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문제를 전국으로 확장하다 (50회)
  제9장 한국교회사회선교협의회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가 태동될 당시는 <유엔인권헌장>이 발표된 상황이었다. 이에 발 맞춰 KNCC 국제문제분과위원회는 서울 장충동에 있는 분도회관에서 1973년 11월 23~24일 “인권과 신앙”을 주제로 인권문제협의회를 개최했다. 

이 협의회에서는 교회 내에 인권문제를 다룰 수 있는 상설기구가 필요하다는데 의견을 모으고 상설기구의 설치를 KNCC 실행위원회에 건의하기로 했다. 이후 KNCC는 이 건의안을 받아들여 인권위원회를 조직하기로 했다. 

1974년 4월 11일, 드디어 인권위원회의 첫 모임이 열렸다. 인권위원회는 매년 인권문제 전국협의회를 실시하고, 여기서 나온 의견과 내용을 근간으로 세계 인권선언일인 12월 10일 전 주간을 인권주간으로 정하여 전국적으로 인권주간행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인권위원회 조직은 위원장 1인(위원장 이해영 목사, 조남기 목사, 조용술 목사, 박형규 목사 등 KNCC 지도급 목사들이 감당했다) 부위원장 2인(1인은 교회 측에서, 1인은 교회 밖 변호사나 언론인으로 구성했다. 송건호 선생과 홍성우 변호사는 부위원장을 했다.) 그리고 본부에 국장 1명(고환규, 이직행, 이경배 등)과 실무자 약간명을 두었다. 

내가 일할 때는 윤수경 선생, 강구철 선생, 유태선 목사, 성남욱 씨, 박광혜 씨 등이 있었다. 그리고 지역인권위원회를 두었는데, 부산에서는 최성묵 목사, 대구에서는 유연창, 나길동 목사, 광주에서는 윤기석 목사, 전주에서는 신삼석, 이천수, 강경섭 목사, 청주에서는 이쾌재 목사, 춘천에서는 강원하 목사, 대전에서는 박종덕 목사 등이 활동했다. 

부산 지역간사는 고호석 씨, 대구는 사공준 씨였는데, 후반에는 이상익 씨가 맡았다. 전주는 노병관 씨, 전남은 조봉훈 씨, 울산은 박국희 씨 등이 지역간사로 활동했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잔인하게 짓밟고 들어선 신군부는 통치도 잔인무도하게 시작했다. 이에 1983년 한 해동안 399명의 양심수들이 투옥되었다. 인권위원회는 이들을 위한 상담활동, 구속자 인권대책활동, 법률구조활동 등을 전개해나갔다.    

인권문제를 전국으로 확장하다

1983년도 인권문제전국연합회는 “민생의 인권”이라는 주제로 대전 피정의 집에서 10월 10~12일에 실시되었다. 주제발의는 서남동 교수가 했고, 변형윤 교수는 “한국의 경제구조와 민생”에 대해, 조화순 목사는 “민중의 인권과 교회의 선교”에 대해, 김용준 박사는 “민생과 과학문명”에 대해 각각 발제했다. 이 모임에서 참가자들은 1983년 인권선언문을 채택했다. 
 
▲ 한국교회사회선교협의회 총무시절 / 오른쪽은 조화순 목사이다

우리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가 주최한 1983년도 인권문제전국협의회에 참가하여 “민생과 인권”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10월 10일부터 10월 12일까지 진지한 토의를 통해 우리의 뜻을 다음과 같이 밝히게 되었다. 

이 나라의 경제는 자주적인 경제발전의 가능성을 배제한 채 대외 의존적인 수출 주도형 경제구조를 택한 결과 GNP의 60%에 달하는 외채를 짋어지게 되었고, 더욱이 이러한 경제구조는 대기업 편중의 특혜금융정책으로 말미암아 1982년 현재 이 나라 30개 기업이 GNP의 60%를 차지하는 심각한 빈부격차를 가져왔다. 

이런 경제상황을 유지할 방법은 있을 수 없으며 장영자사건, 명셩사건, 영동개발진흥사건 등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 거대한 경제교란 사건이 꼬리를 물고 발생하고 있는 것은 바로 특혜금융과 부패권력의 결탁에서밖에는 그 원인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경제구조는 노동자, 농민, 일반 서민의 민생에 심각한 위협을 던져주고 있다. 

저임금과 과다한 노동시간 및 산업재해 등으로 인권과 생존권을 위협당하는 노동자들, 농업을 경시한 공업위주 정책에 따른 저곡가와 비민주적 농정과 과도한 부채로 빈곤에 허덕이 는 농민들, 도시 미관과 거리질서 확립의 명분 아래 생활수단을 박탈당한 채 이리저리 쫓겨다니는 도시영세민들은 바로 이러한 경제정책의 희생물이 된 민생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최근 연이어 발생한 KAL기 격추사건과 버어마 랑구운 폭파사건의 놀라운 국제폭력 사태 앞에 분노와 비통을 금치 못하며, 희생자들과 그 유족들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하는 한편, 어떻게 해서 이러한 비극적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함으로 말미암아 온 국민이 충격과 불안에 떨어야 하는가를 생각해보았다. 

이 나라는 주변 강대국들의 세력다툼의 틈바구니에서 휩쓸린 나머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짓지 못하는 비극적 역사를 되풀이해왔는데 이번의 참사 역시 민족분단의 결과임을 생각할 때 우리는 깊은 자성과 함께 이 민족의 앞날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80년대 들어서 우리는 미증유의 핵 위협 하에 놓여있다. 

이제 핵으로 말미암은 사활문제는 남의 문제가 아니고 바로 우리 자신의 문제가 되고 있다. 우리는 소련이 아시아에 배치하고 있는 SS-20핵미사일이 한국을 겨누어 우리에게 핵멸망의 위협을 가지고 있는 사태의 중대성을 주시하고 이의 철거를 요구하는 한편, 정부는 미소강대국에 의한 핵위협으로부터 국민의 생활과 안정을 확보할 것을 촉구한다. 

이와 같이 점차로 높아가는 냉전분위기 속에서 인류를 멸망시킬 수 있는 가공할 핵무기들이 한반도를 둘러싸고 대치하고 있는 현실은 우리가 KAL기 격추사건과 랑구운 폭파사건에서 진정한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상상할 수 없는 민족 절멸의 비극을 초래하리라는 사실을 경고하고 있다. 

정부와 국민은 이 비극을 통해 전 민족적인 새로운 각오를 가져야 할 것이며, 특히 정부는 이를 전쟁의 논리와 결부시켜 공포와 탄압통치의 구실로 삼지 말기를 충심으로 바라는 바이다. 오히려 이번 일이 계기가 되어 국민의 열망과 지혜를 총동원하여 이 민족 존망의 위기를 극복하는 자세를 가지고, 정치와 경제의 획기적인 민주적 개혁을 통해 도탄에 빠진 민생고를 해결하고 짓밟힌 민족의 자존심을 회복시켜야 할 것이다. 

우리는 노동과 농촌, 그리고 학원의 인권현장에서 자행하는 수많은 인권탄압 사레를 접하고 이러한 암울한 현실이 하루 속히 종식되기를 바라면서 이를 위해 다음 몇 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1. 노동자의 인권을 위해 노동 삼권의 보장, 노동악법의 폐지 및 개정, 민주노동활동의 보장, 퇴직예교제의 폐지, 해직근로자의 취업보장을 요구한다. 

2. 농민들의 민생과 관련하여 무분별한 외곡도입을 중지하고 식량자급 정책을 실천할 것, 농가부채의 탕감, 농협조합장 직선제의 실시, 도시 자본가에 의한 토지침탈의 방지 등을 요구한다. 

3. 학원의 정상화를 위해 졸업정원제의 폐지, 강제 군입영 중지, 지도교수제 폐지, 제적학생과 해직교수의 복학과 복직을 요구한다. 

4. 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사회안전법, 집회 및 시위법, 언론기본법, 사회보호법의 철폐 및 개정과 국가보안법의 악용중지, 폭력 및 고문의 근절, 자유로운 정치활동의 보장과 해직언론인을 비롯한 모든 해직인사의 복권을 촉구한다. 

5. 민족의 생존을 위해 한반도를 둘러싼 핵무기의 철수를 요구한다. 

 
  종로 5가 인권위원회 (4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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