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도시선교위원회 조직 (27회)
  제6장 도시빈민은 교회가 있어야 할 자리

가난의 고통에서 신음하는 사람들, 생존의 비탈길에서 비틀거리는 사람들, 그 곁에는 반드시 하나님이 계신다. 우리는 그것을 믿었다. 교회의 자리가 어디여야 하는가. 예수의 제자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우리는 묻지 않았다. 너무나도 확실히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 편에 섰다. 

가난한 사람들은 날로 증가하고 점점 더 살기 어려워지는데도 정부당국은 제대로 된 대책을 세우지 않은 채 그들의 요구와 권리를 무시하고 묵살했다. 그런 와중에 와우아파트가 무너지고 서울시청 광장과 광주 대단지 시위를 겪으면서 도시빈민 문제가 사회적으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정부당국은 정권유지 차원에서 각종 조치와 새로운 법으로 빈민들을 억압했다. 빈민들은 기본적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싸워야했다. 이처럼 빈민 문제가 정부와 대결양상을 보이면서 연세대 도시문제연구소 산하의 도시선교위원회로는 제대로 활동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대학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조민조직을 통한 선교운동을 한다는 명목 하에 조직운동가를 빈민현장에 투입하여 훈련시키는 일은 많은 한계를 드러냈다. 따라서 좀 더 활동적이고 강화된 빈민조직이 필요했다. 

박형규 목사는 이러한 생각을 진즉부터 하고 있었다. 시민아파트주민들이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시위를 벌일 때 시위현장을 찾은 박 목사는 그 현장을 보며 빈민선교의 모체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더욱 절실히 하게 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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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권도시선교위원회 사무실이 있던 청계천의 모습

1971년 8월 인사권도 없는 설교목사인 박 목사가 나를 서울제일교회 전도사로 불렀다. 그것은 나를 수도권의 주무간사로 세우기 위한 밑그림이었다. 

1971년 9월 1일 수도권은 서울 종로 2가에 있는 대한성서공회 501호실에서 공식 출범했다. 위원장은 박형규 목사가, 부위원장은 김동수 목사가 맡았다. 총무는 조승혁 목사, 나는 주무간사를 맡았다. 위원은 김정국(예장), 도건일(감리교), 박봉배(감신대 교수), 신익호(기장), 이성걸(예장), 임인봉(루터교), 최종철(감리교), 한철하(총신대 교수), 현영학(이대 교수) 등 총 9명이었다. 

수도권은 선교의 영역이 확장되면서 1973년 수도권특수지역선교위원회, 1976년 한국특수지역선교위원회로 명칭이 바뀌었지만 사람들은 주로 ‘수도권’이라고 불렀다. 

수도권의 결성동기와 목적은 다음과 같다. 
 
급격한 산업화에 의한 서울의 이상 비대화는 국가적 문제이다. 조국 근대화, 공업입국 등의 구호아래 진행되어온 서울의 도시화 계획은 고층빌딩과 고가도로를 세웠을 뿐만 아니라 가난한 시민들의 보금자리를 파괴했고 생계수단을 빼앗았다. 

인간다운 삶을 누릴 권리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이 인위적으로 제도적인 불의로 인하여 위협받거나 억압받는 경우에 교회는 눌린 자를 억압해서 해방하고 모순적인 제도를 바로잡기 위해 사회적 책임을 수행해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엄숙한 명령이다. 눌린 자의 해방을 위한 교회의 모든 행위는 신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진정한 신앙고백이자 그리스도인의 사랑의 참된 표현이다. 

우리는 이러한 입장에서 이 나라의 아픔을 상징하는 소외지역 중 판자촌 지역을 선교의 현장으로 선택하고, 빈민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지향하는 선교활동을 펴기 위해 1971년 9월 1일 수도권도시선교위원회를 조직하게 되었다. 

종래의 자선적 구호활동이나 사회사업가들을 위한 하향적 지역사회 개발은 주민들을 의존적으로 만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러한 방법들은 주민이 자주적 삶을 사는 해방된 인간으로 성장하는 것을 오히려 저해했다. 

그래서 우리는 주민들 스스로의 자각과 단결의 힘에 의해서 자주적으로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하도록 도울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우리는 주민 자신의 자주적인 문제해결만이 찬다운 해방과 구원을 이룰 것이라고 믿으며 수도권도시선교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수도권도시선교위원회는, 
1. 현실분석과 철저한 시민의식 훈련을 통하여 주민의 통찰력을 개발하고, 그들이 자신의 문제와 이익에 민감하게 만든다. 

2. 주민들로 하여금 금력과 권력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은 오직 조직을 통해서만 나온다는 확신을 갖게 한다. 

수도권도시선교위원회는 주민들로 하여금 “우리도 하나님의 백성이다.” “우리도 하나님이 주신 이 땅의 주인이다.” “우리도 새역사와 새 문화를 창조할 수 있다.”라는 긍지와 “세상을 사랑하고 이웃과 더불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나라를 건설하겠다.”라는 의지를 가지게 할 것이다. 수도권도시선교위원회를 통해서 가난하고 소외된 백상도 하나님의 해방사업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우리는 확신한다.

수도권은 몇 달간의 준비 끝에 각 지역의 선교실무자를 선정하였다. 나는 광주대단지를 맡았고, 남대문시장은 김동완, 송정동 뚝방 지역은 김진홍, 도봉동은 이규상, 인천 화수동은 전용환, 신정동은 김혜경이 맡게 되었다. 

남대문 시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판자촌 지역이거나 판자촌 주민들이 정부의 철거정책에 의해 이주한 지역이었다. 남대문 역시 판자촌 지역과 인접해 있는, 도시 빈민들의 일터였다. 우리는 주민들의 기본적인 요구가 무엇인지 안ㄹ아내는 것으로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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