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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봉장학회 창립 발기문 -
인류의 찬란한 역사를 오늘로 이끌어온 위대한 수레꾼은 그 인류를 가르쳐온 교육이다. 그러므로 일찍이 맹자도 천하의 영재를 얻어 이를 가르치는 것이 인생삼락(人生三樂) 중의 하나라고 했다.
진실로 교육이 없으면 정치가는 거짓말쟁이가 되고, 기업가는 귀머거리가 되고, 철학가는 절름발이가 되고, 종교가는 벙어리가 되고, 예술가는 장님이 되고, 노동자는 곰배팔이가 되고 만다. 이러기에 씻은 듯이 가난해도 진(陳)나라 차윤(車胤)은 반딧불로 책을 읽고 손강(孫康)은 눈빛으로 책을 밝혀 읽었으며, 김일손(金馹孫)이 한퇴지(韓退之)의 문장을 백번이나 읽었고, 나폴레옹도 진중(陣中)에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탐독했다.
그렇다!
거문고를 퉁기는 소리가 비록 좋다 해도, 자손들이 책 읽는 청아한 소리와 같지 못하고, 용이 여의주를 얻었다 해도 승천하지 못할 때는 그 여의주가 한갓 와륵과 다를 바 없다. 두말할 것도 없이 솔로몬의 영화도, 진시황의 아방궁(阿房宮)도, 석숭(石崇)의 주지육림(酒池肉林)도 한때의 부운(浮雲)인 것은 그것들이 학문을 이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교육의 엄숙한 최대공약수를 머리에 이고, 여기 작은 등불 하나를 켜들었다.
지봉(志峰)장학회!
무릇 선원(船員)은 배를 타기 전에 한번 기도하고, 군인은 전투장으로 나가기 전에 두 번 기도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 작은 등불 하나를 켜기 위해 우리는 세 번 기도했다.
우리의 상자지향(桑梓之鄕) 합천은 죽죽(竹竹)장군이 죽음으로써 나라를 지키고, 서라벌 최고운(崔孤雲)이 둔세입산(遁世入山)하여 최종 산화한 고을이다. 그리고 고려대장경이 흔미로운 민족을 가르치고 왕사 무학(王師 無學)이 천근이 넘는 고고(呱呱)의 소리를 끼쳤으며, 임진 그 옛날 승병을 거느려 의혈을 뿌리던 사명(泗溟)이 잠들고 남명(南冥)이 벼루를 갈던 곳이요, 백의정승 정인홍(鄭仁弘)이 천하를 호령하던 곳이다.
이 역사의 순도 높은 요람인 이 고을에 어둠을 밀어내고 조국 장래를 떠메고 나갈 인재를 가꾸기 위해 경건한 마음으로 이 등불을 들었다.
필부는 10년을 내다보고 나무를 심지만, 우리는 이 등불을 밝혀 100년을 내다보고 국가의 동량(棟樑)을 다듬어 내는 첫 걸음을 내어 딛는다. 하늘을 찌르는 저 마천루(摩天樓)도 대들보의 기둥으로 지탱되듯이, 산하를 받치고 갈 재목을 위해 한가닥 광망(光芒)을 여기 들었다.
바라건대, 이 작은 등불이 차차 휘황(輝煌)해져서, 사해(四海)까지 밝히도록 열과 성으로 지켜나가자.
1991년 5월 2일
지봉아장학회 설립추진위원장 박판제
- 지붕장학회 설립 취지문 -
하늘이 높푸르고 들국화 찬 모래 땅에 향(香)을 토하는 이때, 바야흐로 나라 안팎의 물결은 수미산(須彌山)보다 높고, 상전벽해(桑田碧海)의 변환으로 멀미를 느끼게 됩니다. 나라 밖으로는 탈냉전으로 동서가 손을 잡고, 공산주의 종주국인 소련이 시장경제 체제로 옷을 갈아입고 있습니다. 미∙소는 이게 상극의 뿔을 뽑아 핵무기까지 줄이고, 공존공영(共存共榮)의 최대공약수를 찾고 있습니다.
한편 나라 안으로는 민주화의 대행진과 발맞추어, 7차 5개년 경제계획의 기치를 바라보며, 지방자치의 돛을 올렸습니다. 이 파란만장한 조차전패(造次顚沛) 속에서도, 21세기의 먼동은 어김없이 기지개를 켜며 터옵니다. 21세기의 이 같은 도도한 밀물 속에, 우리 조국과 민족을 태운 일엽편주(一葉片舟)가 표류할 것이냐, 정박할 것이냐, 이것은 실로 오늘을 사는 우리 기성인들의 책무에 속합니다.
그러나 오는 21세기를 주도적으로 이끌고 갈 주역은 역시 오늘날의 청소년들임은 두말할 나위 조차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이 청소년들에게 거는 기대는 태산의 무게를 이기고 북해(北海)의 깊이를 이깁니다.
그 나라 장래를 점치려면 그 나라 청소년들의 눈동자를 보라.
이것은 저 철(鐵)의 재상이라 일컫는 비스마르크의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청소년들은 다음 시대를 짊어지고 나갈 주역이요, 동량입니다. 그러기에 청소년을 올바르게 다듬고 교육하는 것은 이 100년의 대계입니다. 청소년은 모든 가능성을 지녔습니다. 왕후장상(王侯將相)의 씨가 어찌 따로 있겠습니까? 꿀벌은 그 수유(授乳) 정도에 따라 여왕봉(女王蜂)이 되기도 하고 일벌이 되기도 하며, 곡식은 주인의 발자국 소리에 따라 그 소출이 증감(增減)됩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우리 청소년들은 성인들이 파놓은 암흑의 늪에 빠져, 혹은 비행청소년으로 혹은 결손가정, 극빈가정으로 병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문밖에서 새로운 지식의 홍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이 지식의 폭발에 따라가지 못하면, 그 나라는 후진국이 되고 시대의 지각생으로 전락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학문과 교육! 그것은 그 나라의 자본이요, 그 인생의 노자(路資)가 됩니다.
오늘날 미국이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것은 미시시피 강변의 그 광활한 목화밭이 아니며, 로키산맥에 매장된 무진장의 광석도 아닙니다. 그들은 오직 한 사람의 위대한 정치가 링컨을 가졌음이요, 한 사람의 위대한 발명가 에디슨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어찌 그것뿐이겠습니까! 펜은 칼보다도 무서워, 천하를 통일한 알렉산더 대왕도, 아리스토텔레스를 사사(師事)했기에 헬레니즘 창조의 공적을 남겼고, 기골이 장대하고 검술이 능했던 자로(子路)도, 공자의 훈도로 명제자(名弟子)가 되었습니다.
한편 학문과 교육을 외면한 뱅골만 안다만섬의 토인들은, 아직도 불을 쓸지 모르며, 수사(數詞)도 하나, 둘, 모두 셋밖에 없으며, 진시황의 아방궁도 분서갱유(焚書坑儒)로 3대를 못 넘기고 풀밭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주지육림(酒池肉林)의 석숭(石崇)의 부(富)는 아는 이 적지만, 삼천 제자 가르친 공부자(孔夫子)는 오늘날도 지구촌의 부자가 되었습니다.
이 교육과 학문의 효능이 이처럼 중차대함을 감안하여, 미력하나마 지난번에 발기(發起)한 지봉장학회가 재단법인 설립인가를 받아 정식으로 발족했습니다. 기금 2억 원을 합천의 농협(農協)과 축협(畜協)에 예치하여 고향발전을 위한 융자(融資) 재원으로 쓰이도록 하고, 그 이자 수익(利子收益)은 향리의 중고생 중, 학업실적이 탁월하거나 여세적빈(如洗赤貧)하여 면학이 어렵거나 체능특기자 등 50~60명을 선발하여 등록금 전액을 지급하고 장차엔 대학생까지도 확대하기로 했습니다.
우리의 상자지향(桑梓之鄕) 합천엔 예로부터 경국(經國)의 인걸(人傑)이 부절(不絶)하였습니다. 우리의 후예 중에서도 이런 재목이 나올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이 장학회를 우리 모두의 것으로 동참하셔서, 뜨겁게 발전시켜 나갑시다.
끝으로 일일이 찾아 뵈옵지 못함을 용서하여 주시고, 이 가을 들어 17개면(面) 들녘마다 알찬 열매 거두시고, 격양가(擊壤歌)소리 드높도록 엎드려 축원 드립니다.
1991년 10월 9일
재단법인 지봉장학회 이사장 박판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