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주석과의 만남_1 (67회)
  제12장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2

13일은 북한을 떠나는 날이었다. 나는 서둘러 아침식사를 끝내고 서둘러 짐을 정리했다. 김일성 주석과의. 만남에 대해서는 여전히 구체적인 이야기를 전달받지 못했으나 전날 숙소를 찾아온 기관원들의 행동을 보면 가능성이 충분했기에 일말의 희망은 놓지 않고 있었다. 

나는 숙소 의자에 앉아 그동안 북한에서 있었던 일들을 하나 둘씩 반추해보고 있었다. 잠시 후 노크소리가 나서 나가보니 계급이 높아 보이는 군인 한명이 문밖에 서 있었다. 아침 8시경이었다. 그는 나에게 김 주석에게 모셔다드리기 위해 왔다고 했다. 드디어 기다리던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나는 서둘러 로비로 내려갔다. 

차에 타기 전 그에게 “그런데 왜 강영섭, 고기준 목사님은 보이지 않나요? 같이 가셔야 하는데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의 얼굴에 아주 난감해하는 표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아무래도 강영섭, 고기준 목사의 동행은 허락이 떨어지지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 두 사람의 동행이 꼭 필요했다. 나는 “북한교회 목사님들과 함께 주석님을 뵈어야 합니다.”라고 간곡한 어조로 말하면서 “그래야 이 만남이 의미가 있게 됩니다.”라고 덧붙였다. 

나는 차에 올라타지 않은 채 그 자리에 서서 김 주석을 만나야 하는 이유를 다시 한 번 강조했다. “북한교회 지도자들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화 총회에 초청한 사실을 말씀 드리고 북한 목사님들도 한국을 방문할 수 있도록 허락받기 위한 만남입니다.” 내가 간곡하게 부탁하는 동안 시간은 이미 8시 30분을 지나고 있었다. 

시간이 지체되자 박경서 박사도 안정부절 못하며 걱정하기 시작했다. 그 군인은 다시 한 번 알아보겠다며 숙소 안으로 들어갔다.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빠른 걸음으로 우리에게 다가와 차문을 열며 말했다. 

“그 목사님들은 직접 오시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빨리 가십시다.”
“좋습니다. 하지만 그 목사님들이 오시지 않으면, 저는 그냥 돌아올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겉으로는 태연하게 말했지만, 속으로는 좀 겁이 났다. 하지만 내가 세게 나가지 않으면, 북한교회 지도자들이 그 자리에 참석하지 못할 것이고, 그렇다면 김 주석과의 면담도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실랑이 끝에 시계를 보니 9시가 다 되었다. 차를 타고 가는 동안 나는 김 주석을 만났을 때 해야 할 말들을 되새겼다. 30분쯤 지났을까. 차는 대성산 주석궁이라는 곳에 멈춰 섰다. 차문을 열고 나가자 찬바람이 휙 하고 지나갔다. 영하 10도는 되는 듯했다. 

그런데 그 추운 날씨에 김일성 주석은 출입구 밖까지 나와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김 주석은 허리를 숙이며 깍듯하게 인사를 했다. 나는 순간 당황했는데, 김 주석은 나의 표정에 아랑곳없이 “잘 오셨습네다.”라고 하며 환한 표정으로 손을 내밀었다. 

나는 김일성 주석을 만난 어느 일본 기자로부터 김일성 주석의 매너가 참 좋다는 말을 전해들은 적이 있었다. 그 소리를 듣고 반신반의했는데, 그의 말대로 김 주석이 우리를 따뜻하게 맞아주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대통령도 몇 번 만나보고 독일의 바이제커 대통령도 만나보았지만, 이런 경우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이제까지 만난 대통령들은 모두 내가 기다리다가 만났고, 또 들어오면 벌떡 일어나 인사를 하는 형식이었다. 그런데 김 주석을 그 추운 날씨에 밖에 나와 기다리다가 우리들을 환영해주었다. 나는 그런 상황이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아니, 압도당했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 김일성 주석과 기념촬영 / 왼쪽부터 강영섭 목사, 권호경 목사, 김일성 주석, 박경서 박사, 고기준 목사

안내를 받으며 안으로 들어가니 입구 가까이에 폭포수가 흐르는 큰 그림이 걸려 있었다.  김 주석은 우리에게 그 그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자고 제안했다. 폭포수 그림을 배경으로 박경서 박사와 내가 나란히 섰는데, 김 주석이 몸을 움직이더니 나를 그의 오른쪽에 서게 했다. 또 한 번 김주석의 배려를 느낀 나의 마음은 웬지 모르는 약간 긴장이 되었다. 

사진을 찍은 뒤 우리는 곧바로 회의실로 향했다. 김 주석은 우리를 조금 앞세우는 태도를 취하면서 걸어왔다. 큰 회의실을 향해 함께 걸어들어 가는데, 그는 나에게 먼저 들어가라는 손짓을 하며 안내했다. 회의실에는 직사각형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김 주석은 입구 중앙에 앉았고, 나와 박경서 박사는 그 맞은편에 앉았다. 이미 와있던 강영섭 목사와 고기준 목사도 함께 착석했다. 

그리고 우리는 9시 40분부터 11시 30분까지 대담을 했다. 주로 김 주석이 이야기 하고, 우리는 거의 듣기만 했다. 내가 여기서 밝히는 대담 내용은 당시 내가 메모한 것을 근거로 주제별로 간추린 것이다.  

김일성 주석은 1991년 12월 13일에 채택된 상호 불가침과 교류, 협력에 관한 합의서에 정원식 총리와 연형묵 동지가 만난 수표를 한 이야기부터 꺼냈다. 합의서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잘 되어야 한다는 바람을 전하고, 합의서 내용에 있는 세부사항까지 합의되고 잘 지켜져야 화며, 이를 통해 경제교류와 문화교류를 잘 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때 내가 “이 합의서에 종교 교류가 빠져 있습니다.”라고 하니 곧바로 김 주석은 옆에 있던 윤기복 비서에게 이 합의서에 왜 종교교류가 빠져 있는지 확인해보라고 지시했다. 

잠시 뒤 온 수행원은 “이미 수표한 것이라서 합의서에 다시 삽입할 수는 없으나 현재 이 합의서 내에서도 종교 교류는 할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 뒤로 김 주석은 여러 주제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우리도 할 수 없이 들어갔는데, 만일 안 들어가면 우리가 재야인사 된다. 이제 유엔은 상임위원회를 두고, 유엔에는 한 석만 차지해야 한다. 애국자라면 두개의 민족처럼 하면 안 된다. 민족이 통일되어야 한다. 제도는 조선인민공화국과 대한민국이 이대로 있으니, 부수면 불상사가 생겨서 독일처럼 실업자가 생긴다. 통일은 후대에 맡기고 우리 대에는 연방제만 하자. 하나는 사회주의, 하나는 자본주의, 그리고 장사, 내왕, 교류하자.” 

“군대도 둘을 두자. 단 숫자는 같아야 한다. 10만까지 줄이자. 러시아, 중국, 일본을 상대로 우리가 20만 정도 있으면 된다. 문익환 목사는 외국 군대를 당분간 그냥 두자고 했다. 그럼 중립국가가 된다. 주변 국가가 크다. 어떤 국가의 위성 국가가 아니다. 통일해가지고 두개 나라란 죄를 후손에게 주지말자.”

“노태우 대통령은 선진국을 원하더라. 통일이 되어야 선진국이 된다. 인력, 국력, 모든 것이 잘된다. 노태우 대통령과 합의 후 군사문제 합의하면 된다. 연설만 잘 하면 선진국 되나, 함께 살아야 선진국 된다. 코르바초프는 연설 잘 하더니 망하더라. 일본 재무장 남과 북이 합의하여 막자. 미군이 남한에 있을 필요가 없다. 일본 가까운 곳에 있는 자기네 땅에 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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