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경제의 핵심 리더들이 참여한 IDAS운동 (86회)
  제11장 새출발을 위한 준비 태세

1998년 가을, 평소 친분이 있던 이청승 당시 한국폴라화장품 회장이 일본의 디자인 전문가를 대동, 사무실을 방문하여 당시에 인기를 얻고 있던 고려대학교 ICP과정(정보통신 최고경영자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렇다면 디자인이라는 주제로 최고경영자과정을 만들어본다면 시의적절하겠다고 의견을 모으게 되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서울대 AMP과정처럼 경영대학에서 운영하는 최고경영자과정은 있었으나 디자인 최고경영자과정은 처음이었다. 당시 부총장이었던 이남식 교수를 준비위원장으로 임명하여 정경원 KAIST교수, 안희영 건국대 교수, 박인석 월간 디자인 편집장, 이순인 KIDF본부장 등 디자인 전문가들로 하여금 최고의 프로그램을 기획하도록 하였다. 

한편으로는 몇 달 안에 최고경영자들을 설득하여 과정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 큰 과제였다. 당시 대다수 오너는 디자인보다는 생산과 경영, 재무 등 전통적 경영기반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 큰 명문과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면 시작조차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현대적인 디자인의 시발점이 된 바우하우스의 바우하우스운동을 떠올리게 되었다. 이제 새로운 밀레니엄을 앞두고 최고 경영자들에게 창의적이며 혁신적이고 문화적인 사고를 할수 있도록 교육과 경험을 전수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하게 되었다. 
 
IBM, BRAUN, APPLE과 같은 탁월한 기업들이 디자인 경영에 의하여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으므로, 우리 기업들도 이들을 밴치마킹하여 21세기에는 세계를 주도하며 우리나라가 디자인 강국으로 부상하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이런 비전을 여러 교수들과 나누면서 IDAS가 21세기의 바우하우스가 되자는 각오로 국제디자인대학원대학교(International Design School for Advanced Studies)의 이니셜을 가지고 새로운 슬로건을 만들게 되었다. “미래자산으로서의 지식과 디자인(IDAS )운동”을 주변의 CEO들과 나누는 가운데 큰 호응을 얻게 되었다. 

1993년 삼성의 이건희 회장은 신경영을 선포하고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꾸자”라는 혁신운동을 펴면서 1995년에는 삼성이 SADI와 IDAS와 같은 사내 디자인교육과정을 만들었으며 LG의 구자홍 부회장이 APPLE의 스티브잡스와 1시간 가량 면담을 하는 동안 스티브잡스는 50분간을 디자인에 대해 말했다고 하는 등 선도기업에서는 디자인의 중요성을 간파하기 시작했다.

삼성디자인연구소를 방문해 영상브리핑을 보니 이건희 회장은 “상품의 최후 승부처는 디자인”이라고 강조했다. 나는 이 말은 인용하여 “디자인은 국가 경쟁력의 최후 승부처”라고 응용했다. 상품의 경쟁력 = 기획력*기술력*디자인력이라 할 수 있다. 

기술력은 빠르게 보편화되어가기 때문에 이를 일정 상수(常數)로 보면 상품의 경쟁력은 기획력과 디자인력의 곱에 비례한다는 것이다. 디자인 전문가들은 그 중요성을 익히 알고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강조해왔지만 그것이 정책적으로 사회 전반에 확산되지 못하고 있었다. 김대중 정부는 출범과 더불어 디자인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 IDAS2기 졸업생들과 /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 손병두 전경련 부회장, 이영혜 디자인 하우스 대표가 보인다. 

IDAS가 최고경영자들의 디자인 마인드 고취를 위하여 학생모집에 들어갔다. 지금 IDAS의 뉴밀레니엄과정은 수료한 우리들은 경제의 핵심적 리더 400여명이 되는데 외국의 학자들도 와서 이 명단을 보고는 놀란다. 자기네들은 이 분야 전문가 10명도 한 자리 모으기 힘든데 이 중요한 핵심리더들을 이렇게 많이 모을 수가 있었느냐고 말이다. 그러나 이 작업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1기 학생은 누가 보아도 우리나라 경제를 대표할 만한 인물이어야 했다. 우선 홍라희 삼성미술관 관장이 떠올랐다. 연락을 여러 번 해도 쉽게 연결이 되지 않았다. 도리 없이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을 먼저 만나기로 했다. 홍석현 회장은 나와는 친분이 있었고 나를 좀 아는 분이었다. 

신라호텔에서 만나 IDAS운동에 대해 찬찬히 설명을 들은 홍 회장은 “제가 누나를 설득해보지요.”라고 했다. 홍 회장은 누나에게 전화를 걸어 “박판제 총장 인품을 제가 잘 아는데 한번 물리면 절대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누나가 1기 하시구요, 제가 2기 하지요.”라며 권유했다고 한다. 

마침 IDAS가 예전 서울미대 자리라 홍 관장의 입장에서는 옛 추억이 서린 곳이기도 하였으며 평소에 예술과 디자인에 대하여 남다른 식견을 가지신 터라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1기생에 입학하기로 했다. 특히 최고위 과정의 성패는 처음에 어떤 분들이 오느냐에 따라 위상이 달라지는데 정말 큰 힙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용기를 얻어 언론계에서 정보화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추진하던 매일경제의 장대환 회장을 만났다. 장 회장 집무실에서 얘기를 시작한지 40여분이 흐르자 밖에서는 결재를 기다리고 있다는 전갈이 들어오고 있었다. 장 회장은 의아한 눈빛으로 나에게 물었다. 

“아니 총장님! 지금 저를 학생으로 오라는 겁니까? 저보고 강의하라는 게 아니구요?”

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장 회장께서는 우리 사회의 여론을 좌우할 수 있는 최고의 리더입니다. 정보화시대도 우리사회 최초로 열어가고 있지 않습니까? 금상첨화로 디자인혁신 시대도 학생이 되어 맨 밑에서 배우면서 열어 가신다면 많은 분들이 놀라고 감동할 것입니다. 부디 나의 제안을 거절하지 말아주십시오.”

나는 지금 여기서 장 회장의 결심을 받지 못하면 나가지 않겠다는 배수진을 쳤다. 결국 입학하겠다는 사인을 받았다. 이것이 이후 매일경제가 지속적으로 디자인 혁신시대를 여는데 선도적 역할을 하는 모멘텀이 된다. 남자 중진기자와 여기자를 명예학생으로 등록하게 하고 모든 강의를 매일경제신문에 지산중계 보도토록 하는 것이었다. 이 두기자 에게는 나중에 명예 수료증을 수여했다. 

이외에도 구자홍 LG전자 부회장, 손병두 전경련 부회장 등 재계를 대표하는 인물들과 언론사, 대학총장들, 공직사회의 고위 공직자, 창의력 있는 중견기업의 오너, 대형교회의 담임목사, 디자인계의 인사를 모함하여 1기 학생 70명이 입학하게 되었다. 

이들의 면면이 소문이 나자 나중에는 교육목적에 합당하지 않는 이들도 입학을 하겠다고 줄을 서는 지경이었다. 그러다보니 나중에는 들어오라는 권유보다 들어오는 것을 막는 데에 진땀을 흘려야 했다. 기업과 나라의 미래를 위한 순수한 디자인 혁신의 열정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거기 모인 사람을 보고 오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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