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우아파트 붕괴 후 자치운영연합회 조직 (22회)
  제5장 주민조직운동과 도시선교

나는 와우아파트가 무너졌다는 소식을 듣고 곧장 현장으로 달려갔다. 3기 훈련생 모두 현장으로 모여들었다. 아파트가 무너진 현장은 그야말로 처참했다. 철근은 힘없이 휘어져 있었고, 무너진 건물 잔해는 조각나고 부서져 밑으로 쏟아져 내려와 있었다. 

그동안 각각 금화, 연희, 낙산아파트에서 생활하던 우리 훈련생들은 시민아파트의 부실한 모습을 자주 목격했고, 주민들에게 그러한 상황을 알리는 중이었다. 또한 서울시의 책임에 대해서도 주민들에게 상기시키고 있었다. 벽에 금이 가고 배수가 제대로 되지 않았으며, 화재에 취약한데다가 소방차가 접근하기 어려울 정도로 길이 좁아진 것 등 시민아파트의 문제점은 우리가 훈련받고 있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발생했다.

와우아파트가 무너진 현장을 다녀온 그날 아침, 우리 3기 훈련생들도 지도 간사들은 급히 도시문제연구소에 모였다. 우리는 이 사건이 주민조직화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 그리고 면밀하게 조직화 계획을 세웠다. 

이 계획에 따라 우리는 훈련 중인 아파트로 돌아가서 “와우아파트가 무너진 것을 봐라. 우리 아파트도 부실하게 지어졌다는 게 눈에 보이는데, 이대로 두고 볼 수는 없지 않느냐. 시민아파트를 새로 지어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여론을 형성하기 위해 노력했다. 와우아파트가 무너진 사진과 그 사실을 보도한 신문을 주민들에게 돌리기도 했다. 그리고 각 지역에서 50여명의 주민들을 선정해서 와우아파트가 무너진 현장에 데려가기도 했다. 그들이 직접 분노와 공포를 느끼도록 한 것이다. 

나는 전용환과 함께 시민아파트 문제의 심각성을 느낀 주민들을 가능한 한 많이 모아서 이 시실을 알렸다. 와우아파트 사건이 일어난 지 이틀만이었다. 또한 그동안 눈여겨보고 있던 잠재적인 지도자들을 모아서 모임을 준비했다. 

정부도 시민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대처 방안으로 동사무소 같은 공적인 통로를 통한 주민모임을 준비했다. 금화아파트에 사는 대다수 주민은 우리가 조직한 모임으로 모여들었다. 다만 34동 동장을 포함한 주민 3명은 주민이 조직한 모임에 참여해 달라는 요청에도 불구하고 동사무소 주민 모임에 갔다. 그러자 40여명의 주민이 모임을 갖고 동장 불신임안을 통과시켰다. 

나는 주민들에게 아파트를 제대로 고쳐달라고 정부에게 요구하기 위해 주민조직을 만들어 행동해야 한다고 강하게 피력했다. 주민들도 자신들의 문제이기에 그 의견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다른 지역의 훈련생들도 주민모임을 조직했다. 이렇게 각 시민아파트에서 조직된 주민지도자들의 모임이 4월 11일, 한 중국집에서 열렸다. 모인 인원은 10명쯤 되었다. 회의 끝에 서울시민아파트 자치운영연합회(이하 자치운영연합회)준비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다. 

이후 2개 지역에서 주민지도자가 더 참석해 총 15명이 모여 준비위원회를 구성했다. 준비위원회에서는 일곱 차례의 회의를 통해 두 가지 행사를 계획했다. 사고의 희생자들을 가리고 남은 건물들의 안전을 기원하는 예배와 자치운영연합회 창립총회가 그것이었다. 

4월 22일 오후 3시. 준비위원회 위원들과 다른 지역에서 온 주민 지도자 35명이 와우아파트 현장에 모였다. 우리는 그곳에서 사고로 희생당한 사람들의 명복을 빌고, 나머지 공사의 안전한 진행을 기원하는 산신제를 지냈다. 이날 모인 주민대표들은 자치운영연합회 발기위원회를 열고, 4월 29일 기독교회관에서 창립총회를 갖기로 결정했다. 
 
▲ 붕괴된 와우아파트 모습 [출처 ; 서울시청]

창립총회를 알리는 전단이 각 시민아파트로 발송되었다. 그러자 서울시와 경찰, 정보당국 등의 도시문제연구소에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정부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듬해인 4월에 대통령 선거가 있고, 5월에는 국회의원 선거가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경찰은 도시문제연구소에 집회허가 취소를 통보하고 주민들에게 집회에 참석하지 말 것을 종용했다. 경찰의 방해가 너무 심해서 창립총회 당일까지 모임장소를 확정하지 못할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월 29일 오후 7시 301분, 21개 시민아파트지역을 대표하는 240명의 주민대표가 모였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모인 사람 중 경찰이 100명은 되어 보였다. 경찰이 사복을 입고 참석한 것이었다. 

임시의장이 개회를 선언하자 사복경찰들은 온갖 방법을 동원해 모임을 방해하려고 했다. 이들은 마이크를 가로채고 연설을 하면서 참석자들의 분열을 꾀하기도 하고, 심지어 참석자들을 내쫓으려고도 했다. 하지만 창립총회는 계획대로 진행되었다. 

이날 금화아파트 대표자인 진산전 씨가 회장으로 선출되고, 다른 시민아파트 4개 지역 대표자들이 각각 부회장으로 선출되었다. 참석자들은 결의문을 채택하고, 만세삼창으로 창립총회를 마쳤다. 이로써 시민아파트 319동 1만 2,547세대 6만 2,735명을 대표하는 자치운영연합회가 조직되었다. 자치운영연합회의 목적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 시민아파트 입주자의 권익을 지키고 안전보장을 강화한다. 둘째, 지역사회개발을 통한 복지향상을 추진한다. 셋째, 회원 상호 간의 친목과 공동번영을 지향한다. 

주민 대표들은 결의문에서 밝힌 것과 같이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데 동의했다. 임원들은 심지어 경찰에게 미행당하는 한이 있어도, 주민들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기로 했다. 처음 몇 달 간 이 조직은 450여명의 주민들을 모아 네 번의 시위를 진행했으며, 책임자들에게 8가지 경우의 지연될 설비에 대한 탄원을 내기도 했다. 그 결과 정부로부터 일련의 양보를 얻어내는데 성공했다. 

그리하여 200여명의 전문가들이 건물의 안전조사를 실시하는 법안이 발효되었다. 법안에는 조사과정에서 선출된 주민대표들이 동행해야 한다는 점과, 이 대표들이 하자보수가 이루어지는 것을 지켜볼 책임을 가진다는 내용이 자세하게 명시되었다. 몇몇 아파트단지에서는 단지 입구의 길을 포장해 소방차와 다른 편의를 위한 차량이 들어올 수 있도록 했다. 

나는 이와 같은 주민조직화과정을 지켜보면서 우리가 훈련에 임하는 의미를 다시 한 번 정리할 수 있었다. 먼저 그동안 정부의 억압적인 정책에 대해 우리나라 사람들이 대응하는 방식에서 용기가 부족해보였던 것은 많은 부분 지식인들의 소심함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달았다. 

사람들이 원래 용기가 부족해서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지 못한다고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것은 그들이 오랫동안 억압적인 사회구조 아래에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들의 권리와 신념을 포기하는 것을 당연시해온 것이다. 그렇지만 그 문제가 자신들의 먹고사는 문제와 직접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사람들은 스스로 일어선다. 

그것은 자치운영위원회 총회에서 사복경찰들의 집요한 방해에도 불구하고 임원을 스스로 선출하고 결의를 다진 것에서도 분명히 드러났다. 
 
나는 주민조직가가 정부와 주민사이에서 모든 사안에 대해 타협적인 감정을 갖도록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서로의 이해관계가 상호적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정부와 주민의 공통적인 목표가 주민조직운동을 통해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이해시키지 못한다면 조직은 별 의미가 없게 될 것이다. 

나는 현명한 주민조직가라면 정부와 주민들의 갈등에서 공동의 목표가 무엇인가를 정확히 진단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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