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북 합의내용 발표 (69회)
  제12장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2

식사가 거의 끝날 무렵 김 주석은 내게 “오늘 가셔야 합니까?”라며 아쉬움이 가득한 음성을 물었다. 마치 연세 많은 친근한 할아버지와 같은 음성이었다. 그는 12시 40분쯤 식사를 마치고 걸어 나가는 내 손을 꼭 잡고는 “이제 구면이니까 또 오시라요.” 하고 큰 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나도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라고 인사를 하고 뒤돌아섰다. 김 주석의 나이는 당시 82세였다. 우리는 그 길로 고기준 목사와 함께 공항으로 향했다. 

가는 차 안에서 나는 궁금한 것이 있어 고기준 목사에게 “고 목사님, 아까 식사 후 나오실 때 김정규 씨가 큰 소리로 뭐라고 김 주석님께 말씀을 올리시던데, 그게 무슨 소리예요?”라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고기준 목사는 “네, 대를 이어 충성하겠다는 소립니다.”라고 대답했다. 

공항에 도착하니 또 눈발이 휘날리기 시작했다. 올 때도 눈발이 휘날리더니....... 이 눈발은 무슨 의미일까? 나는 눈발을 헤치며 걸어가는 동안 잠시 생각에 잠겼다. 헤어질 시간이 되자 고기준 목사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회 때, 그리고 부활절 때, 8월 평화통일예배 때 사용해주십시오.”하며 선물로 가져온 포도주를 내밀었다. 

나는 고 목사와 악수를 하면서 잠시 감사인사를 전했다. 그런데 손을 잡으니 너무 아쉬웠다. 나는 노구의 고기준 목사를 얼싸안았다. 몇 번이고 안고 떨어지기를 반복했지만 아쉬움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고기준 목사의 주름진 얼굴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나도 울컥하는 마음에 눈시울이 붉어졌는데,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 같아 두 눈을 꼭 감아야 했다.  

평양에서 CJ904기를 타고 오후 14시 35분에 출발하여 북경에 15시 15분에 도착했다. 우리는 환완자오 부회장과 함께 건국호텔로 가서 담소를 나누다가 다음날 아침 식사를 같이 하기로 하고 헤어졌다. 다음날 환완자오 부회장과 함께 아침식사를 하면서 중국교회와 한국교회 관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뒤 우리는 공항으로 향했다. 

북경에서 12시에 출발하는 KA329기를 타기 위해 수속을 하고 있는데, 공항 안내소에서 안내방송이 들렸다. 우리를 찾는 방송이었다. 가보니 북한 대사관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평양에서 전해드리라고 해서 가지고 왔다면서 봉투 하나를 건네주었다. 

봉투를 열어보니 사진 3장이 들어 있었다. 도착했을 때 찍은 사진 두 장과 식사 때 찍은 사진 한 장이었다. 식사 때 사진은 엉겁결에 위스키 잔을 든 사진이 아니고 포도주 잔으로 건배하는 사진이었다. 이런 소소한 부분까지 세심하게 배려를 해주는 것을 보고 또 다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15시 10분에 홍콩 공항에 도착해서 16시 20분에 CX420기를 갈아타고 김포공항에 도착하니 20시 20분이었다. 공항출입구는 취재진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취재진들이 입구를 꽉 막아서는 바람에 나는 간신히 빠져 나올 수 있었다. 

그 후 여러 기관, 즉 안기부, 보안사, 청와대에서 찾아와 내게 김 주석의 근황을 물었다. 나는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는데, 그래도 집요하게 캐묻기에 생각한 그대로 말했다. “제가 뵙기로는 그냥 마음씨 좋고 예의 바른 할아버지 같은 인상이었습니다. 그리고 건강은 잘 모르겠으나 점심식사를 하실 때 위스키를 몇 잔 하실 정도로 좋아 보였습니다.”라고 했다. 
 
▲ 한겨레신문의 권호경 목사의 방북기사 (1992. 1.5.)

그랬더니 어떤 사람이 “그렇게 말씀 하시면 곤란한데요.”라고 했다. 그래서 나도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러니 묻지 마시오. 잘 모르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나는 1월 16일 오전 11시 30분에 기자회견을 열어 방북을 통해 합의한 내용을 발표했다. 

1992년 1월 7일부터 13일까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의 총무 권호경 목사가 조선기독교연맹 중앙위원회 서기장 고기준 목사의 추천으로 북한을 공식 방문하였다. 교회협 총무 권호경 목사의 이번 방북은 조선기독교 연맹과 남북평화통일 선교협력 및 1995 희년 5개년 공동사업의 실천에 관하여 협의하기 위한 것이었다. 

우리는 희년 5개년 공동사업 계획을 실천해가는 것이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 협력에 관한 합의서>와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데, 일익을 감당하는 것이라 믿는다. 이번 방북의 성과를 요악하면 다음과 같다. 
 


1. 1992년도 <남북평화통일 공동기도주일>(금년 8월 9일)의 공동예배문과 기도문을 공동으로 작성하여 확정하였다. 

2.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조선 기독교 연맹이 교회협의회의 총회에 정기적으로 참석해줄 것을 초청해놓고 있는데, 조선기독교도연맹은 금년 2월 17일에 서울의 동광교회에서 “우리는 한민족, 한 교회”라는 주제로 열리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의 제41차 정기총회에 5~10명이 참석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긍정적인 답변을 하였다. 조선기독교도연맹 대표들의 서울 방문에 관한 협조를 얻기 위해 곧 통일원과 협의를 가질 예정이다. 

3.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의 총무 권호경 목사는 금년 8월 중순에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남북교회의 협의회를 평양에서 개최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하였고, 조선기독교도연맹은 이것의 중요성을 재확인하고 긍정적으로 검토하기로 하였다. 

앞으로 이 협의회 역시 매년 정기적으로 개최할 것이며, 개최 지역은 평양과 서울을 번갈아가며 열리게 될 것이다. 1990녀 12월에 스위스 글리온에서 열린 제3차 한반도 평화통일협의회에서 남북교회의 대표들은 1984년 일본 도잔소 회의의 원칙에 따라 “통일 성취를 위한 남북교회의 대화 및 만남을 평양과 서울에서 개최할 수 있도록 공동으로 노력”하기로 협력한 바 있다. 

4. 남북교회는 1995년을 통일의 희년으로 선포하고 희년 5개년 공동사업을 벌이고 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권호경 목사는 이 희년 정신의 구현을 위해 남북의 교회가 귀한 것을 서로 나누는 운동을 전개하여 남북 간 영적, 정신적 일치를 높여가자고 제안하였고, 조선 기독교연맹은 이를 긍정적으로 연구하기로 하였다. 

5.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권호경 목사는 1월 12일 오전 10시부터 평양의 봉수교회에서 열린 주일예배에 참석하여 설교하였다. 교회협 총무 권호경 목사는 예배소서 2장 13~18절을 본문으로 하여 “우리를 하나되게 이끄시는 예수그리스도”라는 제목으로 설교하였다. 이 예배는 약 300명의 신도들이 참석하였다. 

6.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권호경 목사는 위의 모든 사항을 요청하기 위해 1월 13일 10:00부터 12:40분까지 김일성 주석을 접견하고 오찬을 함께 하였다. 이 자리에서 권호경 목사와 동행한 WCC 아시아국장 박경서 박사와 조선기독교연맹의 중앙위원회 위원장 강영섭 목사, 서기장 고기준 목사가 함께 하였다. 

이 만남은 시종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으며, 김일성 주석은 이 자리에서 자신은 종교를 반대하지 않으며, 과거 자신이 주일학교를 다닌 것과 젊을 때 만주에서 손정도 목사의 도움을 받았다는 것을 회상하는 등 기독교에 대한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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