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CC를 따나 CBS 사장으로 (76회)
  제13장 역사는 사람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흐른다

그 뒤 CBS상황이 어떠한지 나름 알아보았다. 알아보니 정부가 CBS 건축과정에서 늘어난 부채에 대한 기채승인을 조건으로 사장 교체를 요구하는 중이었다. 상황이 예상보다 좋지 않은 듯하여 CBS 이재은 사장(감리교단 목사)을 직접 찾아가 “어떻게 된 일입니까?” 하고 물었다. 이재은 사장은 “여러 어려움이 있기는 하지만 견뎌봐야지.”라고 말했다. 

나는 표용은 이사에게 ‘사장님이 견뎌보겠다’고 하시더라는 말을 전했다. 내 말을 듣고 헤어질 때까지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던 표용은 이사는 그날 오후에 다시 만나자는 연락을 해왔다. 그 자리에서 표 이사는 “이재은 사장과 가깝게 지내는 한 이사의 말을 들어보니 총무님이 전해준 말과 다릅니다.”라고 말했다. 이재은 사장이 그 이사에게 ”더는 버틸 수 없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CBS재단이사회로부터 긴급 이사회를 소집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급히 소집되는 이사회를 보면서 상황이 매우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표용은 이사를 다시 만났다. 표 이사는 CBS 사장직을 맡아보라고 다시 권유하였다. 나는 ”KNCC는 어떻게 하고요?“ 라고 하면서 답변을 피했다. 그랬더니 표 이사는 ”다음 KNCC 총무는 우리 감리교단이 맡을 차례입니다. 맡을 만한 분이 두어 분 있습니다. KNCC의 사정은 현직 총무가 제일 잘 알 테니 그 분들 중에서 한분을 추천해주면 고려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무엇보다도 CBS 문제가 시급합니다. 그러니 이 문제부터 먼저 해결합시다.“라고 덧붙였다. 

나는 즉시 김관석 목사를 찾아가 그동안의 일을 소상히 말씀드리고 내 고민을 털어놓았다. 김 목사는 CBS의 모든 상황을 이미 잘 알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특별한 말씀은 하지 않고, 다만 CBS 김인한 재단이사장을 직접 만나보라고 권유하였다. 

그동안 교류가 별로 없었지만, 김관석 목사의 권유도 있고 하니 혹시 방법이 있을까 싶어 그를 찾아갔다. 김인한 이사장은 “이사회는 소집해야 했습니다. 사장의 사표가 반려되면 모르지만, 아니면 인선위원회를 조직하여 즉시 사장 선임절차에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CBS 직원출신과 목회자 한 사람이 사장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들 모두 이사장과 같은 교단이었다. 그의 얘기 중에 ‘사표가 수리되면 즉시 사장 선임절차에 임한다’라는 말에 많은 궁금증이 생겼지만 더는 묻지 않았다. 

사무실로 돌아오자마자 CBS 김인한 재단이사장과 같은 교단에 속한 대형 교회의 담임목사이자 교계의 어른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CBS에서 오래 근무했고 자신이 시무하는 교회의 장로이자 군 생활을 같이 한 전우가 CBS 사장이 출마하니 잘 북탁한다.’는 내용이었다.

큰 교회 어른이 나에게 이런 전화를 할 정도라면 이사장과 같은 교단에 소속된 후보로 이미 낙점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간에는 CBS 부도설과 함께 정부가 신임사장 후보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소문도 돌고 있었다. 사장 선임이 의외로 쉽게 끝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김관석 목사가 CBS 김인한 재단이사장을 왜 직접 만나보라고 했는지도 짐작되었다. 정치적 경질이 의심될 만한 CBS새 사장 선출이라면, 더더욱 정치적 고려는 물리쳐야 한다는 것으로 나는 받아들였다. 
 
▲ 기독교방송(CBS) 사장 취임식

결국 마음을 굳힌 나는 표용은 이사를 다시 만나 KNCC총무 선임을 부탁드렸다. CBS 재단이사회는 예정대로 1994년 2월 1일 오전 11시에 개최되었다. 이재은 사장의 사표는 이사회 개회 즉시 수리되었다. 그리고 CBS사장인선위원회를 구성한 뒤 곧바로 정회하였다. 이후 점심식사를 겸한 의견조율 시간을 가진 뒤 오후 1시 40분에 회의가 속개되었는데, 여기에서 나를 사장으로 선임하였다. 
 
불과 며칠 사이에 일사천리로 이루어진 CBS 사장 선임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유감스럽게도 재신임 1년 만에 급히 KNCC를 떠나게 되었다. 감리교단에서는 김동완 목사를 KNCC총무로 추천했고, KNCC실행위원회에서는 김 목사를 새로운 총무로 선임했다. 이후 1994년 2월에 열린 총회에서 김 목사를 새로운 총무로 인준했다. 

CBS 사장으로 선임된 이후 나는 CBS가 기독교 재단이 운영하는 일반 언론사임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여러 불이익을 받아온 것으로부터 원상회복시키기 위해 직원들, 나아가 한국교회와 함께 온 힘을 기울였다. 그리고 2002년 2월, 마침내 CBS에서 두 번의 사장 임기를 마쳤다. 

사장 임기를 마친 후에 나는 사실상 목회 은퇴를 하고, 2007년 4월 서울노회에서 정식으로 목사 자원은퇴를 했다. 
  
CBS 사장 임기를 마친 후 처음으로 1년여 동안을 쉬게 되었다. 그때 젊은 목사 한 사람이 찾아와 자기가 섬기는 NGO에서 함께 활동해달라고 요청했다. 사실 내가 늦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신학을 하고자 한 것은 사회사업을 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의 요청에 쉽게 응할 수가 없었다. 사회사업은 너무 오래된 이야기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또 다시 찾아와 “젊었을 때 빈민운동을 하신 분이 어떻게 빈민의 소굴에서 일하고 있는 저의 부탁을 거절하십니까?”라고 도전적으로 말했다. 나는 차마 그 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3년만 봉사하겠다고 약속했다. 

그곳이 권태일 목사가 설립한 NGO '함께 하는 사랑밭(이하 사랑밭)‘ 이었다. 사랑밭에서는 제도상의 문제로 정부나 기관으로부터 도움을 받지 못하는 고아, 장애인을 포함한 불우이웃,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돕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사랑밭의 뿌리는 판자촌에서부터 오갈 데 없는 노인들과 많은 어린이를 돌보는데서 비롯했다고 한다. 

당시 그곳에서 사무를 총괄하던 이사가 있었는데, 나는 그와 함께 권 목사가 진행하던 개교회 사회선교프로그램을 모두 법인화 하는 일, 미국 LA에서 NGO를 설립하는 일, 그리고 다시 국내 외무부 산하의 NGO를 설립하는 일 등을 도와주었다. 

그리고 다시 오재식 선생이 설립해 운영하고 있던 시교육위원회 허가법인의 하나인 ‘아시아교육문화원’을 맡게 되어 아시아교육문화원을 사랑밭서 운영할 수 있도록 주선했다. 또한 한국사회사업미래경영협의회에서도 이사장을 잠깐 하다가 사랑밭에서 운영하는 방향으로 주선했다. 

그러는 동안 3년만 하겠다는 약속이 어느덧 11년이 되어버렸다. 나는 마지막으로 오재식 선생에게 물려받은 법인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기초를 다져주고, 2014년 말 그 곳에서 나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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