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5가와 기독교회관 (51회)
  제9장 한국교회사회선교협의회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우리는 오늘이 현실이 진정 인권존중의 민주국가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상황임을 보면서 이러한 암울한 역사적 현실 앞에서 교회의 사명을 되돌아보았다. 교회는 하나님 앞에 의를 드러내며 그 시대의 불의를 고발하는 예언자적 전통을 구약시대의 예언자로부터 이어받아왔다. 

그런데 지금 이 땅의 교회들은 물량주의적인 외적 팽창에 급급한 나머지 사회의 가난하고 억눌리고 소외된 잃어버린 양들을 외면하고 있다, 교회는 마땅히 교회중심적인 지금까지의 자세를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불의에 담대히 맞서서 말씀을 증거하여 잃은 양을 찾아나서는 목자로서의 사명을 다 하여야 할 것이다. 

오늘 우리가 당면한 문제의 궁극적 해결을 진정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 되는 민주국가가 확립되고 이것이 민족통일로 이어지는 새 역사의 창조에 있다.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의로운 역사의 시작이며 교회에 세워진 사명이다. 

우리는 온 국민이 부정한 권력의 기만과 폭력 앞에 굴종하였던 불의의 역사를 떨쳐버리고, 새 역사의 주인으로서 민족의 생존과 긍지를 지켜나가 줄 것을 바라면서 우리 모두가 함께 의로운 역사 창조에 동참할 것을 다짐한다. 

1983년 10월 12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
1983년도 인권문제전국협의회 참가자 일동

1983년 인권주간 행사는 12월 4일에서 15일까지 ‘민생과 인권’이라는 주제로 전국 각 지역에서 실시되었다. 

1984년도 인권문제전국협의회는 ‘인간의 존엄과 선교’라는 주제로 6월 25일부터 27일까지 평창군 지부면 싸리 산장에서 전국 각계각층의 인사 105명이 모인 가운데 진행되었다. 이때의 결의안 가운데 중요한 것은 광주사태진상조사위원회의 구성이었다. 

이 결의의 일환으로 광주인권위원회의 조봉훈 간사가 자료를 수집하고 원고를 집필하기 시작했다. 주제강연은 조용술 목사가 맡았으며, 폭력문제에 관해서는 현영학 교수, 평화문제에 관해서는 이삼열 교수가 발제했다. 주제강연이 끝난 뒤에는 1984년 인권선언문을 채택했다. 

1984년 인권주간행사는 “눌린 자에게 자유를”이라는 주제로 12월 10일부터 16일까지 전국 각 지역에서 인권주간 연합예배를 드렸다. 당시는 전두환 정권이 사람들의 회합을 방해하고 집회를 허용하지 않을 때였다. 다만 종교집회는 허용해주었기에 인권행사에 ‘예배’라는 말을 붙인 것이다. 

1985년도 인권문제전국협의회는 6월 3일부터 5일까지 ‘하나님의 법과 인간의 법2’을 주제로 대전 가톨릭교육회관에서 2박 3일 일정으로 진행되었다. 대전 가톨릭교육회관에서 하게 된 것은, 이곳은 행사를 취소하는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곳에서는 행사 하루 전에 갑자기 취소를 통보하기도 했다. 

강사로는 김이곤 한신대 교수(구약에 나타난 법정신) 당시 인권위원회 부위원장 홍성우 변호사(법과 인권-직선제, 집시법, 언론기본법 중심으로), 이상수 변호사(법과 인권-노동법 중심으로), 김용복 교수(제3 세계의 인권상황과 교회의 대응)등이 나섰다. 
 
▲ 종로5가 기독교회관은 기독교인의 성지를 넘어 인권과 민주쟁취 운동의 상징과 산실이었다

또한 각 지역과 단체에서 <인권현장에 관한 보고>가 있었다. 다음은 <인권현장에 관한 보고>의 제목과 보고자이다. 

1. 노동현장과 인권 - 이근복 목사 (영등포산업선교협의회)
2. 농촌현장 - 윤기현 선생 (기독교 농민회 홍보단장)
3. 도시빈민의 인권 - 허병섭 목사 (수도권도시선교위원회)
4. 공해문제와 인권 - 최병철 (부산공해문제연구소)
5. 구속자 고문과 인권 ; 수형생활을 중심으로 - 이정숙 (전국노동자연맹사건으로 구속된 이태복 모친)
6. 노동자와 인권 - 유동우 회장 (한국기독교노동자총연맹 회장)

참석자 일동은 분과토론과 전체토론을 거쳐 1985년도의 인권선언문과 성명서를 채택했다. 이후 12월 8일에서 16일까지 실시된 인권주간에서는 전국 26개 지역에서 ‘악법철폐 하나님의 법 실현 - 고문 폭력추방하자’라는 주제로 인권예배가 드려졌다. (참고 <기독교교회협의회 제35회 총회보고서>, 80-81쪽)
                
1986년도 사업은 “구조적인 인권침해, 요인이 무엇이고, 이를 어떻게 제거 내지 해결할 수 있는가?”라는 내용으로 전개하기로 했다. 

1986년도 계획까지 세우고 나서 나는 KNCC 인권위원회를 떠나 CCA-URM 책임자로 가게 되었다. 후임은 김동완 목사가 맡았다. 

1986년도 6월 2일부터 4일까지 열린 인권문제협의회의 주제를 보니 ‘민주쟁취와 인권’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다음해인 1987년 6월 29일에 <6.29선언>이 있었다는 점이다. 인권문제전국협의회를 오래하다 보니 관계자들에게 앞날을 내다보는 혜안이 생긴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12월 10일부터 실시한 인권주간 행사의 주제는 ‘민주쟁취와 인권, 국민의 힘으로’였다. 

이와 같이 1970년-1980년대 인권문제전국협의회 주제와 인권주간 행사의 주제, 참여인사, 강사들을 살펴보면 1980년대 반독재투쟁의 광장과 흐름을 읽을 수 있게 된다. 여기에 종로5가 기독교회관 901호실에 있던 사선의 각종 세미나, 수련회, 송년회의 강사, 참여 인사 등을 함께 살펴보면 이 프로그램 등은 반독재 투쟁의 공간이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거의 비슷한 프로그램을 진행한 KSCF와 한국 기독교 에큐메니컬 청년연합(EYC)이 종로 5가 기독교회관에 함께 연대해 살았고, 한국교회여성연합회와 교단의 사무실들이 함께 있었기에 ‘종로5가’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종로5가’는 이후 지역명으로서만이 아니라 기독교운동의 현장으로서의 고유명사가 되었다.    

구속자를 위한 기도회인 목요기도회는 종로5가의 상징이 되었다. 정부당국은 종교집회 외에는 일체의 집회를 불허하고 청년이나 학생 3명 이상이 모이면 문제시했다. 이런 점은 감안하면 종로5가는 기독교인이나 비교독교인 모두에게 각자의 정보교환, 각 그룹의 조직 점검에 좋은 광장의 역할을 했다 할 것이다. 

특히 동아자유언론투쟁위원회(동아투위)같은 경우는 회의하는 날이 잔칫날이었다. 나는 광장에서 싹트고 형성되어 조직된 힘이 있었기에, 이것이 박종철고문사건을 계기로 일어난 6.10항쟁(1987)을 이끌어내는 데 단초가 되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한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KNCC 인권위원회는 매년 인권문제전국협의회를 개최하고 인권선언문을 냈으며, 이 인권선언문을 근간으로 인권주간 행사의 주제를 결정하여 인권주간 행사를 실시했다. 또한 인권주간 행사에서 다 수렴하지 못한 사건들은 수시로 성명서를 냈다.

 
  인권문제를 전국으로 확장하다 (50회)
  <1970년대 민주화 운동 자료집> 발간 (5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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