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돌아온 종로5가 (59회)
  제11장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1

우리는 자의이든 타의이든 한국교회를 대표해왔음을 겸손히 받아들임과 동시에 우리에게 걸고 있는 교회 안팎의 기대를 기도하는 믿음으로 하나씩 수렴하여 실천해가야 할 것입니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성서적으로 우리가 하나인 교회를 확고히 해가야 하겠습니다.(중략)

우리는 지난 여러 해 동안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라고 하시는 말씀에 걸려 뒤늦게나마 회개하는 심정으로 우리 자매형제와 함께 살 수 있는 길을 모색해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매하게도 그동안 북한에 계신 자매형제를 증오해왔으면 하나님 앞에서 회개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민족 분단이 어떠한 이유에서 되었든지 간에 이제는 우리 자매형제가 함께 살 수 있는 길을 모색해 가는데 성서적인 입장에서 선도적인 일익을 담당해줄 것을 교회내외적으로 요청받고 있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중략)

오늘 우리에게 슬픔과 번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저는 감히 “나는 혈육을 같이 하는 내 동족을 위해서라면 나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나갈지라도 조금 한이 없겠습니다.”(롬 9:2~3)라고 하시는 이 바울사도의 신앙적 자세를 말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사상과 이념을 뛰어넘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결정지어집니다. 이 신앙적 자세를 고수함이 이 민족의 복음화와 새로운 시작임을 확인합니다. 
 


나는 총무 취임 후 가진 첫 기자회견을 통해 취임사에서 밝힌 것처럼 교회일치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한편, 교회 차원에서 남북교류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임을 알렸다. 

내가 KNCC 총무로서 수렴하고 추진해야 할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가 KNCC가 어떻게 민족의 평화통일에 기여할 수 있는가였다. 어떠한 종교이든지 그 종교의 근간이 되는 백성들이 기뻐할 때 함께 기뻐하고, 슬퍼할 때 함께 슬퍼하는 종교만이 그 존재가치가 있다는 것이 나의 평소생각이었다. 예수의 삶과 형태가 바로 그러했다. 나는 예수를 따르는 자들로서 우리가 그 분의 삶을 따라야 한다고 믿었다. 

JPIC대회 

총무로 취임하자마자 가장 먼저 치러내야 하는 일이 있었다. 그것은 전임 총무가 있을 때 WCC가 결정한 것으로, WCC JPIC 대회를 1990년에 한국에서 개최하는 일이었다. 

JPIC는 정의(正義, justice), 평화(平和, peace), 창조보존(創造保存, Integrity of creation )의 약자로 WCC에 속한 회원교회들이 서로 협력하여 해결해야 할 문제를 공동으로 인식하고, 그 해결책을 모색하여 함께 대처해나가기 위해 전개하고 있는 세계적인 기독교운동이다. 
 
JPIC를 위한 첫 번째 세계협의회는 1986년 스위스 글리온에서 개최되었는데, 이듬해 제네바에서 개최된 WCC 중앙위원회가 1990년 서울에서 이 대회를 개최하기로 결의한 것이었다. JPIC대회는 진보, 보수 할 것 없이 한국교회가 모두 참석하는 대회였는데, 그 실무를 KNCC가 담당해야했다.
 
▲ KNCC 총무 시절 직원들과 함께 한 야유회

JPIC대회는 KNCC 역사 이래 한국교회가 처음으로 받아들인 WCC의 중요한 대형행사였다. 그래서 김형태 WCC중앙위원을 비롯하여 KNCC지도자들이 걱정이 많았다. 특히 대형행사인 터라 정부관계기관의 협력이 많이 필요했는데, 관계기관 모두 KNCC에 비협조적이었다. 

세계 각국의 많은 대표들이 참석하는 대회라 비자문제부터 시작해 공항 입국문제, 숙소문제 등 산적한 문제가 너무나도 많았다. 그렇지만 KNCC직원들이 이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 하고 서로 협력함으로써 어려움을 극복해나갔다. 

이에 더해 한국교회의 적극적인 협력과 지원으로 JPIC대회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JPIC대회가 끝난 뒤 이 행사 내용에 관한 보고서를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에서 발간했다. 

KNCC 운영위원회와 CBS의 관계 정립

KNCC에서 해결해야 할 또 다른 현안은 KNCC 음영위원회의 문제였다. 음영위원회는 1987년 스스로 해산할 권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진 해산한 상태였다. 그러나 해산결정 권한이 있는 KNCC 총회에서는 이를 승인하지 않아 정관에는 음영위원회가 존재하고 있었다. 

KNCC 음영위원회는 일찍이 기독교방송인 CBS를 설립한 모체였다. CBS는 한국방송 역사상 제일 먼저 창립된 기독교재단이 운영하는 일반방송이다. CBS는 창립이후 언론사로서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치권력이 CBS를 억압하기 위해 종교방송이라는 카데고리에 묶어놓고, 보도국을 폐쇄하라는 등 간섭하기 시작했다. 나는 음영위원회를 없애려는 움직임도 단순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당시 KNCC는 음영위원회가 CBS의 모체임을 명시하고자 하는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CBS이사회가 열렸을 때 이 문제를 정식으로 제기했다. 그러나 KNCC와 CBS가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교회 내부에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CBS사장은 이 의견에 반대했다. 그러나 이사회에서는 CBS 사장의 의견을 제지하고,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이후 문제에 관한 대책위원회가 여러 번 열렸다. 여러 차례 합의 끝에 CBS 정관에 ‘KNCC 총무를 CBS 당연직 이사로 한다.’와 만일 ‘CBS가 해산될 경우 KNCC 실행위원회가 결의를 거처야 한다.’라는 것을 명문화했다. 그리하여 KNCC가 CBS 창립의 모체임을 분명히 하게 되었다.

 
  KNCC 총무 취임 (58회)
  해외 교회에만 의존하는 재정문제 해결 (6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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