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작은 예수님 (62화)

나는 노래방 체질인가

언제부터인가 거리에 노래방 간판이 나돌더니, 요새는 거리마다, 골목마다 즐비하게 붙어있다.

처음에 나는 호기심으로 신자들과 노래방을 가게 되었는데, 정말 신기했다. 곡명을 누르면 멋진 반주가 나오고, 자막의 노랫말과 배경도 그만이었다. 그리고 박자도 기계가 안내해주는 대로 노래만 부르면 된다. 이렇게 하다보면 가수가 된 기분이었고, 어쩌다 점수가 90점 이상인 팡파레가 나오면 박수도 받고 기분도 괜찮았다.

이런 기분에 몇 번 드나들다보니 같이 간 사람들이 “신부님은 노래방 체질”이란 소문을 퍼트렸다. 그 후로 본당의 각 신심단체 회식 끝에는 ‘신부님 노래 듣는’ 노래방 가는 것이 정식 코스가 되어버렸고, 본의 아니게 자주 가다보니 노래도 제법 늘게 되었다.

무슨 노래를 불러야 점수가 잘 나올지도 안다. 우선 마이크를 잘 사용해야 하고, 분위기가 있는 노래보다는 단순한 네 박자 뽕짝이 좋다. 부르기 편하고 대중적인 것이면 더욱 좋고, 힘이 있으면 소리는 마음껏 질러야 한다. 이렇게 하면 기계가 노래하는 사람 성의를 봐서 기본 점수 85점은 준다. 여기게 곡을 잘 선정하고 박자를 맞추면 95점 팡파레는 어렵지 않다.

요새 나는 노래방에 가면 ‘봉’이 된다

100점이 나오면 만원씩을 헌금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돈을 내고도 기분이 나쁘지 않으니 말이다

요새 나는 노래방에 가면 ‘봉’이 된다. 왜냐하면 요즈음 ‘노래방 준례’가 100점이 나오면 만원씩을 헌금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전에 동창신부들과 노래방엘 갔었는데, 100점이 나와 만원을 헌금했다. 그러다보니 그날 노래방 값은 내가 다 지불한 것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사람의 기분이란 참 이상하다. 돈을 내고도 이런 기분은 싫지 않으니 말이다.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겠지만.......

초등학교 때 몇 번 100점을 맞아보았지만 그 뒤로 100점은 나와는 인연이 멀었다. 그런데 요새 이곳에 와서 돈 몇 푼 내고 100점 맞는 기분이 나를 다시 초등학교 시절로 되돌아가게 하는 것 같았다. 그때의 대리만족 치고는 괜찮은 편이다.

나는 지금도 어울리면 노래방에 간다. 지갑에 돈이 있으면 100점 짜리 노래를 부르고, 지갑에 돈이 없으면 90점짜리만 부른다. 이쯤 되면 노래방 프로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요즘은 한참동안 노래방을 잊고 살았다. 겨울에 감기가 들어 한동안 출입을 금했던 것이다. 노래방은 대개가 지하실이 있기 때문에 공기도 탁하고, 세곡 이상 부르면 기관지에 이상 신호가 온다. 가장 약한 부분이 기관지이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사제의 길을 주신 것은 목사와 같이 큰 소리로 설교하지 않아도 되고, 교사와 같이 교단에서 5시간 이상 서 있지 않아도 되기 때문인 것 같다. 참으로 배려 깊은 하느님이시다. 나의 하느님 감사합니다.

우리 사회 어디를 가나 노래는 있다. 듣기 싫어도 들어야 하고, 하기 싫어도 한곡씩 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런데 요새는 노래를 부르는 것보다 듣는 편이 더 좋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노래방 체질이라는 말까지 들었던 내가 요즘은 자막없이는 그 흔한 유행가 하나도 못 부르는 어설픈 신세가 되고 말았다.

노래는 우리들의 희로애락(喜怒哀樂)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언어의 예술이다.

조용히 기도하고 묵상할 때도 있지만, 거룩한 노래를 통해서 감동받을 때도 있다.

한 세상을 살다보면 기막힌 경험을 할 때도 있을 것이다. 조용히 잠을 청하면서 오늘 하루 분주했던 그 소리를 정돈해보면 노래방 노래소리에도 인생은 익어가고 있을 것이다. 나는 지금 노래방 체질이 아니다. 가을 낙엽소리에도 가슴이 뛰는 시를 쓰고 싶다.

키 작은 예수님

사람이 급한 상황에 빠지면 하느님을 찾게 되는 것 같다. 내가 사제 서품을 받고 중앙성당 보좌신부로 있을 때의 일이다.

점심을 먹고 낮잠을 자고 있는데, 급히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서 나가보니 대학병원에서 급한 전화가 왔다며 빨리 가봐야겠다고 사무장이 재촉하는 것이었다. 대강 차려입고 대학병원 응급실에 들어서자 한 중년부인이 나를 보고 ‘예수님’이라며 우리 아들 살려달라고 매달렸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데도 개의치 않고 큰소리로 매달렸다.

사제 초년기에 처음으로 이런 일을 당하고보니 나도 당황되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긴장된 마음으로 환자 곁에 가보았더니, 두 젊은 청년이 산소호흡기를 끼고 있었다. 상황을 보니 심상치 않은 눈치였다. 나는 병자성사를 주고 어머니를 위로하고 성당으로 돌아왔다. 오는 도중에 사연을 들어보니 이러하였다.

두 아들을 둔 어머니가 살림이 어려워 지하실에 전세를 얻어 칼국수집을 하고 있었다. 저녁에 두 아들은 가게에서 자고 어머니는 집에 가서 잔 후 아침에 출근해보니 두 아들이 연탄가스로 그렇게 되어있었다는 것이다. 마침 그 날 밤 비가 내렸는데, 지하실에 통풍이 잘 안되어 연탄가스를 먹을 것이었다. 그 시절 연탄을 사용할 때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연탄가스 중도사건이 신문에 보도되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도 사람을 시켜 성당에 전화를 했다는 것은 보통사람은 할 수 없는 침착한 행동이었다. 알고 보니 생활고로 성당에 나오지 못했지만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던 신자였다고 누군가 귀뜸해 주었다. 사람이 물에 빠지면 지푸라기라도 잡는다고 했는데, 그 상황에서 무슨 일인들 못할까? 사제인 내가 예수님으로 보였다는 것은 그 여인의 솔직한 표현이라고 믿고 싶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나는 그 일을 잊고 있었다.

하루는 날씨도 잔뜩 찌푸리고 하늘에서 눈이 내릴 것 같았다. 갑작스럽게 따끈한 칼국수 생각이 났고, 문득 지난번 대학병원 연탄가스 중독사건이 떠오르는 것이 아니겠는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그 일도 알아보고 칼국수도 먹어볼 겸 그 집을 찾아갔다. 그 집 앞에 당도하고 보니 약간은 긴장이 되었지만, 분명이 죽었다는 소식이 없었으니, 별일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가게 영업을 하는 것으로 봐서는 큰 일이 없는 것 같아 한편으로는 마음이 놓였다.

가게에 들어서자 두 젊은이가 나를 반가히 맞아 주었고, 아주머니는 주방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사복을 하고 갔기 때문에 그들은 내가 신부인지를 알아보지 못했다. 나도 그들을 알 수가 없었다.

식사를 마치고 젊은이에게 혹시 지난번에 연탄가스중독사건으로 고생한 두 젊은이들은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어보았더니, 바로 자기들이라고 하면서 지금은 많이 회복되어 일하는 데에는 불편이 없다고 얘기해주었다. 일단은 다행이라고 생각되어 마음이 놓였다.

카운터에서 아주머니도 보았지만, 더 이상 묻지 않고 돌아왔다. 집에 와서 그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나를 알아보지 못한 것에 대해서도 심술이 나기 시작했다.

오후 한가한 시간에 전화를 걸었다. “오늘 점심 때 그 집에 예수님이 찾아가셨는데, 혹시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묻자 바쁜데 장난전화 말라면서 끊어버렸다.

조금 있다가 다시 한 번 정중하게 전화를 했다 “여기는 중앙성당입니다. 지난번 사고 때 얼마나 놀라셨습니까?”라고 안부를 묻고는 위로해주었다. 그랬더니 누구냐고 묻기에 점심 때 그 집에 키 작은 예수님이 가셨는데, 못 보셨느냐고 하자, 그때서야 “신부님, 이 일을 어째해야 합니까? 신부님도 몰라보고.......”라며 큰일 났다고 공손히 사과를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후에 다른 곳으로 명령을 받았고, 그 집에 다시 갈 기회가 없어서 지금까지 찾아가본 일이 없다. 하지만 기회 있을 때 마다 사람들에게 그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해준다. 사람이 급하면 본능적으로 주인이신 하느님을 찾기 마련이라고 말이다. 나는 언젠가 그 여인을 만나면 지금도 나를 예수님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어보아야겠다.

그동안 세월이 흘러 30년이 가까워온다. 언젠가 모르는 사이에 스치고도 갔을 것이다. 지금 만나보아야 서로가 몰라볼 입장이니 내가 괜한 소리를 한 것이 아닌가 모르겠다.

나는 그 뒤로 예수님이란 말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