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손님과의 인연
이 세상에 도둑이 없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큰 도둑에서 좀도둑까지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다. 신부가 살고 있는 사제관은 좀도둑이 즐겨 찾는단다. 왜냐하면 다녀가도 신고하지 않고, 들켜도 용서해달라고 매달리면 되니까 용돈이 궁할 때면 자주 찾는단다.
내가 사는 사제관에도 몇 번 다녀갔다. 그러나 재산상의 피해를 본 일은 없었다. 그저 여행때 구입한 카메라 하나를 자선한 것뿐이었다. 그런데 도선생이 다녀가고 나면 기분이 좋지 않다. 특히 식당아주머니와 수녀님들은 오랫동안 긴장으로 불안해한다. 사실 와봐야 수입도 없는데, 왜 이렇게 자주 들르는지, 항상 발품만 팔고 가면서 말이다.
나는 그 뒤로 그들에게 호기심이 생겼다., 만나면 그들에게 꼭 물어볼 말이 있는데, 한 번도 붙잡질 못했다. 만약 도 선생을 만나게 되면 설득해서 술이라도 한잔 하면서 왜 그런 짓을 하게 되었는지를 물어보고 싶었다.
악연이었지만 수양하는 셈치고 꼬박꼬박 청을 들어주었다
왜 세상에 할일도 많은 데 멀쩡한 육신가지고 이런 일을 하나
그와 곰탕 한 그릇과 소주 한잔을 나누면서 마지막 충고를
그러던 어느날 기회가 왔다. 저녁미사를 드리는데 예감이 이상하여 강론을 생략하고 서둘러 사제관에 가보았더니 문이 열려 있는 것이 아닌가. 내가 들어설 때 도선생은 막 내 방에서 나오던 참이었다. 그놈은 성당을 잘 아는 전문 털이범이 분명했다. 미사시간을 정확히 계산해서 나오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현관문을 가로막고 서 있었다. 하지만 이놈은 나보다 덩치도 훨씬 큰놈이어서 나를 떠다밀고 줄행랑을 치려고 하였다. 그놈과 내가 동시에 넘어지면서 내가 그놈의 발목을 걸어 쓰러뜨렸다. 함께 실랑이를 하고 있는데, 마침 미사를 보고 나오는 신자들이 있어서 그놈을 붙잡아 경찰에 신고를 해버렸다.
그런데 신고를 해놓고 보니 마음이 편치가 않아 수사계 형사에게 그냥 놓아주면 어떻겠느냐고 물어보았는데, 수사를 해보니 전과가 있는 놈이고 그냥 되돌려 보내면 다른 사람에게 계속 피해가 있게 되니 안 된다는 것이었다.
교구장이나 다른 신부들에게도 상의해보았으나 요새 성당만 골라가며 다니는 놈이니 벌을 받아야 한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법의 심판을 받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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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주교구 중앙성당 본당내부 [출처 ; 천주교 전주교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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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서부터 문제가 묘하게 꼬이기 시작했다. 이놈은 몇 년 전 타교구에 있는 내 동창신부한테서 세례를 받은 신자였다. 이놈이 그것을 구실 삼아 살려달라고 계속 편지를 보내는 것이었다. 동창신부에게 전화를 해보았더니 동창신부도 그놈에게 너무나 시달려 이제는 지쳐 포기한 상태라고 했다. 나도 어쩔 수 없이 이놈을 좀 고생시켜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유치장에 갇혀버린 후에는 사식비를 넣어 달라, 신문이나 책을 넣어 달라, 재판 때 진정서를 넣어 달라, 집요하게 요구하는 것들이 많았다.
그러나 신부가 어쩌랴! 그놈과의 인연은 악연이었지만 수양하는 셈치고 꼬박꼬박 청을 들어주었다. 교도소에 있을 때는 면회까지 가주었다. 그런데 하루는 하는 말이 “신부님이 도와주시려면 끝까지 도와주십시오.” 하면서 반성하는 기색도 없이 나를 계속 이용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순간 그의 요구사항을 다 끊어버리고 소식도 주지 않았다.
그런데 그놈이 일 년쯤 지난 3월경 쌀쌀한 날씨인데도 허름한 옷에 가방 하나 메고는 형기를 마치고 출소를 했다면서 인사를 하러 오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그놈 하는 말이 고향까지 가려면 여비가 필요하니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내가 알기로는 출소 때 여비정도는 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이놈은 아직도 거지 근성을 못 버리고 거짓말을 하는 것 이었다.
나이도 50이 가까웠고, 생긴 것도 잘 생겼는데 어찌 이리 생각하는 것은 딴판이란 말인가? 마침 점심때도 되었고 해서 그놈을 데리고 곰탕을 시켜먹으면서 내가 그전부터 묻고 싶었던 말을 했다.
왜 세상에 할일도 많은 데 멀쩡한 육신가지고 이런 일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자기도 모른단다. 일을 저질러 놓고 후회한단다. 이것도 병인 것이다. 병은 치료해야 한다. 그런데 그 병이 교도소에서는 치료하기 어렵단다. 이런 병을 치료하는 의사는 없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와 곰탕 한 그릇과 소주 한잔을 나누면서 마지막 충고를 해주었다. “다시는 이런 인연으로 만나지 말자. 나 너를 위해 기도하며 성공을 빌겠다.”
마지막 차비를 손에 쥐어주고는 헤어졌다 그 사람이 지금은 새 사람이 되어 있기를 바라고, 마지막 충고를 기억하면서 잘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세상에 당신보다도 못한 육체적 불구자들도 살려고 노력하는데, 건강한 몸으로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느냐고 타일러주었었다. 지금쯤은 외모만큼이나 당당하게 살아주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