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주석 면담 요청 (63회)
  제11장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1

다음날인 8일 수요일 아침이 되자 나는 일찍 일어나 기도를 드렸다. 나와 함께 동행 하시는 하나님은 늘 옆에서 내게 힘이 되어주셨다. 

식사를 마친 뒤인 아침 9시경에 김영섭, 고기준, 김운봉 목사와 중국에서부터 동행한 북한 유네스코 주재원인 김정규 씨, 그리고 김철진이라는 기관원과 나이가 좀 들어 보이는 기관원이 나를 찾아왔다. 누군가 내게 방문목적이 궁금하다며 물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가 온 이유는 첫째, 조선기독교 연맹 김영섭 목사님과 고기준 목사님을 비롯한 북한교회 대표단을 2월 17일에 열리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회에 초청했는데, 그 참석여부를 확인하고자 함입니다. 그리고 8월 9일 통일공동주간에도 북한교회 대표를 초청했는데, 이 역시 참석여부를 확인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공동예배에 사용할 공동기도문과 예배순서를 확정하는 일도 해야 합니다. 또한 1995년 희년을 준비하는 일과 앞으로 남북교회가 정기적으로 교류를 하자는 제안을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이 모든 사항을 조선기독교연맹 대표님들과 협의하가 합의하기 위해서 제가 온 것입니다.”

내가 이야기하는 동안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거리기만 할뿐 별말은 없었다. 내 말이 끝나자 고기준 목사는 관광을 하자고 제안했다. 지난번 미국 NCC 총회 때도 그 이야기를 해서 답변을 한 적이 있는데,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나는 한 번 더 “이번에는 저 혼자서 방북을 했고, 또 협의할 과제도 많고 하니 감사하지만 이번에는 사양하겠습니다.”라고 정중히 사양했다. 

그런데 대화를 하는 동안 이상하게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어딘가 문제가 있어 보였다. 나는 그런 분위기에 잘 적응이 되지 않았다. 몇몇 질문 외에는 서로 이렇게 하자 하는 의견이 없었다. 질문을 해서 대답을 했는데도, 그에 관한 가타부타 말이 없으니 대화의 분위기가 살아나지를 않았다. 

게다가 식당에는 내가 전날 전달한 선물꾸러미가 그대로 놓여 있었다. 나는 속으로 “저 선물은 정말 약소하지만 주석님께도 드리고, 목사님들도 예복으로 지어 입으시면 좋겠습니다.”라고 다시 말을 꺼냈다. 점심식사를 하고 난 뒤 우리는 평양시내를 구경했다. 시내구경을 하며 광복거리와 열사묘지, 경기장과 5만세대가 산다는 30층 아파트 등을 보았다. 

해가 저물어 다시 숙소로 돌아온 뒤 저녁식사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낮에 그들이 보인 모습이 계속 눈에 밟혔다. ‘왜 말을 안 할까? 못하는 것은 아닐까? 어떻게 협의를 해야 할까?’ 나는 내가 북한에서 해야 할 일을 다시 곱씹어보았다. 확인하고 협의해야 할 과제가 있는데,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으니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던 중 나의 뇌리를 스치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함께 따라다니던 김철진 기관원의 말이었다. 그는 얼마 전 문선명 씨가 평양에 왔는데, 김 주석에게 큰 절을 하더란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문선명 씨가 평양 가까운 곳에 자동차 공장을 세운다며 자랑스레 말했다. 
 
 
▲ 1991년 WCC 총회 때 만난 북한의 고기준 목사와

그 말을 들을 때 나는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김철진 씨가 그런 말을 한 의미가 있는 것 같았다. 어렴풋이 그 의미를 알 것도 같았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 나는 이런저런 고민으로 밤늦게까지 뒤척이다가 언제 잠이 들었는지 모르게 점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아침에 일어나서도 영 개운치가 않았다. 자꾸만 김철진 씨가 한 말이 맴돌았다. 나는 어쨌든지 간에 조기련 대표들이 KNCC 총회에 참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다짐만 계속 되뇌었다. 

5.18광주 민주화운동 이후 많은 억압 속에서도 종로5가는 남북의 평화통일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출발한 통일협의회를 위해 그동안 많은 희생을 치렀다. 도산소와 글리온, 어디에서든지 남북교회가 보이는 곳이면 한반도 문제를 앞다퉈 얘기해왔다. 

그리고  <88선언>을 통해 남북의 교회와 세계교회가 인정하는 1995년 희년 선포도 했다. 이런 선포와 선언을 앞당기기 위해서는 통일협의회를 통해 남북교회가 한반도 내에서 정기적으로 만나야했다. 

아침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향하면서도 “어떻게 남북교회의 정기적인 교류가 가능할까?” ‘이 방북 기회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나?’ 하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니 아침식사를 하는 동안에도 내내 무거운 마음이었다.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불쑥 고기준 목사에게 물었다. “목사님, 만약 강영섭 목사님과 목사님 일행이 함께 서울에 오시려면 김 주석 님의 허가를 직접 받아야 합니까?” 그랬더니 고기준 목사와 강영섭 목사가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바로 이것이구나!’ 일단 왜 그렇게 대화가 진행되지 않았는지 알고 나니 가슴이 확 뚫리는 느낌이었다.

아침 10시가 좀 넘자 김철진 씨와 조기련 소속의 신학교 교수인 박승혁 교수가 나를 만나기 위해 찾아왔다. 나는 김철진 씨를 보자마자 “주식님을 뵙게 해주세요.”라고 부탁해했다. 그는 싫지 않은 표정으로 내게 “왜 주석님을 보겠다는 겁니까?”라고 물었다. 

나는 “우리가 오게 된 여러 이유를 직접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곳에 왔으니 인사를 드리는 것이 당연한 예의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뵙게 해달라는 겁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가 “주석님께서는 지방순회를 가셔서 언제 오실지 잘 모릅니다. 그러니 좀 기다려 봅시다. 언제 오실지, 그리고 뵙게 될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연락을 해놓고 기다려봅시다.” 라고 말했다. 

그 말은 조금은 가능성이 있다는 뜻으로 들렸다. 나는 확답은 듣지 못했어도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낮에는 박승혁 교수의 강의를 듣고, 오후에는 쑥섬, 만경대, 을밀대, 모란봉극장 등을 둘러보았다. 저녁식사를 옥류관에서 했는데, 북한이 자랑하는 옥류관 냉면을 먹으면서도 나의 촉수는 온통 김철진 씨의 말과 행동을 향해 있었다. 

그렇지만 별다른 소식은 듣지 못했다. 식사 후에는 <조선의 별>이라는 홍보영상을 보았는데, 나는 너무 졸려서 영상을 보는 내내 졸다가 깨다가를 반복했다. 그러면서도 ‘김 주석을 볼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공식 일정을 마치고 숙소에 들어왔는데도 피곤한 몸과 달리 잠은 오지 않았다. 잠이 오지 않으니 또 마냥 ‘김 주석을 볼 수 있을까? 본다면 허락을 받아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만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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