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보스톤에 정착한 지 6개월 만에 처음으로 한국인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서울대학교 1년 선배로 1951년에 졸업한 김광심 박사였다. 어찌나 반가웠던지....... 김 선배는 육군을 제대하고 애리조나에서 인턴을 한 뒤 보스턴 시립병원의 마취과 레지던트로 와 있었다. 미국에 온지 20개월 만에 처음 만난 한국인 의사이기도 했다.
당시 보스턴에는 한국인 의사가 4명, 유학생이 15명, 교포가족을 포함하여 20여명이 살고 있었다. 2005년 현재 약 3만 5천명이 살고 있는 것과 비교해 볼 때 금석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보스턴에서의 인턴 연봉은 500달러, 월급은 41달서 80센트였다. 연봉이 작은 이유는 보스턴이 학문하는 분위기가 강한 도시여서 인턴을 의과대학생의 연장선상으로 본 탓이다. 인턴, 레지던트를 의과대학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했고, 그런 이유 덕분에 사제 간의 인연은 끈끈하게 결속되어 있었다.
기숙사는 물론, 식사도 전부 무료였다. 또한 속내의까지 세탁해주었다. 인턴들의 시간을 절약시켜주기 위한 배려였다. 이발은 한 달에 두 번 했다. 이발료 80센트에 10센트를 합쳐 한 달에 1달러 80센트를 사용했다. 사실 나는 팁 10센트를 줄 때마다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때로는 1달러를 건넨 뒤 20센트를 몽땅 거스름돈으로 받아 나오기도 했는데, 그것 또한 마음에 걸리기는 마찬가지였다.
한편, 한 달에 3달러만 지불하면 출판사로부터 분할지불제로 책을 얼마든지 구입해서 볼 수 있는 특권이 있었다. 인턴증명서만 보내주면 언제든지 가능했다.
또한 나는 가난한 유학생활 중에도 음악을 들으려고 매월 3달러의 할부조건으로 라디오를 구입했다. 퇴근하고 들어오기가 무섭게 벌렁 드러누워 FM음악방송을 들으면서 내 안의 긴장과 피로를 풀었다.
그렇게 매달 14달러가 고정적으로 나갔다. 그러면서도 매달 성의껏 모아둔 5달러를 집에 부쳐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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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학시절 동료들과 맥주를 마시고 있는 필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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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두 번 쉬는 일요일에는 걸어서 10분 거리인 차이나타운의 중국집에 갔다. 나에게는 유일한 낙이었다. <민중판점>의 손바닥 만한 간판을 보면 반가웠다. 그곳은 보스턴 인근에서 음식 값이 제일 싼 집이었다. 손님 중 백인은 없었고, 나를 제외하고는 중국인이 전부였다. 그 집은 메뉴판도 없어 흑판에 분필로 메뉴를 적어놓았다.
음식은 주로 콤비내이션 플레이트(잡채밥)을 즐겨 먹었다. 비싼 요리는 75센트, 싼 요리는 50센트였다. 요리가 나오면 며칠 굶은 사람처럼 30초 만에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곤 했다. 격주로 들르다시피 하는 내게 하루는 주인이 아는 체를 하며 물었다.
“너 한국인이지? 여기서 뭐하니?”
“메디칼 센터에 있어요.”
“너 의사냐?”
“네.”
나의 대답에 반색을 하더니 그는 그날부터 매우 친절하게 굴었다. 내가 순식간에 그릇을 비울라치면 그 주인은 음식 한 그릇을 더 가져다주었다.
“더 먹어.”
나는 호주머니 사정 때문에 순간 망설였다.
“서비스로 주는 거야. 그러니까 맛있게 먹어.”
예순은 족히 돼 보이는 주인은 눈에 눈꼽도 낀 더럽게 생긴 사람이지만 성품은 인자했다.
“고맙습니다.”
나는 꾸벅 인사를 하고 모처럼 신나게 포식을 했다. 그의 배려가 너무 고마워서 나는 그날 팁 20센트를 탁자에 올려놓고 일어섰다. 그러자 그는 손을 저으며 팁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그는 내가 가난한 유학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부터 팁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접시에 밥을 수북이 더 얹어주곤 했다.
나는 2주일에 한 번씩 밥을 실컷 먹었다. 친절한 민중판접 덕을 봤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처지에서도 한 달에 5달러씩이나 저축을 할 수 있었으니, 나로서는 참 다행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