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사의 음모 (36회)

나는 그 일로 거의 반죽음이 될 정도로 얻어맞았다. 사방에서 날아오는 발길질과 주먹으로 인해 이대로 끝장이 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이후부터는 그들도 내가 나상기 씨에게 전단을 만들게 했다는 것에 별다른 이유를 달지 않았다.

더 이상의 추궁이 없으니 이상했지만, 한편으로는 김동완 목사의 고모부가 손을 뻗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중에 감옥에서 나와 들은 이야기인데, 김동완 목사는 구류만 받고 일찍 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종로5가에 갔더니 박형규 목사의 사모를 비롯한 여러 구속자 가족들이 모두 김동완 목사에게 손가락질을 했다고 한다. 그가 프락치라고 오해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박형규 목사 사모의 사촌이 일부러 흘린 말이었다. 그 사촌은 보안사에서 근무했는데, 우리를 분열시키기 위해 그런 말을 한 것이다.

순진했던 박 목사 사모는 그 말을 고스란히 믿은 모양이었다. 하긴 다 같이 들어갔다가 김동완 목사만 나왔으니 그런 오해를 살만 했다. 사실 김동완 목사는 수도권을 지키기 위해 내가 머리를 써서 일찍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김동완 목사는 그런 상황을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아예 짐을 싸들고 한 달동안 부산으로 피신했다고 한다.

보안사에서는 부활절연합예배사건을 본격적으로 조작하기 시작했다. 수사관은 나에게 얼토당토않은 내용을 시인하라고 다그쳤다. 내가 사람들을 데리고 남대문 쪽으로 가서 중앙청을 점령하고, 남삼우 씨는 중앙방송국(KBS) 쪽으로 갔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들이 이 사건을 어떤 식으로 몰고 가려는지 짐작이 되었다. 그들은 일개 시위일 뿐인 이 사건을 내란음모를 꾸민 대단한 사건인 것처럼 꾸미려했다. 보안사의 이러한 검은 마수를 눈치 챈 이후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버티기 시작했다.

▲ 이른바 서빙고호텔로 불린 보안사 대공분실 외경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고문을 너무 당해 정신이 없는 남삼우 씨에게서 그들이 원하는 진술을 받아냈다고 한다. 나도 전기고문을 당할 때 무의식의 상황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어떻게 행동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 정도로 정신이 없었던 것이다.

나중에 법정에서 그들이 어떻게 이 사건을 조작하고 확대시키려고 하는지 들을 수 있었다. 심지어 그들은 내가 서울에 처음 올라와 다닌 모자공장이 군인 모자를 주로 생산하는 곳이라는 이유로 내란음모와 엮으려고 했다. 당시 검찰 측이 제시한 공소장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수시로 회합하면서 동 불편불만을 토로하여 오던 중 수도경비사령과 윤필용이가 구금되었다는 사실을 지득하게 되자 현 정부에 충성을 다하던 윤필용이가 구금된 것은 현 정권에 분열이 생긴 것이고, 곧 내부에도 혼란이 왔으며 국민은 세금문제로 정부에 대한 반발이 심하여 민심이 동요되고 있으므로 현 정권을 전복할 수 있는 시기가 도래한 것으로 판단, 믿은 나머지,

동 권호경이 현 정부의 독재적이고 무법적인 처사를 더 이상 참을 수 없으니 이 기회에 기독교 세력과 과거의 야당세력이 붕기하여 윤필용 추종세력의 지지를 받아 현 정부를 타도하도록 하자고 말하며 동 박형규와 동 남삼우의 공명을 얻은 다음 그 실행방법을 논의한 끝에 동년 4.22. 남산야외음악당에서 부활절연합예배가 열릴 때 동 예배에 참석한 신도들에게 “독재정권을 타도하자” “윤필용 장군을 구출하자” 등으로 선동, 일제히 가두 폭력 데모를 전개하여 현 정부를 타도하기로 하되,

동년 4.22. 05:00경 남산야외음악당에서 열리는 부활절연합예배장에 “독재정권 타도하자” “윤필용 장군을 구출하자”는 내용의 플래카드와 삐라를 지참한 행동대원을 투입하여 약 6만 명이 참석할 것으로 예상되는 예배 군중 속에 배치시켜두었다가 예배가 끝날 무렵 일제히 플래카드를 쳐들고 삐라를 살포하면서 예배 주최 측에서 지시한 것처럼 가장하여 예배 군중들을 선동, 행동대원들의 선도아래 서울 시내를 향하여 폭력데모를 전개하도록 하고,

데모대가 동 음악당을 벗어날 때 데모대를 양분하여 그 중 일대를 남삼우의 지위로 서울중앙방송국(당시 남산에 위치)으로 진출케 하여 동 방송국을 점거한 다음 현 정부를 타도하기 위해 전 국민이 호응할 것을 호소하고, 다른 일대는 동 권호경의 지휘로 서울시내로 진입하여 중앙청과 국회의사당을 비롯한 중앙관공서를 파괴 점거하고 서울 시내를 완전히 장악한 다음,

일반 국민과 윤필용 장군 추종세력의 지지 아래 현 정부를 강제로 축출 타도하고 각계각층의 양심적이고 민주적인 인사들로 임시통치기구를 구성한 후유신헌법을 폐기하고 동 기구가 입법, 행정, 사법 등 3권을 통괄하여 과도적으로 통치하면서 새로운 헌법을 제정키로 하되,

각자의 분담임무로서 동 박형규는 자금조달과 배후조종을, 동 권호경은 거사계획 실행 총 지휘 및 삐라 제작 등을, 동 남삼우는 행동대원 확보와 플래카드 제작 들을 각각 담당하기로 결정,

동년 4.22. 05:00경 동 박형규는 단독으로 동 권호경은 상기 김동완을 대동하고, 동 남삼우는 상기 이철홍을 대동하고 각각 상기 음악당에 도착하여 예배가 끝나기를 기다리면서 예배장 내의 동정을 살핌으로써 내란은 예비하였다.

검찰이 이와 같은 내용으로 공소장을 작성할 수 있도록 수사관은 며칠 동안 나를 때리고, 무릎을 꿇리고, 발로 찼다. 이때 머리를 잘못 맞아서 뇌출혈이 생겼는지 밖으로 피는 나지 않는데 몸이 마비되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다행히 마비는 풀렸으나 이번에는 척추로 엄청난 고통이 밀려들었다.

하지만 내 상태가 그러거나 말거나 수사관들은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전기고문을 하기 시작했다. 전기고문은 내가 받은 고문 중에서 가장 악랄한 것이었다.

전기고문을 받는 동안 나는 온몸이 쪼개질 듯 하다가도 심장이 붕 뜨는 것처럼 느껴졌다. 눈앞에 보이는 것이 무엇인지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정신 줄을 놓기 일쑤였다. 깨고보면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른 채 멍하니 널브러져 있었다. 이러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수사관들은 전기고문을 하다가 “박형규 목사도 그렇다고 했으니 그렇게 쓰라”라고 윽박질렀다.

박형규 목사에게는 우리가 고문을 받으며 고통에 찬 신음소리를 내는 것을 들려주면서 협박을 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