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적인 만남, 서울 제일교회 (13회)
  제4장 목회를 시작하다

비록 새밭교회를 떠났지만 나는 더 큰 공간의 교회에 있는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나의 시선이 사회복지 선교에서 주민조직을 통한 선교로 향하면서 내가 설 교회는 무형의 공간으로 확대되었다. 나무를 보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 시대를 관통하는 역사의 시간들이 나로 하여금 숲을 보게 만들었다. 

새밭교회를 그만둔 뒤 한두 달 정도 쉬면서 나는 그동안의 활동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던 차에 박형규 목사가 설교하고 있는 서울제일교회로 예배를 드리러 갔다. 

그 무렵 박형규 목사가 기독교방송(CBS)상무 자리를 본의 아니게 그만두었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박정희 정권의 중앙정보부가 지속적으로 박 목사가 사직하도록 주변에 압력을 가했기 때문이다. 주민조직훈련을 받는 동안 나는 도시문제연구소 도시선교위원장인 박형규 목사를 가끔 볼 수 있었다. 

원래는 조용히 예배에 참석하고 간단히 인사만 드리려고 했는데, 박형규 목사가 나를 보자마자 점심이나 같이 하자면서 앞장을 섰다. 도착한 곳은 냉면집이었다. 식사를 하는 동안 별말이 없던 박 목사는 젓가락을 놓자마자 “새밭교회 전도사는 그만두었으니 이제 서울제일교회 전도사를 하자”라고 말했다. 나는 갑작스런 제안에 머뭇거렸다. 인사권도 없는 상황에서 그런 제안을 하니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박형규 목사는 서울제일교회의 설교목사였다. 1970년 3월, 서울제일교회를 세운 이기병 목사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교회는 박형규 목사에게 무보수로 주일설교를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교회의 재정이 어려워 담임목사를 초빙할 형편이 못되었기 때문이다. 임시 당회장은 조향록 목사가 맡고 있었다. 

박 목사는 나의 반응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주일학교를 맡으라고 했다. 그래서 “능력이 없어서 주일학교는 못합니다.”라고 하니 “그래? 그럼 앉아만 있어.”하고는 빙그레 웃으셨다. 나는 대답할 말이 선뜻 생각나지 않아 그냥 얼버무리고 말았다. 
 
▲ 서울제일교회 '형제의 집' 대학생들 (윗줄 오른쪽부터 권호경, 이창식 등)

그 다음 주일에 나는 또 다시 서울교회를 찾아갔다. 냉면집에서 그렇게 결론도 없이 끝났으니 무슨 일인지 다시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박 목사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교를 끝낸 박 목사가 갑자기 나에게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했다. 무슨 영문인지 싶어 일어났더니 전 교인 앞에서 나를 새로 온 전도사라고 소개하는 게 아닌가. 

그때가 1971년 8월이었다. 당회나 재직회를 거치는 절차도 없이 발표를 해버린 것이다. 나중에 사례비를 지급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자, 박 목사는 그제야 나를 전도사로 임명하는 절차를 밟았다. 

박형규 목사가 나를 왜 그렇게 급히 서울제일교회로 불렀는지에 대한 의구심은 얼마 지나지 않아 풀렸다. 박 목사는 1970년 11월 13일에 일어난 전태일 분신사건에 충격을 받은 데다 도시빈민선교와 주민조직운동에 대한 확신이 강해져 그 일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자 한 것이다. 그래서 도시선교위원회를 재정비하여 1971년 9월 1일 새로운 조직인 ‘수도권도시선교위원회(Seoul Metropolitan Community Organization, 이하 수도권)을 발족시켰다. 

한편 전태일이 일하던 청계천 평화시장은 서울제일교회와 멀지 않을 곳에 있었고, 교회 주변에 중부시장이 있어서 피복노조 사람들이 많았다. 박 목사는 그들을 위해 교회에서 노동자를 위한 선교 프로그램을 하고 싶어 했다. 노동자들을 위한 ‘형제의 집’은 그런 토대에서 시작되었다. 

박 목사는 내게 수도권의 주무간사 자리를 맡기면서 사례비는 전도사 명목으로 교회에서 받게 했다. 서울제일교회에는 수도권 사무실뿐만 아니라 한국교회사회선교협의회(이하 사선) 사무실도 있었다. 두 단체는 사무실을 함께 사용했다. 그리하여 나는 시선이 조직될 때 심부름을 하면서 간사 노릇을 하기도 했다. 

수도권의 주무간사인 나와 사선의 총무인 조승혁 목사, 그리고 직원인 이미경(전 국회의원, 현 한국국제협력단 이사장) 씨가 한 사무실에서 일했다. 나는 그곳에서 일하는 동안 필리핀의 주민조직훈련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톤도에 다녀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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