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교회 대표, 판문점에서 만나다 (70회)
  제12장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2

1월 30일, 북한의 고기준 목사가 전화통지문을 보내왔다. KNCC총회 참가 문제와 관련한 실무를 협의하기 위하여 2월 6일 오전 10시에 판문점 중립국 감독위훤회 회의실에서 접촉을 갖자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날 이 전화통지문을 받지 못했다. 통일원이 이 통지문을 하루 동안 가지고 있다가 다음날 오전 기자들에게 먼저 배포한 다음 우리에게 전달했기 때문이다. 통일원에서는 북한이 우리에게 요구한 실무회담 날짜 2월 6일 오전 10시를 2월 10일 오후 3시로 연기해달라고 요청했다. 

KNCC는 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여 2월 10일 오후 3시로 연기하자는 전화통지문을 북한으로 보냈고, 2월 6일에서야 실무회담 연기를 수락한다는 고기준 목사의 전화통지문을 통일원으로부터 받았다. 그리하여 2월 10일 오후 3시, 드디어 남북의 교회 대표들이 분단의 한복판인 판문점에서 만나게 되었다. 우리 측에서는 KNCC 총무인 나와 통일문제위원회 위원장인 장기천 감독이 나갔고, 북한은 조기련 대표로 고기준 목사와 김운봉 목사가 나왔다. 

나는 그동안 분단된 한반도에서 살아오면서 이 땅 위에 교회가 서야 할 자리가 어디인가를 자문해왔다. 그 대답은 명료했다. 그곳은 바로 분단의 한복판이었다. 나는 분단의 한복판에서 남북의 교회가 서 있는 꿈을 꾸며 나를 다듬어왔다. 하지만 판문점은 엄중한 곳이었다.

남북교회 대표가 판문졈에서 처음 만난다는 사실에 들떠 있었기에 나는 그 자리가 얼마나 무서운 자리인지, 또 얼마나 많은 희생과 죽음을 있게 했고, 또 앞으로 언제까지가 될지 알수 없는 비극의 자리인지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그저 모든 것이 잘 풀릴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 안일한 생각이었다. 우리는 녹음기 한대 준비하지 않고 그 회담에 임했다. 지금 생각해도 아무런 준비 없이 회담에 임한 것은 큰 실수였다. 

실무회담 자리에 선 우리는 반갑게 인사를 나눈 뒤 곧바로 일정에 관한 의견을 나누었다. 그런데 북한의 고기준 목사가 “2월 15일은 북한의 명절이라 갈수 없고, 17일에 갈수 있습니다.”라고 하며 남한 방문시기를 변경했다. 내가 “목사님, 지난번 주석님 앞에서 15일에 오시기로 합의하지 않았습니까?”라고 반문하자 고 목사는 퍽 난감해하며 곧바로 나의 말에 응수하지 못했다. 

그런데 갑자기 회담장 뒤에서 고 목사에게 쪽지 한 장이 급히 전달되었다. 회담장 뒤로 가림막이 있었는데, 그 안에 통일문제위원회 국장인 김영주 목사를 비롯해 우리 쪽의 몇몇 실무자가 앉아 있듯이, 북한 쪽에서도 실무자가 앉아 있었던 모양이다. 쪽지를 읽은 고기준 목사는 나를 바라보며 “그러면 약속대로 15일에 가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방문날짜가 신속하게 결정되자, 북한 쪽이 제시한 4박5일 간의 체류 일정과 판문점 통과 문제는 별 이견 없이 협의할 수 있었다. 고 목사는 남북이 서로 귀한 것을 나누는 운동의 일환으로 가져갈 것이 있으니, 그것을 싣고 갈 트럭을 준비해달라고 부탁했다. 우리는 좋다고 대답했다. 우리는 북한 측에 제시한 10명의 대표단과 수행원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북측 대표단의 명단을 13일에 전달받기로 합의했다. 

그 다음으로 나눈 의제는 통신문제와 기록문제였다. 우리는 북측 대표단에 기자가 포함되는 것을 반대한다는 남측 당국의 입장을 전달했는데, 고기준 목사는 “역사적인 방문의 기록보존을 위해 촬영을 하는 사람과 기록 요원으로 기자 두 명을 포함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라고 요청했다. 

나는 “조선기독교연맹에서 기록을 책임질 사람이 오면 되고, 해외통신 문제는 WCC나 일본 NCC를 통해서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라고 동의를 구하면서 “서로 양측 연락관을 통해 협의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라고 말했다. 그런데 나의 이 대답이 경솔했던 것이다. 북한 측에서 연락관에 대해 질문했을 때는 남북 통신관을 의미하는 것이었는데, 나는 해외통신관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대답한 것이다. 
 
▲ 경향신문의 남북교회 교류에 대한 권호경 목사 인터뷰 기사(1992. 1.16.)

하지만 오해가 생겼더라도 남북이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직접 만나 해결했어야 했다. 물론 지나고 보니 그렇게 했어도 우리 정부당국이 막으려고 했다면 막았을 일이었다. 어쨌든 그 날의 실무회담은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우리는 2월 15일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2월 13일 오전, 북한 측에서는 실무회담에서 약속한대로 대표단 및 수행원 10명의 명단을 남측 통일원에 통보하였다. 그런데 통일원은 그날 4시경에 되어서야 팩스로 출처 미상의 명단을 KNCC에 전달해왔다. 그것도 북한 측의 명단을 그대로 전하지 않고, 명단 중 두 명은 기자라고 명기한 것을 보내온 것이다. 

북한 측에서 보내온 명단에 이의가 있다면 알려달라는 별도의 통지도 전해주지 않았다. 게다가 KNCC에 명단을 전달하기도 전에 기자회견을 열어 북한교회 대표의 한국교회 방문이 무산되었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해버렸다. 

통일원은 다음 날인 2월 14일 오전에 KNCC와 일체의 협의도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북측에 전화통지문을 보내 북측 수행원 중 기자가 포함되어 있는 것은 판문점 예비회담 합의사항을 위반한 것이며, 직통회선 3회선ㅁ도 절대 제공할 수 없다고 통고했다. 우리는 북측에 보낸 이 전화통지문을 보여 달라고 통일원에 강력하게 요청했으나, 통일원은 전화로만 그 내용을 불러주면서 기록은 남기지 않았다고 답변했다. 

오후가 되자 고기준 목사는 전화통지문을 통해 KNCC 제41차 총회에 참가한다는 것을 보류한다는 내용을 나에게 전해왔다. 팩스로 보낸, 사인이 없는 두 장짜리 문서였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권호경 목사 귀하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우리 조선기독교도연맹 대표단은 귀 기독교교회협의회의 요청에 따라 15일 오전 10시 판문점을 통과하여 서울에 나가 귀 협의회 제41차 총회에 참가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동안 우리 대표단은 모든 준비를 와료하고 13일 오전에 이미 합의된 절차에 따라 대표단 명단을 귀측에 주었으며, 귀 당국으로부터 신변안전담보각서를 넘겨 받았습니다. 

그런데 귀측 당국은 오늘 오전에 갑자기 8.15 후 처음으로 이루어진 우리 대표단의 서울 방문을 역사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촬영기자가 동행하고, 우리 대표단의 체류기간 동안 서울, 평양 사이의 통신을 보장해줄 것에 대한 우리의 요구를 절대로 받아 줄 수 없다는 통지를 보내왔습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있은 북남관계의 전례에 심히 어긋나는 것이며, 더욱이 북남 사이의 합의서가 채택되고 화해와 완화의 기운이 조성되고 있는 오늘의 변화된 정세에 비추어 볼 때 부당한 처사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조선기독교도연맹은 남조선당국이 북남 기독교인들의 자유로운 래왕 문제에 간섭하여 우리 대표단의 서울방문을 방해하고 있는데 대하여 깊은 유감을 표시하는 바입니다. 아울러 우리는 남조선당국이 우리 대표단에 포함되어 있는 촬영기자도 정치적 이유를 붙여 받을 수 없다고 하고 통신도 같은 이유를 들어 보장해줄 수 없다고 하는 조건에서는 부득이 귀 기독교교회협의회 제41차 총회에 참가하는 것을 보류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리는 바입니다. 

나는 우리 대표단이 비록 예정대로 서울에 나가지 못한다고 하여도 귀하와 귀 협의회가 우리 대표단을 위하여 모든 성의를 다해 훌륭한 준비를 갖추어준 푸근한 정에 대하여 잊지 않고 감사히 여길 것입니다. 

우리는 귀하와 귀 협의회의 아낌없는 노력으로 이번 귀 협의회 제41차 총회가 나라의 평화와 평화통일을 위한 훌륭한 회합이 되어줄 것을 기원해마지 않는 바입니다. 

1992년 2월 14일
조선기독교도연맹 대표단 단장 고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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