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하 선생과의 합방 생활 (42회...

안면마비로 병실방으로 이감

가족들이 보내온 편지로 마음을 다스리며 지내고 있던 어느날이었다. 운동시간이 되어 감방 복도를 나가는데, 김진홍 목사가 다가와서 나에게 백지를 주었다. 그러면서 갑자기 청계천 활빈교회 센터에 올 돈을 받아 썼다면 거기다 쓰라고 했다.

나는 그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밖에서는 난리가 났었다고 한다. 김진홍 목사가 있는 마을주민들이 김관석 총무에게 가서 청계천에 올 돈이 김관석 목사에게 갔다며 항의를 하고 소동을 피웠다는 것이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김진홍 목사를 면회온 사람이 그 사실을 알려준 모양이었다.

그런데 김진홍 목사가 교도소에서 백지를 갖고 있다는 것이 아무래도 수상했다. 그때는 수감자들이 그렇게 자유롭게 종이를 가지지 못할 때였다. 나는 ‘밖에 나가면 무슨 일이 있겠구나.’라는 예감이 들었다.

이후 나는 영등포교도소로 이감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안면이 마비되어 세수도, 양치질도 할 수 없게 되었다. 다행히 한의사와 양의사르 겸한 노인이 감옥 안에 있어 침을 맞을 수 있었다.

침은 아침 저녁으로 열여섯 번씩 맞았다. 몸이 불편해지자 교도소 측은 나를 병실방으로 옮겨주었다. 그 방에는 장준하 선생이 있었다. 장준하 선생은 긴급조치 1호로 1월 15일 구속되어 들어왔는데, 병이 있어 교도소 안에 있는 병동에 머무르고 있었다. 장준하 선생은 돌보는 수감자가 한명 있었는데, 내가 그 방으로 가자 그 사람은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그리하여 나는 장준하 선생과 한방에서 몇 달을 같이 지냈다.

나는 장준하 선생의 이름과 <사상계>를 발행한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몇 달을 같이 지내다보니 존경하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인품이 대단하다는 것이 느껴졌고, 쟈제력이랄까, 철저한 생활 태도를 늘 유지하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감옥 안에서도 시간을 함부로 쓰지 않았다.

어느 날 새벽인가는 끙끙거리는 소리에 잠이 깨보니 장준하 선생이 약을 먹기 위해 토마토주스 병을 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선생은 심장병이 있어서 니트로글리세린이라는약을 매일 밤 한 알씩 먹어야 했는데, 그 시간이 꼭 새벽 4시였다. 내가 일어나 따주려고 했지만 그는 끝까지 혼자 힘으로 열겠다고 고집했다.

또 감옥에 있는 사람들은 주로 속옷까지 집으로 보내는데, 장 선생은 속옷은 절대 보내지 않고 직접 빨아 입었다. 나도 그것을 배워서 그 뒤로는 속옷만큼은 내 손으로 직접 빨았다. 한번은 장 선생이 건강이 좋지 않으니 교도소 소장이 방에 난로를 놔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장 선생이 한사코 놓지 못하게 해서 결국 그 난로는 복도에 놓았다.

장 선생은 나를 보면서 늘 걱정을 했다. 목사가 말을 하고 살아야 하는데, 입이 삐뚤어졌으니 어쩌냐는 것이었다. 다행히 감옥에 들어온 의사 덕분에 침을 계속 맞을 수 있었고, 그것이 효과가 있었다.

내가 장준하 선생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1974년 12월 대법원에서 재판을 받기 위해 호송차량에 타고 있을 때였다. 장 선생이 나를 보고 손을 흔들었는데, 그것을 본 교도관이 창문을 열어주어 악수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듬해 8월에 산에 갔다가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나는 선생의 죽음이 영 석연치 않았다. 그렇게 생각한 것은 나만이 아니었다. 장준하 선생의 죽음은 아직까지 의문사로 냠겨 져 그 전말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

▲ 사상계 발행인 시절의 장준하 [출처 ; 장준하 기념사업회]

입원실에서 벌어진 폭력사건

나는 2.15조치로 1975년 2월 15일에 풀려났다. 그렇지만 마음은 무거웠다. 안양교도소에서 김진홍 목사가 백지를 내밀며 자기네 센터에 올 돈을 받아썼다면, 그 내용을 적어달라는 말이 내내 맴돌았다.

나는 청계천 지역주민들이 김관석 총무를 찾아가 방에 오물을 뿌리고, 출국을 방해했다는 소식을 교도소에서 들어서 알고 있었다. 아무래도 무슨 공작이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밖으로 나가도 곧 어떤 일에 휘말려 다시 수감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당시 나는 영 몸이 좋지 않았다. 척추 부분이 너무 아팠다. 전에 고문 받을 때 잘못 맞아서 삐끗한 후로 계속 통증이 있었다. 그래서 감옥에서 나온 후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했다. 옆방에는 박형규 목사가 함께 입원해 있었다.

병원에서는 척추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진단을 내렸다. 2월 20일, 나는 수술을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두고 고민하며 뒤척이고 있었다. 밤 10시가 좀 넘었을 무렵, 갑자기 병실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있던 병실은 10층 VIP실이라 면회가 제한되는 곳이었다. 이상한 기분이 들어 일어나보니 정진영 목사가 서 있었다.

정 목사는 청계천 주민들에게 KNCC 총무실에 오물을 뿌리라고 지시한 사람이었다. 그는 주민조직훈련 프로그램 1기 훈련생으로 나도 오래전부터 잘 알고 있었다.

정 목사는 우리 딸 아이 옷을 사가지고 왔다. 그런데 별 다른 말은 하지 않고 그냥 기분나쁘게 싱글대기만 했다. 그래서 내가 “혼자 오셨냐, 아니면 누구랑 같이 오셨냐?”라고 물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끄덕 하면서 같이 온 사람이 밖에 있다는 손짓을 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의자 팔걸이에 놓여 있는 내 손을 밟고 짓이기는 게 아닌가.

내가 같이 온 사람이 있느냐고 물어서 기분이 상한 모양이었다. 안 그래도 기분이 나빴는데 갑작스럽게 공격을 해오니 나도 모르게 주먹이 날아갔다. 나는 쓰러진 정 목사를 또 때렸다.

우리 방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나자 옆방에서 사람들이 뛰어들어 왔다. 뱍형규 목사를 면회온 사람들이었다. 사람들이 우루루 달려들어 뜯어말리느라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보니까 정 목사가 술을 마신 것 같았다. 밖에서 정 목사를 기다리는 기관원들이 그를 병실에 올려보내면서 술을 먹여 보낸 듯해했다.

정 목사가 사람들에게 끌려 나간 뒤 조금 있으니 전화가 왔다. 병원 당직 의사였는데, 그는 “방금 목사님 병실에서 나온 사람이 진단서를 끊어달라고 하는데 진단서를 끊을 정도는 아니어서 안 된다고 했습니다.”라고 일러주었다.

다음 날에도 이대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그 의사도 “진단서를 끊을 정도가 아니라고 하자 목사님 이름을 댑디다. 우리 병원에서는 끊어주지 않았는데, 제 생각에는 청량리경찰서 공의한테 갈 것 같습니다.”라고 했다.

‘아이고, 폭행으로 들어가겠구나.’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이 되자 서대문경찰서에서 나를 찾아왔다. 수술하기 싫었는데 잘됐다 생각하여 경찰을 따라나섰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정 목사는 용두동에 있는 경찰서 공의를 찾아가 진단서를 끊고 그 병원에 입원을 했다고 한다.

이후 청량리경찰서장이 입원해있는 정 목사를 문병 갔으며, 시경 공보계장은 ‘목사가 사람 때렸다.’라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만들어 언론사에 뿌렸다. 덕분에 나는 1975년 2월 24일 자 <동아일보> “휴지통” 난에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2.15조치로 풀려난 권호경 서울제일교회 목사, 이규상 전도사 등 교역자 5명을 상대로 경찰에 폭행혐의로 고소를 한 청계천교회 정진영 목사는 고소 후 만 하루가 지난 21밤 10시경에야 동대문구 용두동 성인외과에 입원했는데, 병원 측이 떼어준 진단서는 ‘2~3주’라고 치유기간이 보기 드문 방식으로 표기돼 있고, 22일 낮에는 안태하 청량리경찰서장이 정 목사가 입원해있는 병실을 찾아 문병하는 친절을 보였는가 하면, 24일 시경은 폭력사건인 이 사건의 전모를 프린트한 것을 공보계장을 통해 기자들에게 알리게 하는 등 이례적인 움직임이 속출했다.

서대문경찰서에서 조서를 꾸미는데 경찰이 “같이 싸우고 그쪽에서 먼저 시비를 걸었으니 맞고소를 하세요.”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에이, 여보시오.”라고 하며 쳐다봤더니 겸연쩍었는지 말문을 닫았다.

그 일로 경찰서 유치장에서 일주일 정도 있었는데, 하루는 공덕귀 여사가 나를 면회하러 왔다. 별다른 기색을 느낄 수 없었으나 다음날 아침 일찍 나는 석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