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주석과의 만남_2 (68회)
  제12장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2

“우리는 핵이 없는데, 영변에 소련 사람들이 해준 핵물리 연구소에 소련 두부라 해서 공부하고 온 학생들이 있는데, 소련이 자료를 제공해준 것 같다. 남쪽은 핵무기가 있다, 없다 말 못하다가 부시 대통령이 핵무기 철수한다고 하니 핵무기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하더라. 미국이 한반도가 걱정이 되면 태평양 자기네 땅에 핵무기를 갖다 놓으면 된다. 미군 주둔할 필요없다. 소련이나 중국도 필요 없다.”

“일본의 군국화는 막는 게 좋다. 이제는 미국이나 남한하고만 하지 말고 우리하고도 하자. 우리와 직접 하자. 뉴욕에서 국무성과 1월말 경에 고위급 회담을 하자 한다. 일본에서 가네마루가 왔을 때 ‘미국은 거지다. 너희도 채무국이다.’라고 했다. 심술 바르지 못한 말로 ‘너희는 군비경쟁 하지 말라. 군비 증강하면 망한다.’라고 했다. 미국이 코 흘리면 감기는 일본이 든다. 이향란이란 일본 국회의원이 오다카 요시코, 야마구치 요시코라고도 하는데, 그 사람이 나더러 일본에 오셔서 총리대신 해주십사 해서 제 코도 못 씻은 주제에 남의 나라 수상은 무슨.........”

“미국이 정책 전환을 하려 한다. 그래서 조선 정책도 내리 눌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1월 말경 대표단이 미국에 간다. 남쪽에서 정상회담 원한다. 나도 원한다. 신년사에서 노태우 대통령을 초청했다. 노태우 대통령이 정상회담 할 의사가 있다면 소소한 것, 무엇 때문에 문익환 목사를 못 내놓는 건가. 고위급 회할 때 방북인사 석방, 문익환 목사, 임수경 처녀, 그리고 팀스피리트 훈련하려면 회담기간이라도 연기하라 했다. 그런데 이번에 부시 대통령이 한국 가려니 연기 하더라. 그러니 회담 역시 하기 힘들다.”

김 주석은 잠깐 그 특유의 눈빛으로 위를 응시하더니, “연세 많으신 목사님이 감옥에 계신 것이 생각나서 며칠 전 목사님이 여기 계실 때 사용하던 방을 내가 가보았다.”라고 했다.

그리고 김 주석은 다시 말을 이었다. “일본의 가네마루가 법 어기고 들어온 일본 선원 한명 내주라했더니 탄복하더라. 일본 선원 한명을 우리가 나포했다. 그래서 가네마루가 석방을 요구하러 왔었다. 놓아주라했지. 그래서 감탄할 것 같아. 법은 자기 정치에 맞게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종교 반대 안한다. 내가 왜! ‘조선의 하나님 믿어라.’이다. 천도교 수운대사도 민족 대단결 말씀하셨다. 기독교가 일제시대 때 애국운동을 했다.”

내가 알아들을 수 있을까 말까 한 이런 이야기를 할 때 나는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그런데 기독교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자 이때가 바로 기회다 싶어 실례를 무릅쓰고 끼어들었다. 

“좀 전에 주석님께서 종교 교류가 현 합의서 내에서도 가능하다고 말씀하셨는데, 실질적으로 종교 교류를 공히 현실화해야 하겠습니다. 남북 교회는 지난 80년대 중반부터 스위스 글리온에서, 미국에서, 일본에서 조선기독교도 연맹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여러 번 만나왔습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한반도 내에서는 만나지 못했습니다. 남북 내에서 남북교회가 정기적인 교류를 하기를 서로 합의했고, 또한 이것을 간절히 원합니다. 남북합의서 채택 후 처음으로 남쪽 대표로 제가 평양을 방문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셨으니 이제 남한에 북한교회 대표를 보내주십시오. 남측이 92년 2월 17일 총회에 북측 교회 대표를 초청했으니 2월 14일 꼭 보내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8월 9일에 통일협의회를 서울에서 개최하기로 했으니, 이때도 북측 대표를 보내주십시오.” 

며칠을 고민하며 준비한 내용이었다. 그러자 김 주석은 생각해봤는지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2월 14일은 보내지. 그런데 8월 9일은 그때가 서 봐야 하지.”라고 대답했다. 기다리던 대답을 듣자, 나는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했다. 
 
▲ 김일성 주석과의 대담 뒤 함께 한 식사

그때 문밖에서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 같았다. 분위기가 누그러지자 나는 다시 용기를 내어 “1995년 분단된 지 50년이 됩니다. 구약성경 레위기에 보면 희년이란 말씀이 있습니다. 납복 교회가 1995년을 희년으로 선포하고 함께 기도하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의 민족인데 너무 오래 떨어져 살아서 마음도 멀어지고 모든 것이 갈라졌는데, 이제 하나 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노력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레위기 말씀대로 서로 모든 것을 평평하게 하기 위해서는 남북이 서로 귀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서로 나누어 마음이 하나 되는 운동을 했으면 합니다. 서로 귀한 것을 나누다보면 서로를 좀 더 이해하게 되고 마음도 가까워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가 서로 마음이 하나 되고 민족이 하나 되는 일을 찾아서 남북나눔운동을 생활화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라고 내쳐 생각해오고 있었던 것을 다 말해버렸다. 

그랬더니 김 주석도 레위기 말씀을 잘 안다고 하면서 긍정적으로 호응해주었다. 참으로 감격스런 순간이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동안 11시 30분이 되었고, 그제야 김 주석은 이야기를 멈추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우리들은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식당에는 둥근 식탁이 있고, 그 위에 명패가 놓여 있었다. 명패에 따라 김 주석이 중앙에 앉고 내가 오른쪽에 앉았다. 그리고 강영섭 목사, 고기준 목사, 박경서 박사가 순서대로 앉았다. 

김 주석은 식사 전에 건배를 하려고 위스키 잔을 들면서 나를 바라보았는데, 그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김 주석이 들고 있는 것과 같은 위스키 잔을 들고 말았다. 내가 놀라면서 다시 포도주잔으로 바꾸어 들었더니 김 주석을 기다리고 있다가 건배를 했다. 그러고는 “요즘도 십계명 지키나요?”라고 말하는 바람에 모두 한바탕 웃을 수 있었다.

테이블에는 음료로 위스키, 포도주를 비롯하여 물과 주스가 놓였고, 식사로는 칠면조구이, 쏘가리회, 배밤채, 뱀장어구이, 소갈비옥돌구이, 언감자깨국수, 녹두지짐, 김치 등이 나왔다. 음식이 나올 때마다 김 주석은 우리에게 꼭 먼저 권했다. 

흥미로운 것은 김 주석이 음식이 하나씩 나올 때마다 일일이 설명을 하는 모습이었다. 김 주석은 언감자국수를 권하면서 “이것은 내가 개발한 것이지. 옛날 만주에서 내가 손정도 목사님의 주일학교에 다녔어. 손정도 목사님이 어느 곳에 가면 감자밭이 있으니 가서 캐어 먹으라고 하면 케어 먹곤 했거든. 그리고 남은 감자는 봄에 캐서 녹말을 만들어 국수를 빼면 이렇게 된단 말이야. 이게 내가 개발한 국수야.”라고 하면서 우리가 먹는 모습을 따뜻하게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문득 생각이 났는지, “얼마 전에 손 목사님 막내아들이 미국에서 와서 이 식탁에서 같이 식사를 했지.”하고 말했다. 내가 알기로 손정도 목사는 만주에서뿐만 아니라 서울 동대문감리교회에서도 목회를 했다. 

손 목사의 큰 아들이 바로 바로 우리나라 손원일 해군 제독이다. 손정도 목사의 사모는 우리나라 적십자 부총재였고, 정동감리교회 권사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김 주석은 이런 사실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식사를 하는 동안 김 주석은 강영섭 목사에게 “목사님, 아주머니가 편찮으시다는 말을 들었는데, 어떠신가?” 그러자 강 목사는 벌떡 일어나 “예, 좋아졌습니다. 어제 봉수교회에서 권호경 총무님이 설교하셨고, 300여명이 모여서 은혜스럽게 예배를 드렸습니다.” 라고 주일예배 상황까지 자세히 보고했다. 

김 주석은 또 위를 응시하더니 고기준 목사에게 “고기준 목사는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시죠?”라고 물었다. 고기준 목사도 역시 벌떡 일어나 “지난해 진갑을 해먹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고 목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김 주석은 “고 목사, 나하고 천당이나 같이 갈까?”하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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