 같았다. 서울에 시민아파트 문제가 잘 해결된 것을 보고 광주대단지 문제도 부탁하려고 하는 것이었다. 서울시민 아파트주민들이나 광주대단지로 이주한 주민들 모두 서울에서 판자촌에 살던 사람들이었다. 자기들끼리 서로 연락을 주고받기 때문에 서울시청 앞 광장 시위에 시민아파트 주민조직운동을 한 사람들이 개입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또한 장동원 씨는 내가 CBS라디오에 출현해 광주 대단지에서의 학사단 봉사활동에 대해 말한 것을 들은 모양이었다. 나는 박형규 목사의 요청도 있고 해서 방송국 피디를 만나 광주대단지 상황을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장동원 씨의 연락을 받고 고민이 되었으나 결국 나는 그를 만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도 그것은 참 비겁한 일이었다. 하지만 광주 대단지 문제에 개입할 경우 수사당국에 꼬리가 잡힐게 틀림없었다. 서울시청 앞 광장 시위의 배후가 우리로 드러나면, 나뿐만 아니라 도시문제연구소의 도시선교위원회의 어려움에 처할 게 분명했다. 

광주 대단지는 주민들 스스로 ‘분양지 불허가격 시정 대책위원회’를 조직하고 ‘대지가격 1,500원 이하로 인하’, ‘불허가격 10년간 연부상환’, ‘5년간 세금면제’, ‘취로장 알선과 구호대책’ 등 네 가지 요구조건을 내걸고 서울시와 관련당국에 자신들의 절박한 처지를 알리는 진정서를 냈다. 그러나 아무런 반응이 없자 주민들은 217명의 대표를 선출하여 대책위원회를 투쟁위원회로 바꾸었다. 

대책위원회를 1971년 8월 10일 10일 10시 성남출장소 뒷산에서 총궐기대회를 열기고 결의했다. 이날 5만 명이 넘는 인파가 성남출장소 앞에 집결하여 세금감면, 분양가 인하, 공장과 상업시설 설치, 취업센터 설치, 구호사업, 취역장 알선 등 정부가 애초에 한 약속을 이행하라고 요구했다. 사람들이 든 플래카드에는 “백 원에 산 땅 만원으로 폭리 말라!” “영세민을 더 이상 착취말라!” 등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 광주대단지에서 만난 주민대표 장동원 씨(오른쪽)

이 날은 한 달 전부터 대책위원회가 끈질기게 요구한 결과 양택식 서울시장(김현옥 시장은 와우아파트 붕괴사건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과 만나는 날이기도 했다. 하지만 약속된 면담시간이 지나도 서울시장이 오지 않자 주민들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폭발했다. 주민들은 관리사무소, 파출소 등을 방화하고, 광주대단지 일대를 초토화시켰다. 

정부는 이들을 진압하기 위해 서울시경과 경기도경의 경찰 700여명을 투입했지만, 주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한 상태여서 진압할 수 없었다. 2,000명이 넘는 주민들은 10여대의 시영버스에 나눠 타고 서울로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경찰의 저지로 서울진출은 실패했다. 경찰이 최루탄을 쏘자 시민들은 돌을 던져 저항했다. 

이에 정부는 내무부차관과 경기도지사를 현장으로 파견해 이주민들의 요구를 전폭적으로 수용할 것임을 밝혔다. 8월 12일 양택식 서울시장은 방송담화를 통해 광주대단지를 성남시로 승격한다고 발표했다. 원래 광주대단지는 서울시가 ‘서울시 광주 위성도시’로 명명했던 것인데, 성남시로 승격함에 따라 서울시는 빠지고, 정부로 공이 넘어가게 되었다. 

정부는 성남시 승격과 함께 주민들의 요구를 무조건 수용할 것임을 약속했다. 이로써 주민들은 자진해산하였고, 소요는 3일 만에 진정되었다. 하지만 경찰과 주민 100여명이 부상당하고, 경찰서가 파괴되었으며, 주민 22명이 구속되는 등 크나큰 상처를 받았다. 

광주대단지사건을 지금까지도 ‘폭동’이라고 하는 이유는 주민들이 분노를 표출하는 과정에서 급작스럽게 폭력을 행사했기 때문일 것이다. 서울 시민아파트 건은 평화적으로 해결되었는데, 광주대단지는 왜 폭력적이 되었는지를 생각해보면 알린스키의 말이 떠오른다. 

알린스키는 “조직화 된 힘은 절대 폭력화되지 않는다. 조직화된 힘은 행정이 미치지 않는 부분이 해결되도록 돕는 것이 되지 폭력화되지 않는다.”라고 했다. 광주대단지가 폭동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는 것은 결국 조직된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조직화된 힘은 행정력이 올바르게 행사되도록 안내하고, 공동의 목표를 만들어내지 결코 파괴로 나아가지 않는다고 믿는다. 6월 28일 서울시청 앞 광장시위와 8월 10일 광주대단지 시위는 같은 사건이었으나 시청 앞 광장 시위는 조직화된 힘이었고, 광주대단지 시위는 조직화된 힘이 아니었기 때문에 불행한 사태가 일어나고 말았다. 우리는 이에 대해 책임을 느낀다. 

 
  서울시청 앞 광장시위_2 (25회)
  수도권도시선교위원회 조직 (2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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