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나눔운동 - 49개 교단연대_2 (73회)
  제12장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2

평소 북한 식량문제에 있어 적극적이던 홍정길 목사에 관한 또 하나의 에피소드가 있다. <화해와 평화의 좁은 길 - 남북 나눔이 걸어온 20년>에 수록된 나의 글을 그대로 옮겨본다. 

내가 CBS사장으로 있을 때 대우그룹 비서실 H씨가 찾아온 적이 있다. 당시 금강산개발권을 따내기 위해 대우와 현대가 경쟁을 벌였는데, H씨가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를 잘 안다는 K여사와 함께 찾아온 것이다. 

“사장님, 북한 황장엽 전 비서를 잘 아시지요? 그분 심부름으로 김덕홍이라는 인물이 저를 찾아와서 북한의 현재 식량사정이 어려우니 도와달라고 하길래, 이렇게 시장님을 뵈러 온 것입니다.”

“그런데 왜 저를 찾아오셨습니까?”
“황장엽 전 비서가 김덕홍 씨에게 그랬다는 군요. 권호경 목사를 찾아가면 된다고요.”

전적으로 그 말을 믿기는 어려웠다. 그럼에도 다른 일도 아니고 식량사정이 어렵다니까 도와주긴 해야겠는데, 언론사 대표로서 함부로 드러내놓고, 움직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CBS이사인 감리교 감독회장에게 부탁하여 7개 교단을 통해 후원금을 모았다. 옥수수를 보내달라고 했기에 그 돈으로 옥수수를 사서 보내주기로 했다. 

토요일에 옥수를 전달하기로 했는데, 목요일에 김덕홍 씨 측에서 연락이 와서 옥수수 지원을 정기적으로 해달라는 게 아닌가. 그렇게는 못하겠다고 일단 거절했다. 그런데 H씨가 월요일에 다시 연락을 해와 황장엽 비서 쪽에서 내 말을 듣고 격한 반응을 보였다고 했다. 
 
▲ 한겨레신문 (1993. 4.25.)

그 얘기를 들으면서 어떤 위급함 같은 게 느껴졌다. “다른 것도 아니고 먹을 것이 없다는데.....” 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파왔다. 그래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화 총무 김영주 목사를 통해 홍정길 목사님에게 의견을 물었다. 

“홍 목사님, 북의 황장엽 씨 측에서 옥수수를 정기적으로 보내달라고 요청하라고 했다는 사람이, 권호경 목사에게 찾아왔는데, 거절한 상태입니다. 아무래도 느낌이 이상해서 그쪽 말이 신뢰할 만한지도 의심스러워서 목사님 의,견을 한번 들어보려고 연락을 드렸습니다.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네, 그러셨군요. 그러면 제가 황장엽 씨를 한번 만나봐야겠습니다.”

그저 한번 의견을 물어본 것인데, 평소 용감하기로 유명한 홍정길 목사가 직접 황장엽 씨를 만나보겠다는 게 아닌가. 그리고 자신의 말대로 황장엽 씨를 중국에서 만나 옥수수 지원문제를 논의했다. 

그 만남이 있던 날, 홍 목사와 동행했던 김영주 목사가 이상하다며 전화를 해왔다. 황장엽 씨가 ‘우리가 언제 그랬냐’고 했다는 것이다. 하는 수 없이 다음날 아침에 다시 만나기로 했다면서 자기들이 자주 가는 호텔 커피숍에서 보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그 전화를 받고 나서 자꾸 의심이 들었다. ‘뭔가 이상하다. 황장엽 씨가 왜 그런 걸까?......’

다음날 오전 10시경 다시 전화가 왔는데, 황장엽 일행은 오지 않고 북한대사관에서 지프차가 와서 황장엽 씨를 찾더라는 것이다. 그 연락을 받고 깜짝 놀랐다. 그 연락을 받고 잠시 기다려보라며 전화를 끊었는데, 곧바로 우리 방송국 보도국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 조선일보 (1997. 2.13.)

“사장님, 지금 청와대에서 12시에 긴급 기자회견을 한다고 왔습니다.”

‘이거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김영주 목사에게 전화가 왔기에 다급하게 말했다. 

“김 목사, 지금 낌새가 이상하니 주변에 황장엽을 만나기로 했다는 하는 애기는 일절 하지 마세요. 그리고 홍 목사님 모시고 바로 자리를 떠서 곧바로 비행기를 타세요. 지금 뭔가 큰 일이 벌어지고 있는 모야이야.”

보도국장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황장엽 씨가 한국대사관으로 피신해왔다는 것이었다. 북한 고위관리가 중국 주재 한국대사관에 피해 있다는 것은 망명을 뜻하는 것이었다. 

황장엽 씨가 숙소에서 나올 때 여느 호텔에 가서 누구를 만난다고 했는데, 그 자리에 북한 정보기관원들이 들이닥쳤다가 황장엽 씨가 안 보이자 그냥 돌아갔다는 얘기를 뒤늦게 들렀다. 자칫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때는 휴대전화로 연락할 수도 없는 시절이어서 황장엽 망명소식을 급히 홍정길 목사에게 전할 수도 없었다. 

내가 대북 옥수수 지원문제로 연락하여 홍 목사가 황장엽 씨를 만나보겠다고 했고 일이 거기까지 진행되었으니, 자칫 본의 아니게 홍정길 목사에게 큰 위험을 안길 뻔했던 것이다. 무탈하게 귀국했다는 소식을 듣고 하나님이 그를 사랑하신다는 생각이 들어 절로 감사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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