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더듬이 외곬 선비 졸당공 후예 (6회)
  제1장 나의 세계(世系)와 가계(家系)

송은 선생은 네 아드님을 두셨다. 첫째 분이 우당, 둘째 분이 인당, 셋째 분이 아당, 넷째 분이 졸당이시다. 

4형제 분 모두 포은 문하에서 학문을 배워 재주가 출중하였다고 한다. 당시 사람들이 사봉(四鳳)이나 사우당(四友堂)이라 일컬었다고 하는 4형제 분은 송은 선생의 유언에 따라 3년상을 마치고 7년을 더 기다리다가 모두 진사시에 응시하여 합격하셨다. 장자인 우당공은 다시 문과에 응시하여 장원급제하였는데, 당시의 답안지가 국조방목(國朝榜目)에 전해온다. 

‘한나라 동중서도 이보다 더 나을 것이 없다’고 당시 고사총관이었던 방촌 황희(坊村 黃喜)는 극찬하였다고 한다. 이조정랑으로 있을 때, 진주 촉석루의 제영(題詠)을 지어 문인으로서 이름을 남겼다. 우당공의 제영운은 조선시대의 가장 오래된 것으로 차운한 시가 33수나 되며, 이후 이퇴계와 홍규헌의 제영운이 있다. 그 시를 옮겨본다. 

촉석루(矗石樓) 제영(題詠)     

진주의 형승이 영남에 으뜸 / 晋山形勝冠南區 
하물며 강을 임해 이 누각이 있음에랴 / 況復臨江有此樓
못산과 충암은 산 그림 이루고 / 列岫層巖成活畵
무성한 숲 푸른 대는 청류를 곁했네 / 茂林修竹傍淸流
아지랑이 병풍 사이에 일어나는 듯 / 靑嵐髣髴屛間起
흰새는 거울 속에 떠있는 듯 하여라 / 白鳥依稀鏡裏浮
인걸은 지령따라 나는 줄 알고 있지만 / 己識地靈生俊傑
성조에 설거주 같은 분이 잇달아 났네 / 盛朝相繼薛居州

▲ 우당의 진주 촉석루矗石樓) 제영(題詠)시판
 
넷째 아드님인 졸당공(拙堂公, 1353-1439)은 우리 종파의 처음이며, 휘는 총(聰)으로 나의 17대 조다. 졸당이라는 호는, 주자(朱子)가 자신을 낮추어 겸손함으로써 재주나 수완이 있는 사람을 이겨낸다. 즉 수졸당능(守拙當能)이라고 한 가르침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날 때부터 재주가 남달리 뛰어났던 졸당 선생은 길재, 변계량 등 당대의 이름난 선비들과 교분이 두터웠다고 하는데, 졸당 선생이 말을 더듬는 것을 희롱한 변계량의 시로 그러한 사정을 짐작할 수 있겠다.  

졸당의 말더듬음을 희롱함 / 戱拙堂口吃

더듬더듬 말한다고 웃지를 마라 / 幕笑期期語 
노나라 주창은 의리만 밝았느니라 / 周昌秉義明
조정에서 시비를 가리던 날 / 廷爭是非日
어찌 제생들과 비교가 되리오 / 肯較魯諸生

졸당 선생은 부모를 섬김에 있어 말소리를 부드럽게 하고, 얼굴 빛을 밝게 하며, 부모님의 뜻을 기쁘게 하고, 상을 당해서 슬퍼하고 수척함이 예절에 넘치니 그 효성에 감복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변계량에 의해 효로 조정에 천거되어 벼슬이 호조정랑에 이르렀으나, 직간을 잘해 권세가의 중상모략으로 귀양을 살게 되었는데, 귀양살이에서 읊은 시가 전해 내려온다. 

귀양지에서의 회포 / 謫居自懷

어느날 꿈에 홀연히 임금님이 오셨더니 / 一夢飜然寶袞臨
깨어나서 살펴보니 바야흐로 강기슭에 누웠네 / 覺來方識臥江心
신하가 되어 벼슬이 높다 낮다 말하지 마라 / 爲臣莫說官崇痺
타고난 천성으로 누군들 임 그리는 마음 없으랴 / 天賦誰無戀主心

사우당집에는 어느 날 고려의 도읍지인 송경을 지나가다가 쓴 시도 전해오는데, 부친인 송은과 스승인 포은 두 노인을 그리는 애틋한 정회가 담겨있다.

송경을 지나면서 / 過松京有感

눈물겨워라, 송경의 밤이여 / 淚落松京夜
혼은 두 노인이 품은 큰 뜻으로 돌아가네 / 魂歸二老情 
서교엔 푸른 핏자국이 남았고 / 西橋餘碧血
북포엔 깊은 맹세 안겼어라 / 北浦抱深盟

귀양길에서 풀려나오자 다시는 관직에 나가지 아니하고 지금의 합천 대병으로 옮겨 살며, 오로지 학문과 후진양성에만 힘썼다. 이때 신심신관편(愼心愼官編)을 지어 관리들의 사표로 삼게 했다.  

'벼슬에 오르기 전에는 비록 (벼슬할) 걱정을 하나, 마음은 편안하다. 이미 벼슬한 자는 비록 기뻐하나, 마음은 위태롭다. 관리가 되어 백성을 다스릴 때 먼저 마음을 청렴하게 하여 욕심을 버리지 아니하면, 반드시 천성을 상실한다. <중략> 

국가의 녹봉은 마땅히 절용하여 가벼이 쓰지 말아야 한다. 마음을 다하여 맡은 일에 진력하고, 매우 청렴하고 근면하라. 청렴하면 사람들이 복종하고, 근면하면 일이 잘 풀릴 것이다. 무릇 벼슬에 있는 자, 어찌 털끝만한 비리라도 저질러 본심을 어기리오. <하략>'

1469년 세종 21년, 87세로 천수를 다하셨는데, 세종께서 특별히 3품을 가자(加資)하여 이조참판을 중직하니, 세인들이 특이한 은전이라 하여 놀라워했다고 전한다. 경남 산청의 신계서원에 아버지 송은 선생과 함께 배향되어 있다. 

이후 졸당 선생의 후손들은 백자천손(百子千孫)으로 흥성하여 조정공신으로서, 혹은 사림의 사표로서, 국란을 당해서는 창의(倡義)로 떨쳐 일어나고 순국으로 나라를 지킨 선비로서 추앙을 받았다. 숱한 명현석학(名賢碩學)이 속출하여 나라에 공헌하고, 종문을 빛내왔다. 

 
  송은(松隱) 선생과 포은(圃隱) 선생의 교유(交遊) (5회)
  내 집안의 가승(家乘) (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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