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역사는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흐른다 (78회)
  제13장 역사는 사람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흐른다

그래도 역사는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흐른다

기회가 되어 지난 일들을 하나씩 정리하다보니 이제야 나를 향해 ‘종로 5가 사람’이라고 부르는 어려 사람의 지적과 평가가 조금은 이해가 된다. 나의 모습에서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그것들은 모두 종로5가에서 비롯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껏 한신대를 졸업하고 서울이 판자촌, 시민아파트, 청계천, 광주대단지(성남시), 수도권도시선교위원회, 한국교회사회선교협의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기독교방송 등을 거쳐왔다. 그러면서 배우고, 훈련하고, 감옥에도 가고, 석방도 되고, 기쁨도 만끽하고, 분노와 슬픔도 겪어보고, 미워도 하고, 다퉈도 보고 괴롭혀도 보았는데, 그것들이 전부 종로5가와 관계 속에 얽혀있다. 

종로5가의 어르신들, 동료들, 후배들의 도움과 지도편달에 의해 만들어진 사람이 바로 나, 권호경이다. 

종로5가는 내가 살아오는 동안 형성된 나의 의식에 끊임없는 밑거름이 되어주었다. 종로5가는 무형의 공간이면서 또한 실제의 공간이어서 지금도 종로5가를 지날 때면, 어느 집, 어느 골목, 어느 건물이 되살아난다. 그 기억의 실타래를 감으며 따라 걷다보면 저 멀리 고향을 떠나 서울에 정착한 젊은 날의 내가 보인다. 

젊은 날의 나는 열정에 차 있는 것만큼이나 서툴렀다. 기백은 넘쳤으나 그만큼 미성숙했다. 성경말씀에서도 젊은이들이 지식과 분별력을 갖고 있지 못함을 우회적으로 표현했듯이(잠 1:4) 젊은 날의 나 역시 지혜롭지 못했다. 
 
박형규 목사도 그 점을 내게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남산 부활절연합예배사건으로 감옥살이를 하고 나온 뒤 어느 날 내게 건네준 종이에는 이런 글자가 적혀있었다. “知, 仁, 德, 愛” 그것은 아마 스스로 깨달아 젊은 날의 내게 부족한 것을 채우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나는 목사가 되기 위해 23살의 나이에 고등학교 2학년에 편입했다. 그리고 거의 30살이 되어서야 신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내게 신학교는 목사가 되기 위해 공부만 하는 곳이 아니었다. 사랑을 배우고, 연대를 배우고, 인생을 배울 수 있는 곳이었다. 특히 모든 면에서 노련한 모습을 보여준 김재준 문동환 목사의 ‘자아확립’이라는 가르침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 上 CBS 재직시 만난 김대중 대통령 / 中 이희호 여사와 아내 이은자 / 下 CBS 재직시 만난 김영삼 대통령

신학교에서 어렴풋하게 형성된 이러한 공부와 배움은 나를 이끌어주고 도와주고, 가르쳐준 여러 사건 현장의 가난한 사람들과 선배, 동료, 후배들을 통해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1970~80년대의 사건현장에서 먼저 희생된 사람들의 가르침은 지금도 내 가슴의 밑바닥을 흔들어 나를 똑바로 서게 만든다. 그들의 희생과 나는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다. 그들 희생의 뒤끝이 바로 나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희생을 생각하다보면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세상은 이렇게 살아가야 해!”라는 듯 삶의 모범을 보여준 김관석 목사와 박형규 목사, 오재식 선생 등이 그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나 되게 일깨워 주고 가르쳐주고 사람답게 살라고 의식화한 여러 사건 속의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특히 시청 앞 광장에 모여서 서울시 시민아파트 골조공사비 일시불 상환 반대를 외친 진산전 씨를 비롯한 시민들, 필리핀 마닐라의 산토스 추기경에 도전하기 위해 몬테디피다 은행 앞에서 ‘몬도 판자촌 절대 사수를 꿈꾸며’ 질서정연하게 10센타불짜리 은행 총장을 요구한 톤도 판자촌 주민들, 또한 1970년대 서울시 청계천 판자촌 철거 반대를 외친 가난한 사람들..... 그들의 함성 속에서 나는 많은 것을 깨닫고 배울 수 있었다. 

나에게 배움과 성찰을 준 것은 또한 ‘사건’이기도 하다. 남산 야외음악당 부활절연합예배사건(1973), 긴급조치사건(1974), 수도권도시선교위원회 선교자금사건(1975), 수도권시선교위원회 용공사건(1976, 기소유예) 등 이러한 사건을 겪을 때마다 나는 또 한 단계 올라선 배움과 깨달음을 경험했다. 

돌이켜보면 경찰서, 검찰청, 재판정, 심지어 계업령 치하의 군사재판 등을 거치면서 나는 자극받고 배우고 터득했다. 억만년 갈 것 같은 군사독재정권도 그들 스스로 총질하며 삐걱대더니 끝내는 무너지고 말았다. 

그렇다. 모든 사건 현장 속에 살아남은 것은 권력이나 돈이 아니라 사람들이었다. 역사는 사람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흘러왔다. 역사는 결코 돈과 권력이 지배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는 역사학자 이기백 교수의 역사관대로 왕족사가 아니다. 역사는 백성사이다. 역사는 그래도 고난당하고 희생당한 사람들의 편이다. 그들의 꿈틀거림이 바로 역사이다. 

우리 모두 스스로 두발로 똑바로 서서 겸손히 우리의 올바른 평화를 추구해나갈 때 우리도 그 언제인가 반드시 손에 손 잡고 살아갈 날이 속히 오리라 믿는다. 역사는 사람들의 것이기에 말이다. 이것이 내가 믿는 하나님의 은혜요, 섭리이다. 

 
  NGO 라이프오브더칠드런 (77회)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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