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초등학교 때는 선생님이 되는 것이 꿈이었는데, 중학교 때는 별다른 꿈이 없었던 것 같다. 굳이 말해보라면 아버지가 하시는 사업을 하고 싶었던 생각이 난다. 당시 돈을 제일 많이 버는 부잣집이란 말이 듣기 좋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열등의식을 가졌던 사춘기
나는 중학교 때부터 성장판이 멈춘 것 같다. 지금 나의 키는 150cm이다. 중학교 때는 중간쯤이었다. 그때부터 신장의 열세로 고민했다. 반장에다 3학년 때는 대대장까지 했는데 앞에 서면 내 자신이 왜소해 보이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작은 키를 만회해보려고 집에서 아령이나 곤봉체조도 하고 산에 올라 목소리를 키우기 위해 구령연습도 했다.
다행히도 하숙집 앞에 태권도장이 생겨 태권도를 배웠다. 1년간 열심히 다녀서 실력도 쌓았고 누구와 겨뤄도 두렵지 않은 자신감을 가지고 열등의식을 잘 극복했다. 당시 나보다 덩치도 크고 힘께나 써 보이는 놈 앞에서도 태권도 실력으로 제압했다.
처음으로 자전거도 배웠다. 우리 반 중에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오는 학우가 있었는데, 다행히 나와 단짝이어서 방과 후 학교에서 자전거 타는 법을 배워 함께 타고 다녔다. 자전거 태워주는 보상으로 가끔 친구와 짜장면 집을 들락거렸다.
내가 3학년 때 동생이 같은 학교에 입학했다. 동생도 나를 따라 태권도장에 다니면서 체력을 단련해서 전국체육대회 중등부 우승을 했다. 3학년 때는 대대장을 했으며 우승 경력으로 전주고등학교 체육 특기생을 입학했다.
남원 땅 사랑이야기
지금도 타향에 가서 이야기 하다보면 남원사람이냐고 질문을 받는다. 내 말투가 남원사람 말투로 들리나보다. 남원은 내가 고향을 떠나 첫 번째로 유학한 곳이라 정이 많이 남아있다. 남원 하면 이도령과 성춘향 사랑 이야기를 빼 놓을 수 없다. 나에게 사랑의 롤모델이었다.
친절했던 하숙집 언니와 아줌마가 생각난다. 특별히 옆방에 기거하던 하숙생 형의 로맨틱한 한 장면이 떠오른다.
하숙생 형
어느 날 노을이 붉게 탈 때, 대학생 형은 하숙집 마루 난간에 걸터앉아 구성진 목소리로 시를 낭독하곤 했다.
하숙집 건넛방엔 주인집 딸이 있었지요. 단발머리 고등학교 졸업반이었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계란형 얼굴을 가진 얌전한 소녀.
대학생 형은 그쪽을 가끔씩 훔쳐보며 큰 소리로 읊어댔다.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 형의 모습에 홀딱 반해 젊었을 때 흉내를 내보기도 했다.
나 그때 철이 없어 대학생 형의 사랑의 메시지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건넌방에 무슨 일이 있는지도 모르면서 그 목소리만 들려온다.
나 지금 그때의 대학생 형을 생각하며 창문을 열고 구성지게 외쳐보지만
들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때가 너무 늦었나보다.
오늘 문득 남원골 하숙집 식구들이 생각난다.
나도 <TV는 사랑을 싣고>에서 사람을 찾아볼까?
보고 싶다. 춘향골 식구들.
_ 시집 ‘세월이 지나간 자리’ 중에서
당시의 정치상황
당시 정치권에는 큰 사건이 있었다. 자유당 정권의 3.15부정선거로 중학생까지 데모에 참여했다. 마산상고에 다니는 김주열 학생이 데모하다가 마산 앞바다에 시신으로 발견되면서 전국적으로 시위가 격렬해졌다. 당시 천주교 신자는 대부분이 야당이었다. 장면 박사가 천주교 신자로 정계에 있었기 때문이다.
선거 때 우리 집은 감시를 받았다. 그때 선거구호가 생각난다. 야당인 민주당은 ‘못 살겠다 갈아보자’, 여당인 자유당은 ‘구관이 명관이다’로 맞서 선거 때면 확성기 소리가 여전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야당을 지지하였다.
여당 대통령 후보에 이승만, 부통령 후보에 이기붕이었고, 야당 대통령 후보는 신익희, 부통령 후보는 장면이었다. 신익희 선생은 1956년 5월 5일 호남유세 차 왔다가 호남선 열차에서 심장마비로 향년 63세로 서거했다. 신익희 선생의 서거를 아쉬워하며 눈물의 가요가 된 <비 내리는 호남선>은 국민 애창가요가 되었다. 야당 후보는 대통령 후보가 없는 대선을 치렀다. 선거 결과 대통령에 이승만 박사가, 부통령에 이기붕이 당선되었다.
1960년 대선 때도 조병옥 박사가 민주당 후보였는데, 선거 한 달 전 갑자기 서거하여 이승만이 단독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자유당 정권시절 3.15 부정선거로 전국 학생들이 총궐기하여 4.19혁명이 일어나면서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하고 야당이 정권을 잡았다.
이때 헌법개정으로 총리내각제가 실시되어 대통령에는 윤보선, 국무총리에는 장면 박사가 당선되었다. 모든 국정이 국무총리 책임제가 되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1년이 지나가기 전 5.16군사쿠데타로 이 나라는 자유를 꽃피워 보지로 못하고 군사독재의 어두운 터널로 들어가게 되었다.
중학교 시절을 되돌아보면 사춘기로 넘어가는 시기였는데도 별다른 갈등 없이 지낸 것 같다. 당시 정치는 혼란했고 사회는 어지러웠지만 나는 그런 것에는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 학교와 성당 그리고 친구들과의 친교가 나의중학교 시절을 바로 잡아주었다고 생각된다.
청춘의 시작인 중등시절 별다른 사고 없이 넘길 수 있도록 도와주신 사랑하는 가정과 하느님께 감사드릴 뿐이다. 부족함 없이 행복이 충만했던 그 시절에 대한 추억으로 지금 잘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