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자금 사건으로 KNCC를 옭아매다 (43회)
  제8장 유신체제에 반기를 들다2

1973년 4월 3일 오전. 서울시경에서 형사 4명이 압수수색 영장을 들고 KNCC를 찾아왔다. 그들은 수도권 사업에 관한 서류를 모조리 압수하고, 11시에는 김관석 총무를 연행해갔다. KNCC 회계를 담당하던 이창섭과 직원 이경배도 함께 연행했다. 

서울시경 형사가 나를 찾아온 것은 그날 오후였다. 나는 박형규 목사, 조승혁 목사와 함께 연행되었다. 조승혁 목사가 연행된 것은 긴급조치로 수감되어 있는 동안 나를 대신하여 수도권 주무간사를 대행했기 때문이다. 당시 조 목사가 사선 총무였다. 

경찰은 김관석 목사와 박형규 목사 등이 독일의 세계급식선교회(Brot fuer die Welt, 이하 BFW)로부터 받은 20만, 3,000마르크(한화 2,700만원상당)의 원조자금을 빈민촌의 급식과 위생시설, 장학금과 직업훈련 등 원래의 목적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구속자 돕기 등에 사용하여, 이들을 업무상 횡령과 배임혐의로 입건한다고 발표했다. 

BFW의 지원은 1973년 김관석 목사가 독일을 방문해 BFW아시아 담당 책임자인 볼프강 슈미트(Wolfgang Schmidt) 목사를 만나면서 시작되었다. 슈미트 목사는 그 전에 한국을 방문하여 김관석 총무의 안내로 청계천 빈민가를 둘러본 적이 있었다. 

이를 계기로 그는 수도권 빈민선교에 원조를 해주겠다는 뜻을 밝혔고, 1차로 900만원을 KNCC에 보내왔다. 그런데 수도권 빈민선교 책임자와 실무자들이 모조리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구속되자, 김관석 총무는 이 돈의 일부를 구속자 가족을 돕거나 선교 실무자 훈련장소 사용료로 사용한 것이다. 

한편 청계천 지역에서 빈민선교를 하던 김진홍 목사가 긴급조치 위반으로 수감된 뒤 활빈교회의 담임목사로 부임한 민병길 목사는 정진영 목사에게 BFW가 KNCC에 지원한 선교자금에 의혹이 있다고 말하는 등 지속적으로 KNCC에 대한 불신을 갖게 했다고 한다. 민 목사는 정 목사에게 ‘김관석 총무 타도전략’까지 짜게 했다. 

또한 KNCC실행위원회에 이 문제를 제소했는데, 이들이 주장하는 것은 BFW가 수도권에 지원한 돈은 청계천의 송정동 네 지역의 빈민선교를 위한 것이니, 그 4분의 1에 해당하는 돈을 활빈교회에 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행위원회의 조사결과, 선교자금은 특정지역을 대상하는 것이 아니므로 송정동 지역에 일정금액이 할당될 이유가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그러자 청계천 판자촌 주민들을 동원해 KNCC총무실로 몰려와 농성을 하고, 오물을 뿌리는 등 난동을 부린 것이다. 

4월 4일. 김관석 총무와 함께 연행된 KNCC 직원 이경배, 이창석 선생은 풀려났고, 우리는 서울시경에서 계속 철야조사를 받았다. 경찰은 우리에게 1년 동안 돈을 어떻게 썼는지 다 쓰라고 했다. 

조승혁 목사는 열심히 쓰고 있는데, 나는 쓸게 없어서 백지에다 ‘개새끼들’이라고 쓰고 그냥 앉아 있었다. 내가 앉아 있는 것을 본 경찰이 다가와 내 앞에 놓인 종이를 쓱 보더니 아무 말 없이 나가버렸다. 얼마 뒤 그 경찰이 다시 오더니 이제 됐다면서 내가 쓴 종이를 가지고 갔다. 그게 다였다. 조사도 받지 않았다. 

그런데 나중에 슬쩍 본 조서에는 예전에 내가 수도권 돈에서 구속된 자들을 위한 변호사비와 생활비를 대준 사실이 적시되어 있었다. 수도권 선교자금에는 그렇게 쓸 수 있는 명목이 있는데도 그것을 배임이라고 한 것이다. 나는 배임죄와 폭력죄가 같이 걸려 있었다. 폭력죄를 하나 더 하기 위해 일부러 정 목사를 병실에 보낸 것인지, 배임이라고는 할 수 없으니 폭력죄라도 만들어서 집어넣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1년간이나 감옥에 있었는데, 어디에 돈을 썼는지 어떻게 알겠는가. 수도권의 회계장부는 서울시경에도 없었다. 손학규 씨가 회계장부를 가지고 피신했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 조사는 경찰이 하지만, 이 사건을 기획하고 조정한 것은 중앙정보부가 분명했다. 없는 사건도 만들 때였다. 
 
당시 KNCC만큼 대정부 발언을 쏟아내는 곳이 없었다. 또 수도권이나 사선의 활동도 정부 눈 밖에 났을 것이 틀림없었다. 한국교회 사회 선교의 주요한 세 영역을 꼼짝 못하도록 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이들 단체의 탄압에 나서는 것은 역풍을 맞을 위험이 있었다. 그럴 때 좋은 구실이 돈 문제였다. 소위 선교자금사건은 이러한 토대위에 세워진 것이다. 
 
▲ 수도권 선교자금사건으로 3차 감옥 행 / 왼쪽부터 박형규, 김관석, 조승혁, 권호경

KNCC는 4월 5일 ‘선교자유수호 임시대책위원회’를 조직하고 박세경, 이세중, 이태영, 홍성우, 황인철 변호사로 변호인단을 꾸몄다. 

6월 10일 열린 첫 공판에 350여명의 방청객이 몰리자 법정안이 혼잡하다며 5분 만에 폐정했다. 선교자금사건에 대한 국내외의 관심을 보여주듯 이날 공판에는 함석헌, 현영학, 김정례 등 교회 관계자들과 외국인들 특히 BFW에서 공식 방청인으로 위임받은 나카다이라 켄키치 변호사가 참석했다. 

7월 5일 열린 3차 공판에서는 BFW의 아시아 담당 책임자인 슈미트목사가 증인으로 출석하여 BFW에서 KNCC를 통해 수도권에 보낸 돈을 수도권이 독자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결정적인 증언을 했다. 

변호사 : 프로젝트 설명서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일일지라도 목적에 부합하는 경우 그 일에 돈을 쓸 수 있는가? 
슈미트 : 그렇다. 
변호사 : 도시산업선교 실무자들이 훈련프로그램 또는 세미나 등에 지출한 돈을 피고인들의 횡령에 포함시키고 있는데 그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가?
슈미트 : 충분히 지출될 수 있는 일이다. 
변호사 : 수도권의 위원장인 박형규 목사, 실무자인 권호경 목사 등이 구속되었을 당시에 그들을 위해 지출한 돈이 자금 목적에 위반되는 것이라고 보는가? 
슈미트 : 위배되는 것은 아니다.
변호사 : 감옥에 갇혀 있는 이들을 위해 변호사를 선임하고 변호사비용을 그 자금 가운데서 지불한다면, 그러한 지불은 자금 목적에 합당한 것인가?
슈미트 : 그렇다. 
변호사 : 수도권 관계자들이 구속되어 있을 때 그들을 위해 돕는 일도 넓은 의미의 선교라고 보는가? 
슈미트 : 그렇다. 

-<1990년대 민주화 운동2(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604~605쪽)>

재판정에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왔다. 김관석 목사와 박형규 목사가 있으니 더 관심이 많을 듯했다. 방청객 중에는 서울시경 경찰, 치안본부나 중앙정보부, 보안사 관계자도 있었다. 
 
한번은 변호사가 정진영 목사를 증인으로 세웠다. 그리고 나에게 “정진영 목사에게 할 말이 없느냐?”라고 물었다. 그때 나는 정 목사에게 “정 목사님, KNCC 총무실에 판자촌 주민들을 몰고 가서 오물을 뿌리니까(중앙정보부쪽 사람들을 보면서) 남산 애들이 좋아합디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정 목사는 고개를 끄덕끄덕 했다. 말도 못하고 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 질문을 한 것이 참 후회스럽다. 내가 나빴다. 아마 정 목사는 그날 중앙정보부 기관원들에게 끌려가서 많이 당했을 것이다. 정 목사는 그들에게 맞아서 다리가 부러진 적도 있었다. 참 똑똑한 분인데, 어쩌다가 중앙정보부의 꾐에 넘어갔는지 슬프기만 하다. 

정 목사는 결국 노회재판에서 목사 제명처분을 받았다. 나는 정 목사를 제명시키는 것은 중앙정보부의 술수에 말려드는 것이라며, 당시 노회재판국장인 신촌교회 문 목사를 찾아가 여러 번 말렸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노회재판원들이 그렇게 결정했기 때문이다. 

결국 정 목사는 떠돌아다니며 어렵게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만약 지금처럼 내가 차분했다면 재판정에서 그렇게 망신당하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때 좀 이해시키고 설득하고 보호해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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