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권 성경찬송 보내기운동_49개 교단 연대 (61회)
  제11장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1

1988년은 평화와 통일을 향한 KNCC의 발걸음이 뚜렷한 족적을 남긴 해이다. 1988년 KNCC 총회에서는 남북통일과 평화를 위한 <한국기독교회 선언>이 발표되었으며, 또한 1995년을 희년으로 선포하였다. 


우리는 다시금 이 한반도 역사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해방사역게 감사를 드리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꿋꿋하게 신앙을 지켜나가고 있는 북한에 있는 믿음의 형제자매들에게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한다. 

이와 같은 고백에 입각하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를 평화와 화해의 선교적 사명을 다 하기 위하여, 그리고 민족 분단의 고통에 동참하고 통일로써 이를 극복해야 한다는 역사적 요청에 응답하기 위하여 회개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평화와 통일을 위한 희년선포운동을 다음과 같이 전개하고자 한다. 

1)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1995년을 ‘평화와 통일의 희년’으로 선포한다.(중략)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 중에서 


1988년 4월에는 WCC와 협력하여 인천 송도비치호텔에서 세계대회가 개최되었다. 같은 해 9월, 남북교회는 스위스 골리온에서 또 다시 만남을 가졌다. 남북교회는 평화통일협의회를 개최하면서 공동선언문을 채택하고 1995년 희년 선포를 재확인했다. 

그 후로 남북교회는 일본, 미국, 캐나다, 독일, 호주 등지에서 여러 차례 공식적인 만남을 가졌다. 그 결과 1990년 12월 글리온 3차 모임에서 희년 5개년계획을 수립할 수 있었다. 남북교회가 자주 만나게 되면서 그 기쁨만큼 서글픈 마음이 들기도 했다. 남북교회가 열릴 수 있는 곳은 일본, 미국, 캐나다, 독일 호주 등과 같은 해외였다. 정작 우리 땅 한반도에서는 만날 수 없었다. 

남북교회의 만남이 잦아지고, 그 만남의 기운이 진해질수록 KNCC는 남북교회가 한반도내에서 정기적으로 교류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더욱이 남북교회가 직접 교류를 해야 민족의 평화통일에 기독교가 기여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고 보았다. 

그런데 남북교회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많은 걸림돌이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북한을 너무 모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른 문제들은 보수교단들이 북한교회와의 교류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것이었다. 
 
▲ 단상에 선 북한의 고기준 목사(왼쪽)와 권호경 목사

공산권 성경찬송 보내기운동_49개 교단 연대

남북교회가 정기적으로 교류하기 위해서는 주변 교회인 공산권교회와의 관계개선이 우선되어야한다고 판단했다. 그런 점에서 동구권 교회를 통해 북한교회의 실상을 자세히 알아봄과 동시에 한국의 보수교회가 동구권교회를 바르게 이해하는 것, 즉 공산권교회의 실상을 바르게 아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한국교회는 공산권에 교회가 없다고 생각했다.) 

특히 중국교회, 러시아 정교회 등 우리와 전혀 교류가 없던 동구권교회와의 관계개선이 필요 하겠다.고 생각했다. 우리에게는 이들의 협력과 조언이 필요했다. WCC를 통해 들어보니 북한교회는 이미 WCC에 가입청원서를 냈고(1974), 이것이 보류된 후 일찍이 동구권교회와 비엔나 등지에서 한반도 평화통일협의회 같은 모임을 가졌다고 한다. 

한편 동구권이 갑자기 붕괴되면서 러시아 정교회의 재정적 상황이 어려워졌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교회문이 좀 더 자유롭게 열리게 되었지만, 재정적으로는 어려워진 것이다. 중국교회 역시 1980년대 갑자기 자유화가 이루어지면서 재정적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그래서 KNCC는 실행위원회 결의로 ‘공산권 성경찬송보내기운동본부’를 범교단적으로 조직하게 되었다. 

공산권 성경찬송보내기운동은 KNCC 회원교단이나 비회원 교단 모두에서 호응이 아주 좋았다. 이때 합동교단의 대표적 큰 교회인 충현교회가 개교회로서는 제일 많은 헌금을 냈다. 전국적으로 모아진 헌금과 몇몇 교회가 협력하여 중국의 대표적 신학교인 <남경신학교>의 도서관과 심양의 <동북신학교>재건을 지원했다. 

그리고 이와 같은 협력관계로 중국교회 대표단이 한국교회를 방분했고, KNCC가 연세대에 청원하여 이 방문단 대표인 중국기독교협회 회장 정광훈 주교에게 연세대학교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할 수 있었다. 

정광훈 주교는 캐나다의 토론토대학에서 수학하고, 일찍이 제네바 세계기독교학생연맹 간사로 근무하다가 중국에 문화혁명이 일어나자 조국인 중국으로 돌아갔다. 당시 많은 사람의 만류를 뿌리치고 중국에 돌아가서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겪은 중국 교계의 대표적인 인사였다. KNCC와 중국교회와의 관계는 마침내 1993년 9월 9일, <한중교회의 연대와 선교협력>이라는 역사적인 협약서를 이끌어내는 성과를 이루었다. 

러시아정교회와의 관계도 재건되어 러시아 정교회 국제 담당 책임자인 키릴 대주교(현재 직위는 총대주교)가 한국교회를 방문했으며, 이때 KNCC 회원 교단인 그리스 정교회가 사용하고 있는 옛 러시아정교회 재산 등을 그리스정교회가 계속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한국교회는 공산권 선경찬송보내기 운동의 일환으로 WCC와 협력하여 러시아 정교회가 성경, 찬송을 인쇄할 수 있도록 그동안 비어있던 인쇄공장에 기계 일체를 중고로 공급해주었다. 인쇄공장이 비어있던 이유는 러시아 정부가 인쇄기계를 모두 가져갔기 때문이었다. 나는 KNCC 총무 자격으로 러시아정교회를 공식 방문하여 이 인쇄공장을 둘러볼 수 있었다. 

이 외에도 헝가리, 루마니아, 체코, 베트남, 스리랑카, 말레이시아 원주민 교회 등에 성경, 찬송을 지원했다. 이 과정에서 WCC로 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성경찬송보내기 운동은 그동안 관계가 전무했던 사회주의권 교회와 관계를 개선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게다가 이 운동은 한국교회 일치운동에 크게 기여했다. 특히 보수교단들을 이 운동에 찬사를 보내며 계속 지원해주었다. 이 일을 하는 동안 나를 용공이라고 비난하는 사람은 없었다. 전폭적인 지지와 협력이 있을 뿐이었다. 

나는 KNCC와 동구권 교회와의 관계개선이 결국 여러 차원에서 남북교회의 교류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공산권성경찬송보내기운동의 위원장은 부흥사인 한강교회의 정운상 목사가 맡았다. 

이와 같은 좋은 기류가 흐르는 상황에서 드디어 북한교회가 KNCC총무를 평양에 공식 초청했다. 이에 KNCC는 북한교회 대표인 고기준 서기장과 강영섭 위원장읋 1992년 2월 17일에 열리는 KNCC 총회에 초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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