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과 조작 (37회)
  제7장 유신체제에 반기를 들다1

검찰이 이와 같은 내용으로 공소장을 작성할 수 있도록 수사관은 며칠 동안 나를 때리고, 무릎을 꿇리고, 발로 찼다. 이때 머리를 잘못 맞아서 뇌출혈이 생겼는지 밖으로 피는 나지 않는데 몸이 마비되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다행히 마비는 풀렸으나 이번에는 척추로 엄청난 고통이 밀려들었다. 

하지만 내 상태가 그러거나 말거나 수사관들은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전기고문을 하기 시작했다. 전기고문은 내가 받은 고문 중에서 가장 악랄한 것이었다. 

전기고문을 받는 동안 나는 온몸이 쪼개질 듯 하다가도 심장이 붕 뜨는 것처럼 느껴졌다. 눈앞에 보이는 것이 무엇인지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정신 줄을 놓기 일쑤였다. 깨고보면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른 채 멍하니 널브러져 있었다. 이러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수사관들은 전기고문을 하다가 “박형규 목사도 그렇다고 했으니 그렇게 쓰라”라고 윽박질렀다. 

박형규 목사에게는 우리가 고문을 받으며 고통에 찬 신음소리를 내는 것을 들려주면서 협박을 했다고 한다. 

그렇게 며칠 동안 맞고, 고문당하고, 진술서를 쓰라고 강요받는 시간이 흘렀다. 어느 날은 나를 또 어디론가 데리고 갔는데, 처음에는 온통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한참 지나고 나서야 그곳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사방이 모두 붉은색으로 칠해진 방이었다. 

방 한가운데에는 의자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잠시 뒤에 불빛이 번쩍여서 그곳을 쳐다보니 거기에는 ‘평양’이라는 글자가 쓰여져 있었다.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멍한 눈으로 벽을 바라보고 있는 나에게 수사관이 소리쳤다. 

“야, 이 새끼야, 이 의자에 앉을래, 아니면 사실대로 불래?” 
그러자 다른 수사관이 나지막이 말했다. 
“저 의자에 앉으면, 그리고 이 단추를 누르면 너는 즉시 한강으로 빠진다. 그러면 쥐도 새도 모르는 거야. 너 같은 거나 아무로 모르게 처리할 수 있어.”
“.......”
“어떻게 할래? 저 의자에 앉을래, 아니면 다시 가서 사실대로 고백할래?”

그들은 “여기서는 다 굴복했다. 백기완도, 김상현도 여기선 다 불었다.”라며 겁을 주었다. 그러고는 자기들끼리 내가 들릴 정도로 “장준하는 무서운 놈이야. 여기에서 끄떡도 하지 않았잖아.”라고 말했다.

나는 사실대로 다 불겠다고 했다. 그래서 취조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들은 또 다시 내란음모에 대한 내용을 집요하게 캐묻기 시작했다. 나는 무서워서 “사실대로 고백하겠습니다.”라고 하고는 곧바로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발로 차고 때리고 하다가 이번에는 강제로 옷을 벗겼다. 

한 수사관이 벌벌 떨고 있는 나에게 “권호경이, 너 새끼가 몇이야?”라고 물었다. 그러면서 남자의 중요 부위에 전기고문을 하면 더 이상 생산도 못한다면서 비아냥거렸다. 그러고는 한참 후에 “이 새끼는 새끼가 둘이나 있으니 뭐........”하면서 나가버렸다. 그러자 다른 수사관이 말했다. 

“이제 너는 우리 손에서 떠난다. 그렇지만 여기에 써진대로 고백하지 않으면 다시 이곳에 올 줄 알아라. 잘해라.”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제 검사에게 넘어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정이 넘은 시간에 그들은 내 눈을 가리고 이촌동에 있는 뉴용산호텔 꼭대기 층으로 데리고 갔다. (물론 이 장소는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곳에 한동안 나를 가만히 놔두더니 다시 대공분실 취조실로 데려왔다. 그리고 새벽 2시경에 다시 그 호텔로 데리고 갔다. 그것은 하나의 위협이었다. 검사에게 조사를 받기 전에 두려움을 주려는 의도였다. 

호텔로 들어가니 거기에는 손에 털이 숭숭 난 사람이 얼굴이 빨개진 채로 신문을 보고 있었다. 술에 취한 것 같았다. 그 검사는 런닝셔츠 차림으로 나를 취조하기 시작했다. 나를 고문하던 수사관은 옆방에 대기하고 있었다. 

나는 처음에는 아니라고 부정했지만 더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결국 포기하고 그냥 하라는 대로 해주고 나와 버렸다. 오랜 조사 끝에 나와 박형규 목사, 남삼우, 이종란 4명이 구속되고, 나머지 11명은 즉심에 회부되었다. 
 
▲ 남산부활절연합예배사건의 박형규 목사, 권호경 목사, 남삼우, 이종란 씨 구속기사
 
날이 밝자 나는 서울교도소로 이송되었다. 내가 간 곳은 0.7평의 독방이었는데, 그곳이 마치 천국처럼 느껴졌다. 감방 안에는 소위 ‘뺑끼통’이라는 화장실을 제외하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화장실에서 나는 냄새가 역겨웠으나 곧 쓰러져 잠에 빠져들었다. 

얼마 후 잠에서 깬 나는 흐릿한 눈으로 좁은 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뜻 모를 낙서가 적혀 있었다. 낙서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힘없이 벽에 붙어 있는 모기를 발견하였다. 그날부터 모기와 파리는 내 친구가 되었다. 나는 모기에게 말을 걸기도 하고, 날아다니는 것을 구경하기도 하였다. 

며칠이 지나자 정신이 좀 돌아오는 것 같았다. 나는 일어나서 주는 밥 먹고, 주는 물마시고, 자라면 잤다. 정말 그곳이 천국 같았다면 믿을 수 있을까. 하지만 지칠 대로 지친 나에게 그곳은 천국이었다. 

며칠이 지나서 검찰조사를 받으러 갔다. 조사실에는 며칠 전 서빙고호텔에서 새벽 2시에 만난 사람이 딱 버티고 앉아 있었다. 문호철 검사였다. 안면이 있는 최명부 검사도 보였다. 그는 당시 공안검사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나는 이때다 싶어 마음을 굳게 가다듬고 심호흡을 했다. 

“지난번 나한테 조사받은 대로 맞지요?”
“나는 대한민국 검사에게 조사를 받은 적이 없습니다.”
“모월 모시에 나한테 조사 받았잖아요?”

문 검사가 큰 소리를 쳤다. 나는 이때다 싶어 목소리를 깔고 말했다. 

“나는 검사 조사를 받은 일은 없고요. 언제인가 깡패 같은 사람이 런닝바람에 술에 취해 있는 것은 봤습니다. 정상적인 사람은 아닌 것 같았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합디다. 바로 옆에 나를 고문한 수사관이 있어서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말았는데, 오늘은 검찰 조사를 받는다 길래 나온 겁니다.”

그러나 문 검사는 “오늘은 그냥 돌아가시오. 다시 봅시다.”라고 하면서 그냥 보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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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찰조사와 재판 (3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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