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도시문제연구소 (19회)
  제5장 주민조직운동과 도시선교

연세대 도시문제연구소 도시선교위원회 3기 훈련생

1950년대 말 고향에서 서울로 올라온 내가 처음 살았던 곳은 삼각지이다. 삼각지 일대는 판자촌이었는데, 서울에는 많은 사람이 판자촌에 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울에서 판자촌이 늘어나게 된 것은 박정희 정부의 경제개발5개년계획 등에 따른 것이었다. 박정희 정부가 내세운 장밋빛 미래는 저곡가에 시달리던 농민들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집단 이주하는 현상을 낳았다. 

1988년 <수도권도시선교위원회연구자료>에 따르면 1960년도에 244만 5,402명이던 수도권 인구가 1970년이 되면서 553만 6,377명으로 대폭 증가했다. 충분한 국토개발계획과 합리적인 도시계획이 세워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발표한 정책으로 인해 농촌에서 대량으로 이주해온 사람들은 당장 거처할 곳이 없어 우후죽순으로 판잣집을 짓고 살게 된 것이다. 

신학교를 가야겠다는 일념으로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와서인지 나는 판자촌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관심이 갔다. 나또한 그들처럼 판자촌에 살면서 가난과 배고픔을 절실하게 경험했기에 내가 가야할 목회현장은 판자촌이라고 생각했다. 

한신대를 졸업할 무렵 판자촌에 관심이 많은 나에게 정하은 교수는 박형규 목사를 찾아가 보라고 했다. 당시 연세대도시문제연구소 산하에 있는 도시선교위원회의 위원장이었던 박형규 목사는 훈련을 받고 싶다고 찾아온 나를 무척 반겨주었다. 

도시선교위원회에서는 이미 훈련생을 배출하고 있었다. 나는 1970년 1월부터 훈련생 3기로 주민조직훈련에 참여했다. 연세대 도시문제연구소는 미국연합장로교회 조지 타드(Jeorge Todd) 목사의 지원으로 만들어졌다. 타드 목사와 도시선교위원회의 박형규 목사의 연결고리는 오재식 선생이었다. 그의 회고록을 보면 연세대 도시문제연구소가 만들어진 과정과 도시선교위원회를 산하 조직으로 둔 이유와 경위를 알수 있다. 
 
▲ Dr George Edward Todd 목사 [출처 ;  WCC]
 
1968년초 미국 장로교 사회선교 책임자였던 조지 타드 목사에게서 편지가 왔다. 조지 타드 목사가 보내온 편지는 한국에서 CO(Community Organization)를 하면 어떻겠느냐는 것이었다. 즉 도시빈민을 위한 선교조직을 만들자는 것이다. 

나는 당장에 답장을 보내면서 “좋다. 어떻게 하면 좋은가?” 하며 구체적으로 물었다. 조지 타드는 이 일을 위해 내가 나서주기를 바랐다. 그의 계획으로는 우선 한국에 도시빈민선교회를 위한 훈련원을 만들기 위해 도와줄 사람을 보내 줄 예정인데, 그 사람을 받을 인프라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즈음 조지 타드는 연세대학교 노정현 교수를 만난 모양이다. 노 교수는 새문안교회를 다녔는데, 예장 교단과 관련하여 알고 지내던 조지 타드를 찾아가 학교에 연구실을 만들고 싶으니 지원을 좀 해달라고 요청했다. 

조지 타드는 한국에 CO를 위한 조직을 따로 만들면 내용이 너무 과격할 수 있고 그 때문에 너무 빨리 조직이 노출되면 한국 군사정권의 압력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래서 고심 중이었는데, 노 교수의 제안을 받고 나자 이 연구소를 활용하면 되겠다고 머리를 굴렸다는 것이다. 내가 좋은 아이디어라고 하자, 그는 내가 반대할까봐 걱정이었는데, 다행이라며 일을 진행시켜나갔다. 
 
활동이 시작되고 난 뒤로 더 많은 지원금이 왔지만 처음엔 3만 달러를 조지 타드가 지원해주어 연세대에 도시문제연구소가 만들어졌다. 연구소 산하에 연구위원회와 도시선교위원회를 두었다. 연구위원회는 노정현 교수가 맡았고, 도시선교위원회는 우리가 맡았다. 도시선교위원장으로 박형규 목사가 결정되었다. 

도시문제연구소가 자리를 잡은 뒤 나는 조지 타드에게 인프라가 만들어졌다는 연락을 보냈다. 그가 보낸 사람은 할버트 화이트(Halbert White)였다. 화이트는 부인과 같이 한국으로 들어왔는데, 화이트 역시 알린스키의 제자였다. 그는 조직 활동가로 활약이 대단했는데, 조지 타드가 믿고 사업을 맡길만한 사람이었다. 

- <오재식 회고록 -나에게 꽃으로 다가오는 현장> (대한기독교서회, 129쪽)


알린스키의 주민조직 방법론을 토대로 한 훈련방식

도시선교위원회는 선발된 훈련생들에게 도시 문제에 참여하고 변혁을 이루기 위해  주민을 조직하는 데 관련한 것들을 소개하기 위해 행동훈련프로그램(Action Training Program)을 시작하였다. 훈련을 담당한 화이트목사는 주민조직운동의 선구자인 솔 알린스키(Saul D. Alinsky)에게 훈련을 받은 사람이었다. 

훈련은 화이트 목사가 주민조직에 대해 강의를 하는 게 아니라 훈련생이 판자촌에 들어가 살 방을 구하는 과정에서 훈련생은 주민들과 자연스럽게 접촉하면서 그 지역의 문제점을 파악할 수 있었다. 

방을 구한 이후 훈련생은 본격적으로 그 지역에 대한 탐색에 들어가는데, 그 지역의 지리뿐만 아니라 상점이 몇 개인지, 주거공간이 어떠한지, 어떤 시설들이 있는지 등을 발품을 팔아가며 꼼꼼이 메모했다. 자신이 맡은 지역은 언제라도 지도를 그릴 수 있을 정도로 머릿속에 각인했다. 지역에서 필요한 일이 무엇이고, 어떤 문제점이 있는가 하는 문제는 주로 판자촌 주민들을 만나면서 알아냈다. 주민들과 자주 만나 대화하면서 자연스럽게 신뢰도 쌓였다. 

그러면서 주민지도자로 세울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파악하였다. 주민지도자를 세우는 일은 매우 중요했다. 이 일에 실패할 경우 주민조직화도 실패하기 십상이었다. 주민지도자는 지역주민들을 스스럼없이 만날 수 있는 사람인 동시에 지역문제의 해결방안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이어야 했다. 주민조직가는 그런 판단 아래 주민들을 만나고 조직하여 스스로 문제해결을 위한 행동에 나서도록 해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주민조직가는 주민지도자가 해야 할일을 대신 하지 말아야 했다. 주민들이 조직가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힘을 길러서 조직하고 행동해야만 주민조직이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훈련생들이 받은 이와 같은 훈련방식은 알린스키의 주민조직 방법론에 근거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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