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 7월말, 내 나이 만 24세 8개월 때 드디어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49년생의 첫째, 52년생의 둘째 뒷바라지에 시골에 사는 부모님까지 함께 모셔야 하는 젊은 아내는 말없이 나를 보내주었다.
당시에는 군사비행장인 여의도에서 비행기를 타야했다. 그곳에서는 미국으로 가는 노스웨스트사 비행기가 며칠에 한 번씩 떴다. 그 시절에 우리 국적의 항공기는 한대도 없었다. 가족들과의 이별은 반도호텔(현 소공동에 위치한 롯데호텔)에서 이뤄졌다.
가족들과 본의 아니게 생이별을 한 뒤 나는 그곳에서 버스를 타고 여의도까지 갔다. 물론 옷차림은 해군중위 장교복 그대로였다. 딱히 돈도 없었음은 물론이거니와 전쟁 뒤의 서울은 마땅히 옷을 사 입을 곳도 없을 만큼 모든 것이 황폐하기 짝이 없었다.
당시 우리나라는 마카오와 무역하면서 그곳에서 들여온 천으로 양복을 만들었는데, 너무 비싸서 일반인들은 살 엄두를 못 냈다. 그랬기 때문에 미국에 가서 양복을 사 입을 요량으로 군복 차림을 한채 유학길에 올랐던 것이다.
DC3 소형 프로펠러 비행기는 30인석 정도의 규모였다. 비행기는 먼저 동경으로 향했는데, 동경까지 대략 다섯 시간이 걸린 것으로 기억한다. 승객은 미국인 세 명과 나, 그리고 성주호라는 연세대 출신의 의사가 전부였다. 성주호는 미네소타에 인턴으로 가는 중이었는데, 훗날 그는 미네소타 대학의 신경병리학과 교수가 되었다.
나는 동경에서 이틀을 묵어야 했다. 전쟁이 끝난 지 10년도 채 안되었기 때문일까. 동경 시내는 전쟁의 흔적이 도처에 있었고, 심한 경우 불에 탄 흔적마저 흉물스럽게 남아 있었다. 동경에 도착하여 택시를 타고 영어로 호텔에 가자고 했더니, 기사는 뜬금없이 러브호텔에 내려주었다. 아마도 군복을 입고 모자까지 쓴 나를 보고 미군 장교쯤으로 오해한 것 같았다.
성주호와 나는 별 구경거리도 없는 지루한 동경에 이틀씩이나 머물러 있다가, 다시 비행기에 올랐다. 그 사이 승객이 다시 불어나 열 명 남짓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기까지 모두 네 군데의 기항지를 거쳤고, 그때마다 비행기에 연료를 보급했다. 밤이 낮으로, 낮이 밤으로, 다시 또 밤이 낮이 되었을 때, 우리를 태운 비행기는 알류산 열도를 돌아나가고 있었다. 기내식은 바나나와 샌드위치가 전부였다. 그러나 기항지에서 급유를 할 때마다 양식은 실컷 먹을 수 있었다.
노스웨스트 비행기가 마침내 활공을 끝냈다. 샌프란시스코까지 날아오면서 그동안 정들었던 성주호와 나는 굳은 악수를 나누었다.
“우리 성공해서 꼭 다시 만나자!”
그와 헤어져 등을 돌릴 때 눈물이 났다.
나는 샌프란시스코 YMCA 호텔에서 일단 하룻밤을 묵었다. 다음 날 아침에는 근처 백화점에서 싸구려 양복을 사 입었다. 넥타이를 멋지게 맨뒤 덴버로 가는 기차를 탔다. 그러고는 기차 안에서 옆 사람들 입속으로 들어가는, 난생 처음 보는 햄버거와 핫도그를 손짓으로 가리켜 사먹었다.
기차는 낮에 출발하여 이튿날 저녁에 덴버에 도착했으니, 철길을 무려 30시간이나 달린 셈이었다.
저녁 일곱 시쯤, 나는 택시를 타고 10분 거리에 있는 <머시병원(Mercy Hospital)>에 도착했다. ‘자비롭다’는 뜻의 ‘머시’라는 이름 덕에 느낌이 좋았다. 나는 조그만 병원의 출입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