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저녁 최국광, 이길영 교수, 나 세 사람이 <샘물정>이라는 음식점에서 저녁식사를 함께 하면서 서로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최 교수와 이 교수는 각각 기계공학과 환경공학을 전공한 자기 전공에 자부심이 강한 학자들이었다. 앞으로 공학부의 포스트는 우리들이 담당할 테니, 국어국문학과도 내년에 신설되니까 인문학부의 포스트가 되어 우리 함께 힘을 합해서 인천대학을 훌륭한 대학으로 건설해보자고 집요하게 나를 설득했다.
나는 관동대학의 학사행정에서 다소 회의를 느끼고 있었으므로 좀 생각해보자는 애매한 말로 대답하고,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사항을 점검했다.
먼저 국어국문학과의 신설이 틀림없는가를 문교부에 있는 친구에게 확인하니, 그것은 거의 확실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다음은 관동대학의 학장의 의사를 타진해서 허락을 받는 일이었다.
학장을 찾아 뵙고 완곡하게 나의 의사를 전달했더니 강하게 잡는 편이 아니어서 인천대학으로 가기로 결정을 했다. 그러나 가장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학생들이었고, 그것은 지금까지 나의 마음속에 항상 미안함과 함께 반성의 마음으로 남아있다.
그해 8월 21일 나는 인천대학에 부임하여, 월급도 설립자 백 장군의 말대로 인천대학과 관동대학 두 곳에서 수령하는 혜택을 받았다.
나는 부임하자마자 내 연구실에서 열심히 책을 읽으면서 친구인 이길영, 최국광 교수와 자주 만났다.
학장 김형길 박사는 서울공대 건축학과 교수를 역임한 건축설계 분야에서 석학으로 인정받은 분이었고, 이길영 교수가 교무과장, 서울시립대 교수로 재직했던 이봉규 교수가 학생과장, 공군사관학교 교수부장을 역임한 허돈구 교수가 행정과장, 인천직할시 교육청 학무과장과 제물포고등학교 교장을 역임한 김세기 교수가 교양학부장을 맡고 있었다.
나는 학보사와 방송국의 주간교수의 직책을 맡았다.
김세기 교수를 제외한 최국광, 이길영, 이봉규, 허동구, 황규복, 나 등 학교의 핵심교수들은 자주 만나서 학교일을 협의하곤 했는데, 그 첫째의 과제가 군대식 보고채널로 유지되는 경직된 학교의 분위기를 개선하는 일이었다.
9월에 들어와 2학기가 시작되면서, 인천전문대학 강사도 재직하고 있던 S선생이 대학의 조교와 행정차장의 발령을 받았다. 당시 인천에 거주하고 있는 10여명 교수들 이외에 서울에 거주하는 대다수 교수들은 전철로 통근하고 있었다. 교수들 중에 승용차를 가진 사람은 한 사람도 없는 것이 당시의 현실이었다.
그런데 학교 현관 입구에 위치한 행정실에서 근무하는 S조교가 교수들의 동태와 출근상태를 보고한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교수들은 S조교를 경원했으나 그럴수록 그의 자세는 더 뻣뻣하고 백 장군이 자기의 배경임을 은근히 과시했다.
행정과장으로 있는 허돈구 교수의 지시도 잘 따르지 않자 허돈구 교수가 사표를 제출하고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이튿날 백 장군이 허돈구 교수를 찾아오라고 긴급 지시를 내려서 허돈구 교수가 다시 학교에 나오자 몇 사람이 학사행정 시스템 개선을 백 장군께 건의하여 S조교를 다시 전문대로 돌려보냈다.
1980년 3월부터 신군부에 저항한 <서울의 봄>의 데모사태가 전국을 번져가고 있는 시기에 인천대학 학생들과 교수들도 그 소용돌이에 휩싸여 심한 학내 데모사태가 일어났고, 그러한 와중에서 학생들에 동조한 교수 네 사람은 이미 해임되었고, 나머지 두 교수가 내년 2월말로 나가게 되어 있었다. 그 중 한사람이 우리학과 교수였으나 나는 그 교수를 백 장군께 건의하여 없던 일로 만들었다.
그해 10월말 인문학부에 국문과, 일문과, 자연계열에 5개학과, 경영학부에 경제과, 체육계열에 체육학과, 공학부에 1개학과 등 10개 학과가 증과되어 다음해부터 학생 수는 배로 늘어나게 되었다. 나는 학과장 보직과 신문사 주간의 보직을 겸직하게 되었다.
신문에 초빙교수 광고가 나가고, 백 장군은 초빙광고에 적합한 사람이 있으면 교수들이 추천하라고 말했다. 학교 분위기가 경직되어 있는 편이고 소문이 좋지 않게 나 있었기 때문에 교수들은 자기 주위에 적합한 인사가 있어도 추천하기를 꺼렸다.
나는 생각이 달랐다. 어떻게 하든 우리 학과와 학교에 좋은 교수가 들어와야 대학문화를 바꿀 수 있다는 생각으로 실력과 인품을 갖춘 교수들을 모시기 위해서 관동대학에서 함께 근무했던 서울대학교 출신인 세분 교수에게 의사를 타진하여 본인들의 승낙을 받고 추천했다.
또한 대전, 대구, 부산으로 내려가서 충남대학교와 경북대학교, 부산대학교 학과장들에게 좋은 인재가 있으면 추천해달라고 부탁하여, 경북대학교와 충남대학교로부터 세 분을 추천받아 여섯 분이 면접과 인사위원회를 거쳐 전임강사로 발령되었다.
1981년 3월이 되면서 신군부는 <민정당>을 창당하고 정치자금을 모금하기 위하여 기업체는 물론, 사립대학에서 손을 뻗쳤다. 지목대상 학교가 경희대학교, 한양대학교, 조선대학교, 명지대학, 그리고 인천대학이었다.
대상학교를 신문과 방송에 사학비리의 문제학교로 보도부터 먼저하고, 그 학교를 방문하여 정치자금 교섭을 하였으나 너무나 엄청난 액수의 요구에 대다수의 학교들이 거절하고 있었다. 그러나 구속당하는 현실에는 버티지 못하고 승복했지만 인천대학의 백 장군은 찾아온 군 후배를 큰 소리로 질책하고 자금을 내지 않았기 때문에 검찰에 구속되었다.
대학이 설립된 지 고작 2년밖에 안되어 학생 수도 많지 않고 건물은 재단자금으로 학생들이 입학하기 전에 지었기 때문에 금전적 비리를 저지를 시간적 여유도 없어서 인천대학의 비리는 보도된 내용과는 전혀 달랐다.
검찰은 대학의 학사와 재정비리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중기관리법(重機管理法)과 불법건물에 대한 건축법 위반으로 3월 중순 경 백 장군을 구속했다.
김민하 학장이 취임하는 날, 관선이사장, 학장, 재단사무국장, 대학보직 교수들이 저녁식사를 함께할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보직교수로는 교무처장, 학생처장, 경영학부장, 공학부장, 문화부장 직무대행 겸 학보사 주간 교수인 나 등이었다.
식사 자리에서 김 학장은 나에게 “장 교수는 경주고등학교 후배인 문교부의 김하준과 동기인 줄 알고 있는데, 후배로서 나를 적극적으로 도와 달라.”고 하기에 그러하겠다고 말했다.
김민하 학장은 나를 인사위원으로 발령하고, 교무위원회에 참석하도록 하여 학보사 주간을 교무위원의 지위로 승격시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