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 대한 생각 (1회)
  제1장 학창시절과 칡넝쿨

사람은 저마다 살아가는 길이 다르다. 살아가는 가치와 목적, 방향에 따라 가는 길이 다르고, 인생의 의미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행동을 하며 살아간다.

평생토록 민주주의와 이데올로기 코드에 얽매여 사는 사람이 있고, 돈과 조직의 노예가 되는 사람이 있다. 고귀한 철학이나 종교적 신념을 위해서 일생을 바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개인의 이익추구를 위해서 하루를 살아가기에 급급한 사람들도 있다. 선인과 악인이 공존하고, 반항과 행동을 최고의 가치로 보는 행동주의자들도 있다. 자기만의 고독한 성(城)에 갇혀 외롭게 살아가는 소외의 존재들도 자기의 삶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생의 의미가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가야 가치 있는 삶이 되는 가의 물음을 제기하면, 사람이 살아가는 삶의 가치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로 부상한다.

나는 정년의 나이가 되면서 살아가는 길에 대해서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내가 살던 지역과 만난 사람들에게 무엇인가 작은 보탬이라도 해주면서 살아왔는지, 그렇지 않으면 사회와 가정, 혹은 가장 가까운 주변사람들로부터 필요성이 없는 존재로 전락되어 있는지를 되새겨 볼 시기가 되었다고 느낀 것이다.

문화와 자연, 우정과 사랑, 의무와 이상, 직장과 면학의 갈등 속에서 나의 인생은 어떤 방향으로 떠밀려왔고, 또 그것을 얼마나 지혜롭게 조화시켜왔는지를 생가해볼 시점이 된 것이다.

경주에서 정년을 맞이하면서 나는 경주의 역사와 문화를 내 인생의 새로운 의미로 받아들이면서 내가 경주로 내려온 것은 매우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995년 2월, 40년만에 고향 땅을 다시 밟으면서 나는 경주사람이라는 의식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되었다. 고도경주가 뿜어내는 문화의 향기는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닐 때, 소박한 동심으로 막연하게 맡아보던 고도의 냄새와는 상당히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 경주시가 [출처 ; 경주시청]

경주대학교 총장으로 부임하면서 그러한 문화적 분위기에 빠져 들어간 것은 ‘운명의 귀환(歸還)’이 가져온 새로운 삶의 동화(同化)라는 느낌이 들었다. 앞으로 경주의 자연과 문화를 더 깊이 살펴보고 경주의 역사와 문화를 사랑하는 경주사람으로 살고 싶은 것이 나의 바램이다. 이것은 은연 중에 ‘애향심’을 불러 일으키는 실마리가 된 것이다.
 
이러한 고향에 대한 애착은 경주를 가장 아끼고 사랑한 김동리 선생의 소설 ‘선도산(仙桃山)’에 나오는 몇 구절을 떠오르게 한다.

1960년대 후반 <신라문화제> 심사위원으로 오신 김동리 선생이 문화제 행사 중의 실화를 소설화 한 ‘선도산’은 사람의 ‘운명적 만남’을 경주의 자연과 예술적 분위기를 통해서 동리 특유의 호소력 있는 문장으로 표현한 매우 감동적인 작품이다.

'무언가 뜻을, 그렇다. 늘 보는 계림을 수십 번에서 수백, 수천, 혹은 수만 번 보아온 계림을 왜 또 찾는가. 찾아야 할 의무감이 있는 것도 아니다. 현실적인 용무가 있는 것은 더욱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주를 고향으로 가진 사람, 혹은 연고지로 맺어진 사람들이 경주를 들를 때마다 계림 반월성 일대를 돌아다보아야 가슴이 좀 풀리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렇다고 나무 포기를 하나하나 어루만지는 것도 아니요, 수종(樹種)으로 헤아리는 것도 아니다. 그냥 숲속 아무데나 서서 수풀을 잠깐 들여다보는 것뿐이다. 그리하여 꺼먼 등걸에서 어떤 바람이 조금 일고 있는 것을, 그 바람이 잔잔한 잎새들로 하여금 옛말을 속삭이게 하고 있는 것을 뿌듯해오는 가슴으로 잠깐 느끼는 데 그칠 뿐이다.'
-김동리의 선도산-
 
▲ 김동리의 소설 선도산에 언급된 '계림'

나는 경주에 내려오면서, 김동리 선생이 경주 예술의 진원지로 생각하고 있었던 ‘계림, 첨성대, 반월성, 오룡, 남산’을 우선 찾아보고 싶었다. 거기는 내가 <황남초등학교>를 다니고 있을 때, 나의 친구들이 멋 모르고 뛰놀던 어린 시절의 보금자리였다.

나 자신은 알아차리지 못했으나, 희미하나마 그 자리를 통해서 고도(古都)만이 가지고 있는 신화와 역사를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세월이 지나면서 신라의 유적지에서 풍겨 나온 예술의 향기가 나를 문학의 길로 들어서게 한 실마리가 되었던 곳이라고 생각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 자주 어울려 다니던 친구 석우일의 집은 ‘첨성대’ 근방의 ‘반월성’ 위 인왕리에 있었고, 김하준은 남산 기슭 남간(南澗) 마을에 살았으며, 서영수, 박인보의 집은 ‘오릉’ 옆에 있는 국당(匊棠)마을에 있었다.

이와 같은 어린 시절의 소박한 정서는 ‘세계의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남산의 ‘문화가치’에 대한 긍지와 어울려서 나를 한층 더 강렬하게 경주의 예술적 분위기에 휩싸이도록 한 것이다.

다시 만난 계림, 첨성대, 반월성, 오릉은 옛날에 보던 모습과는 상당히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인위적인 냄새가 풍겨서 자연스러움이 옛날보다 덜했고, 사람에 지쳐 피곤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아직도 계림이 간직하고 있는 태고의 신비와 반월성의 신성함은 여전히 나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다. 더욱이 동양 최초의 천문대인 첨성대는 신라인들의 과학적 세계관을 다시 한 번 음미하게 하고, 남산은 여전히 문화, 자연박물관으로서 역사의 향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경주는 시간을 초월해서 나의 삶의 터전이 된 살아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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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을에 물든 바다 (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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